오도가도 못하는 北 혜산주민, 어쩌나…

▲국경쪽으로 비교적 높은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압록강 건너 혜산시 모습

11월 21일 양강도의 도청 소재지 혜산시와 마주하고 있는 중국 지린(吉林)성 창바이(長白)현을 찾았다.

숱한 뙈기밭들이 들어서 있는 민둥산 아래로 혜산의 시가지가 보인다. 수은주가 영하 7도를 가리키고 있지만 굴뚝 연기를 찾아보기 힘들다. 강가에 나와 얼음을 깨고 빨래하는 주민들이 보였다. 고무장갑도 없이 강물에 손을 담그는 주민들도 많다.

민둥산, 연기가 올라오지 않는 시가지, 강변에 나와 생활용수를 길어가는 주민들 모습, 2005년 11월 북한주민들의 생활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풍경들이다.

혜산시의 행정구역은 25개 동(혜산, 혜화, 혜흥, 신흥, 혜신, 혜정, 혜명, 탑성, 성후, 련두, 강안, 연풍, 련봉1, 련봉2, 영흥, 송봉, 강구, 춘동, 마선, 혜탄, 혜장, 검산)과 4개 리(운총, 장안, 신장, 로중)로 알려져 있다. 현재 혜산시 인구는 10만에서 15만 정도로 추산되지만 정확한 통계는 없다.

혜산 시내에서 눈에 띄는 곳은 모두 김정일 일가의 우상화 기념물들이다. 혜산세관 뒷편에 자리잡고 있는 ‘보천보전투기념탑’과 ‘김정숙예술극장’에는 밤새도록 휘황찬란한 조명이 비춰진다. ‘김정숙예술극장’은 혜산 주민들이 대량아사와 탈북행렬이 끊나지 않던 2000년에도 공사를 멈추지 않았던 곳이다.

북한을 왕래하며 무역을 하는 조선족 김 모씨는 “혜산은 북-중 국경에서 북한의 실생활을 가장 적나라하게 살펴볼 수 있는 도시”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외부세계에 노출을 꺼리는 북한 당국은 강경하게 혜산시 국경을 통제하고 있으며, 중국정부 또한 탈북자 및 탈북자들을 돕는 NGO나 선교단체들을 차단하기 위해 강력한 통제를 실시하고 있다.

김씨는 “최근 압록강이 얼어 붙기 시작하면서 탈북자들의 숫자가 조금씩 늘고 있으나, 중국변방대의 단속에 걸려 송환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압록강을 건너 창바이현에 들어오기는 쉽지만 창바이현이 너무 외진 곳이라 탈북자들이 연변자치주 쪽이나 중국의 큰 도시로 도망치기도 어렵다는 것.

창바이현의 주민들은 가장 오랫동안 북한주민들을 고통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이다. 김씨는 한숨 섞인 말투로 혜산 주민들의 미래를 걱정한다.

“낮에는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혜산과 창바이라는 두 개의 도시가 있다. 하지만 밤이 되면 사실상 한 동네로 변한다. 밤마다 탈북자, 장사꾼, 밀수업자, 군인들이 강을 넘어 오고, 또 강을 넘어 간다. 지난 10년간 매일매일 반복된 일이다. 창바이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북한 사람들을 도우려 하지 않는다. 이제는 북한사람들을 미워하고 싫어한다. 인민폐 100원, 200원을 받기 위해 북한사람을 신고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북한 사람들은 끝없이 구걸하고, 훔쳐가고, 범죄를 저지른다. 우리는 저쪽 국가가 바뀌지 않는 이상 북한사람들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결국 혜산 사람들은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진 셈이다.”

▲강가에 나와 빨래를 하고 있는 주민들.

▲압록강은 혜산 시민들의 중요한 생활용수. 강가에 나와 물을 길러가는 주민들.

▲ 강변으로 물을 길러 나가는 주민들을 감시하고 있는 군인들. 2명 모두 총기를 휴대하고 있다.

▲ 군인 한사람이 주위를 살피며 강을 넘는 사람을 마중하고 있다.

▲ 중국에서 건너간 사람이 북한 군인에게 물건을 전달하고 있는 모습

▲ 다시 중국쪽으로 발걸음을 돌리고 있는 모습

중국 창바이(長白)=권정현 특파원kjh@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