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길남씨 슬픈 가족사가 종북세력에 보내는 경고

신숙자 모녀 구출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함께 바빠진 사람이 남편 오길남 박사다. 오 박사는 부인 신 씨와 딸 혜원, 규원을 북한으로 데려간 장본인이다. 북한에서 마르크스 경제학자의 꿈을 마음껏 펼 수 있게 해주겠다고 회유 공작한 작곡가 윤이상, 평소 각종 부식물을 가져다주며 인간적으로 정을 쌓다가 결국 오 박사를 포섭하는 데 성공한 김종한(위장 공작원 추정)을 원망할 수 있을지언정 결국 입북 결정은 오 박사 자신의 몫이었다.


그는 북한을 탈출한 이후 20년 이상 죄인으로 살았다. 그는 그의 수기 ‘잃어버린 딸들 오! 혜원, 규원’에서 스스로를 ‘폐인’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니 그 고통이 어느 정도 였을지 짐작이 간다. 그는 언론 인터뷰도 무슨 낯으로 하느냐며 한사코 거부했었다. 그러나 통영의 딸들을 구하자는 운동이 거세지면서 이제는 부분적이나마 희망이 찾았다고 한다. 그를 찾는 전화가 오면 부족한 말주변이지만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짧게 답변한다.


1985년 가족을 데리고 북한으로 들어간 오 박사는 처음 한 달간 평양 근교 야산에 있는 초대소에서 지냈다. 그 당시만 해도 오 박사는 자신과 가족이 처한 현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고 한다. 부인 신 씨는 외부와의 차단, 지도원들의 강압적인 태도, 강요되는 사상학습을 통해 이미 상황을 알아차렸지만, 그는 곧 경제학자의 길이 열릴 것으로 봤다. 신 씨에게 매번 말조심하라는 핀잔을 들을 정도였다.


오 박사가 북한에서 모든 희망을 접게 된 때는 초대소에서 나와 칠보산연락소에 배치되면서부터다. 칠보산연락소는 남한혁명조직 한국민족민주전선 중앙위 방송인 구국의 소리 방송국을 일컫는다. 서울에서 방송을 하고 있다는 명분을 대외에 내세우고 있었기 때문에 북한 사투리가 섞이지 않은 억양이 필요했다. 따라서 남한 출신자들에 대한 수요가 매우 컸다. 오 박사는 민영훈 교수라는 이름으로 하루 13분간 남한을 비방하는 방송을 했다.


그는 여기서 1969년 말에 납치된 KAL기 여승무원 성경희와 정경숙을 볼 수 있었다. 오 박사는 그녀들과 자유롭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기회를 기다렸지만 오지 않았다. 당시 칠보산연락소에서 남한에 대한 이야기는 금기였다. 오 박사는 그녀들의 눈빛에서 남한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간절함을 읽었지만 쓸데없는 잡담밖에 늘어놓지 못했다고 한다.


오 박사는 또한 주 독일대사관에서 노무관으로 일하다 입북한 유성근을 만난다. 그는 한국의 고위 공무원 출신이지만 처남의 회유에 넘어가 입북을 택했다. 그는 일반 주민들과 완전히 격리된 건물에서 대남 선전물 철자법 교정을 15년간 맡고 있었다. 


당시 칠보산연락소에는 오 박사보다 3년 먼저 입북한 ‘신생철학’의 저자 윤노빈 전 부산대 교수도 근무하고 있었다. 윤 교수의 역할은 대남방송 원고 작성이었다. 윤 교수의 부인은 공작원 려과(필터) 담배를 농민시장에 팔아 생활비에 보탰다. 윤 교수는 오 박사에게 직접 말을 걸 수 없었지만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 나처럼 해야 살아 남는다’는 신호를 계속 보냈다고 한다.


오 박사는 당시 연락소 부소장으로 일했던 정현룡(당시 가명 장석규)을 만난다. 정현룡의 아버지는 동국대 총장을 지낸 우리 사회 저명인사였다. 그는 경기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에서 유학 중에 월북했다. 이화여대를 나온 부인을 동행했다.


정 씨는 김일성이 직접 집을 방문한 적이 있을 정도로 대우를 받았지만 그의 영양상태도 별반 좋을 게 없었다. 우리 월급으로 따져보면 20만원 상당의 배급에 지나지 않았다. 움푹 팬 볼에 시커먼 얼굴은 남조선 최고 엘리트의 흔적을 찾기 어려웠다. 정 부소장은 연락소 텃밭에서 토마토를 한 개를 몰래 따 오 박사에게 쥐어주며 스파게티라도 만들어 먹어보라고 했다고 한다.


오 박사는 북한을 탈출한 이후 재입북을 회유하며 경제학자의 길을 보장하겠다는 윤이상의 말을 절대 믿지 않았다. 남한 출신 입북자들은 대남 공작 이외에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오 박사의 슬픈 가족사는 북한 당국의 비인간적인 인권유린과 납치 행위를 고발한다. 그리고 또한 북한 사회에 대한 철없는 동경이 얼마나 어리석은 회한을 남기는지도 잘 보여준다. 오 박사의 경험은 북한 중심의 통일이나 혁명을 꿈꾸는 국내 종북세력들에게 준엄한 경고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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