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동독 주민과 바나나…대북지원과 북한개방

독일의 분단 시기 동서독간 첩보전은 치열했다. 동독의 정보기관 국가안보부(STASI 슈타지)는 서독의 정(政) 관(官) 언론계에 수많은 스파이를 집어넣었다.

1974년에는 서독의 빌리 브란트 수상의 최측근이었던 귄터 기욤 보좌관이 슈타지가 보낸 스파이로 밝혀졌다. 서독은 물론 전 유럽이 발칵 뒤집혔다. 이 때문에 브란트 수상은 사임했다.

서독의 ‘베엔데'(BND 연방정보국)도 만만찮았던 모양이다. BND는 분단 후 베를린 장벽이 붕괴한 1989년까지 동독 내 정보 수집 활동을 활발히 전개했다. 독일의 유명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동서독 분단 시기 BND가 동독 주민 1만명을 정보원으로 고용했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하여 오늘(16일) 조간신문에 재미있는 외신 기사가 나왔다.

독일 분단 시기 서독 BND는 동독 주민들의 실제 생활상과 민심을 알아보기 위해 동독 사회에 등장한 여러 유머들을 꾸준히 수집했다는 것이다. 유머의 소재로는 체제 비판과 만성적인 물자 빈곤을 풍자한 것이 많았다. 그중 눈길을 끄는 유머가 있다.

“동독 국민들도 원숭이로부터 진화했나? 아니다. 원숭이는 1년에 바나나 2개만 먹고는 절대 살 수 없다.”

1년에 바나나 2개 이상을 배급받지 못한 동독의 물자 빈곤을 풍자한 유머다. 가난하고 추운 나라 사람들이 늘 그리워 하는 것이 바나나인 모양이다. 60년대 가난했던 한국사회도 바나나는 ‘풍요’를 상징했다. ‘바나나를 먹어보았다’는 것은 지극히 드문 음식 체험을 했다는 뜻이었다.

동독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오죽했으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 서독의 어느 바나나 수입업자는 탈출한 동독 주민들을 위해 공짜 바나나를 광장에 확 풀어놓았을까.

북한은 어떨까? 일반 주민들이 북한에서 바나나를 먹어보기는 어렵다. 어느 탈북자는 중국에서 처음 본 바나나를 배가 터지게 먹어보았다고 한다.

외국인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나 보다. 평양에서 8년간 근무한 적이 있는 장 자크 그로와 유럽상공회의소 소장은 “평양에서 살다 한국에 들어오면서 가장 먹고 싶었던 음식이 바나나였다”고 했다.

감시, 통제, 폐쇄 그리고 춥고 배고픈 사회에서 바나나는 ‘풍요’의 이미지를 갖는다. 또 바나나의 밝은 노란색은 ‘따뜻함’의 이미지가 있다. 따뜻한 남쪽 나라와 바나나. 북한 주민들이 그리는 ‘풍요 속의 행복’은 그런 모습이 아닐까 싶다.

80년대 어선을 끌고 넘어온 탈북자 일가족은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고 싶었다”고 했다. 어느 탈북자는 생애 처음 가본 ‘따뜻한 남쪽 나라’ 제주도를 보면서 “제주도는 세계의 보물”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풍요와 따뜻함은 ‘행복의 구체화된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남북간 실무급 회담이 진행되면서 대북 쌀지원 재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데일리NK는 대북 인도지원을 지지해왔다. 다만 퍼주기가 아니라 ‘잘 주기’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시장의 물가 동향 등 여러 정보를 종합해보면 전체적으로 북한 식량 사정이 어렵다는 것은 맞다. 하지만 제한적이지만 여전히 시장이 작동하고 중국과의 교역이 진행되고 있으며 중국이 지원을 약속한 부분도 있기 때문에 과거처럼 대량아사가 발생할 가능성은 낮다.

북한에 ‘잘 주기’를 하자는 것은 식량이 필요한 주민들에게 주자는 것이다. 여성, 아동, 극빈계층이 1차 대상이며, 따라서 분배 투명성이 적절한 수준에서 확보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인도주의 지원은 기아문제를 인권의 각도에서 보고 있는 만큼, 우리에게 발생한 인권문제인 납북자 국군포로 이산가족과 같이 연계하여 풀어가는 것이 합리적이다. 교전 중인 포로에게도 접견권이 있는데, 멀쩡이 살아있는 부모가 자식을 못 만나며 부모가 늙어 죽어가는데도 자식이 임종도 못하는 것은 극단적인 인권유린이라고 할 수 있다. 인권문제는 인권문제와 연계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대북 인도지원도 언제까지나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부는 현재의 김정일 체제가 개혁개방 정부로 바뀌지 않는 한 앞으로도 계속 무작정 지원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

베트남, 구소련, 중국의 경우와 같이 지금 북한이 개인농으로 농업개혁을 하면 2년 뒤에 식량 수출국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김정일 정권에게 “농업개혁을 하라. 농기구, 기술은 도와준다”는 말을 명시적으로 하는 것이 옳다. “개혁하라”는 요구를 직설적으로 하는 것이 옳다는 말이다.

물론 김정일 정권이 중국이 근 30년 동안 권고해온 개혁개방도 하지 않았는데, 남측에서 한다고 해서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옳고 분명한 말을 상대가 듣기 싫어한다고, 다시 말해 지난 10년간 고장난 녹음기처럼 되풀이 해온 “북한을 자극할까봐” 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북한이 잘못해도 “사과하라”는 말을 하기도 어렵다.

정부는 옳고 정당한 요구는 정면에서 분명한 용어를 동원해서 하는 것이 좋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남북관계 개선, 장기적으로 ‘북한 주민의 실질적 생활개선’을 가져오는 길이다.

그리고 정부 관계당국은 북한 내부에 농업개혁이 필요하다는 ‘여론’을, 비록 매우 낮은 단계에서 시작하더라도, 북한 내부에 올바른 여론을 형성하는 기초작업부터 진행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해야 언젠가 북한 주민들도 스스로 궁핍에서 벗어나 ‘바나나’를 먹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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