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친에 대한 북한의 평가

옛 소련의 몰락을 촉진하고 민주 러시아를 출범시킨 보리스 옐친 러시아 초대 대통령에 대한 북한의 평가는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한국과 소련의 국교수립(90.9)과 이념적으로 유대관계를 맺어온 소련의 해체, 나아가 1992년 11월 옐친 대통령의 한국 방문으로 러시아와 한국의 관계가 새로운 시대로 접어 들었기 때문이다.

옐친 대통령 등장 이후 러시아와 북한은 기념일에 서로 축전을 주고 받기는 했지만 예전과 같은 ‘끈끈한 정’은 사라졌다.

북한은 80년대 말 소련 및 동구 사회주의 국가 붕괴와 관련해 큰 위기 의식을 느꼈으며, 이에 따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91년 5월 ‘인민대중 중심의 우리식 사회주의는 필승불패이다’라는 논문을 발표해 체제결속을 강조했다.

옐친 대통령이 방한해 외교관계 수립조약을 체결한 것은 한반도에 원칙상 새로운 안보구조가 형성된 시초라고 볼 수 있다.

그런 만큼 북한이 옐친 대통령에 대해 냉담한 반응을 보인 것은 당연한 일이며 러시아와의 관계도 냉각됐다.

북한의 이런 입장은 옐친 대통령의 방한과 관련해 대남 흑색방송인 ‘민민전’을 통해 “경제원조를 얻어 보려는 구걸외교”라고 비난한 데서 엿볼 수 있다.

북한의 ‘민민전’ 방송은 1992년 11월19일 노태우 당시 대통령과 옐친 대통령간의 한-러 정상회담 소식을 전하면서 옐친 대통령이 회담에서 6.25전쟁 등 과거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시하고 한-러 간의 우호협력을 다짐한 것은 “러시아라는 대국의 대통령이 미국의 식민지인 한국에 구걸 행각을 한 것으로 세인의 경악을 자아내게 한다”고 비방했다.

또 1993년 10월 일본을 방문한 옐친 대통령이 호소카와 일본 총리와 가진 러-일 정상회담에서 북한 핵문제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자 북한 외교부 대변인은 “핵 폐기물을 동해에 버려 방사능 피해의 위험을 조성함으로써 연안지역 인민들로부터 커다란 항의와 비난을 받고 있는 러시아가 우리의 핵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으며 건전한 사고를 상실한 행위로밖에 볼 수 없다”며 노골적으로 반발했다.

특히 1993년에는 관광차 북한의 남포로 가던 러시아인 3명이 집단 구타를 당한 사건과 관련해 북한과 러시아 양국이 상대방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 외교마찰을 빚기도 했다.

냉전체제가 붕괴된 이후 민주체제 확립과 시장경제 이행을 위해 체제개혁을 단행한 옐친 대통령의 러시아가 ‘신외교정책’에 따라 남북관계를 안정하고 한국 우선의 남북한 경제관계를 활성화하며 한반도 비핵화를 정책기조로 설정, 지역 안정정책을 추진하는 데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이다.

더욱이 1961년 7월 체결된 ‘소.조 우호 협조 및 호상 원조조약’이 1995년 6월 러시아 측의 조약 폐기 통보에 이어 2002년 2월에 ‘자동군사 개입 조항’이 빠진 신 조약을 체결한 것은 북-러 관계가 실무적 관계로 접어들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편 북한의 조선중앙방송은 1999년 말 옐친 대통령이 전격사임한 사실과 관련, 이타르 타스 통신의 보도를 인용해 “옐친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31일 기한 전 사임을 발표했으며 국가수반의 업무집행을 블라디미르 푸틴 수상에게 넘긴 데 따라 푸틴이 대통령 대리로 사업하게 됐다”고 논평 없이 짤막하게 보도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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