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사랑 전하기 위해 오늘 두만강 건넙니다”

▲중국에서 북한으로 넘어가는 화물차 ⓒ데일리NK

“올해는 북한 사람들과 함께 성탄절을 보내게 되어 더욱 큰 의의가 있습니다. 비록 그들이 지금은 주님의 존재를 모르고 살지만 언젠가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알게 될 겁니다.”

22일 싼허(三合) 해관 앞에서 만난 중국 조선족 전도사 전명우(가명) 씨는 해마다 북한을 방문해 고아원과 꽃제비 수용시설에 대한 지원활동을 벌이고 있다. 인터뷰를 끝내고 해관에 들어가기로 약속했지만, 그의 시선은 벌써 북한 국경을 넘고 있는 듯 보였다.

연변 Y교회 소속으로 교회 내 대북 선교 담당을 맡고 있는 그가 처음 북한을 찾은 것은 1998년이다.

“1997년 연길 시내에서 북한 아이들이 동냥하는 모습을 처음 봤습니다. 그 아이들을 보면서 문화대혁명 기간에 북한으로 넘어간 두 삼촌들과 사촌 형제들이 떠올랐죠. 그 때부터 북한에서 넘어오는 사람들 돌보는 일을 시작했는데 벌써 10년이 지나갔습니다.”

현재 연변지역의 조선족 교회와 한인 교회들은 중국 공안 당국의 압력 때문에 대부분 탈북자 지원활동을 중단한 상태다. 그러나 전 씨가 소속된 Y교회는 규모는 작지만 여전히 탈북자 지원활동을 은밀하게 계속하고 있다.

그리고 2004년부터는 북한 내부에 대한 지원활동의 필요성에 주목해 전 씨를 비롯한 조선족 전도사들이 해마다 북한을 직접 방문하고 있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중국 교회가 지원한다고 밝힐 수는 없다.

중국 교회를 통한 지원 사실이 밝혀지면 전 씨와 도움을 받은 사람 모두 큰 화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는 친척 방문을 가장하고, 물품 지원도 아는 사람을 통해 은밀히 전달한다.

-Y교회에서 진행하는 대북 지원활동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 주시죠.

“사실 ‘대북 지원활동’이라고 거창하게 말할 수준은 못 됩니다. 교회 성도들의 힘을 모아 식량, 헌옷, 분유, 의약품 등을 장만해서 기회가 될 때마다 북한을 방문해 어린이나 노인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한 번에 북한에 들어갈 때 보통 1~5톤 정도의 물자를 가지고 갑니다. 외국 교회 목사님들이 도와주시는 것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전도사님들은 어떤 절차로 북한을 방문하십니까?

“미국이나 유럽, 혹은 한국의 큰 단체들은 공식적으로 북한 정부의 초청을 받아 방문하지만 우리 같은 조그만 교회들은 공식 초청을 받을 수 없습니다. 특히 서방이나 남한 교회는 공식 지원 루트를 통해 들어오기 때문에 당국이 거부감이 없습니다. 그러나 중국 교회라고 하면 절대 용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일단 북한에 친척이 살고 있는 전도사나 교인들이 친척방문을 명분으로 북한에 들어갑니다. 그 다음 미리 계획한 대상들에게 지원물품을 전달합니다. 그것도 비공개적으로 조용하게 처리 합니다. 지원 물품이 중국 교회에서 보내진 것이라고 알려지면 간첩으로 몰릴 수도 있습니다.”

-지원품을 받는 북한 사람들은 어떤 계층입니까?

“부모가 없는 고아들이나 장애인, 독거노인들에게 우선적으로 지원물자를 전달하고 싶은 것이 우리 마음이지만 실제로는 쉽지 않습니다. 북한에 국가가 운영하는 고아원이나 부랑자 수용시설이 있기는 한데, 우리 같은 외국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런 시설에 지원품을 보내려고 북한 당국자와 연계를 가지려고 해도 그들이 먼저 고아나 부랑자 존재 자체를 부정합니다. 더군다나 저희처럼 친척방문을 목적으로 북한에 들어간 사람들은 함부로 돌아다니거나 사람을 만날 수도 없기 때문에 공개적인 지원활동은 불가능합니다.

지금은 고아원이나 부랑자 수용시설의 실무 책임자와 은밀하게 거래를 합니다. 북한의 지인들에게 부탁을 해서 시설 책임자와 연계를 맺죠. 재미있는 것은 시설 책임자들이 우리 지원품을 받는 조건으로 뒷돈을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지원 사실이 상부에 알려지면 자신들도 자리보전이 어렵다는 이유를 들먹이지요. 지원품을 받아 시설 수용자들을 잘 먹이면 그게 모두 간부의 공(功)으로 평가되는데도 이렇게 배짱을 부립니다. 북한의 간부들은 개인적인 이익이 없으면 어떤 일도 앞장서지 않습니다.”

-이렇게 개별적이고 소규모적인 지원활동이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이런 지원활동의 의의에 대해서는 교인들 사이에서도 의견 차이가 있습니다. 북한으로 들여보내는 지원물품은 크게 표시가 나지 않으니까 차라리 중국의 탈북자들 돕는데 힘을 쏟자는 의견도 있죠. 우리는 우리가 보내주는 지원물자가 북한 인민들에게 물질적으로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해당 시설 책임자들이 얼마나 착복하는지도 확인할 길이 없죠. 하지만 우리가 지원품을 갖고 들어가면 그 지역 주민들에게 금방 입소문이 퍼집니다. 우리는 북한 주민들이 우리의 정성과 마음을 기억해줄 것이라 믿습니다.

그래서 미래에 북한의 정치가 바뀌고 개방이 되면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들 곁에 서고자 했음을 알아 줄 것이라 기대합니다. 혹시 우리의 노력이 아무런 효과가 없더라도 하나님께서 지켜보고 계시니 상관없습니다. 이 일은 모두 하나님의 역사일 뿐, 우리는 대리인일 뿐이죠.”

-지금까지 북한에 몇 번이나 다녀오셨습니까?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저는 지금까지 총 11회 다녀왔습니다. 2006년 봄에 방문했을 때에는 제가 중국에서 성경공부 시켰던 아이를 만나기도 했습니다. 제가 중국에서 데리고 있을 때는 14살짜리 소년이었는데 키가 껑충한 청년으로 자라났더군요.

저는 처음에는 그 친구를 몰라봤습니다. 그 친구가 저를 알아보고 다가와 인사를 하더군요. 너무 반갑고 너무 기쁘긴 했지만 혹시나 북한에서 제가 선교사업 담당자라는 것이 알려질까봐 안절부절 했던 일이 기억납니다. 그 아이가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은 것 같아 고마웠습니다.”

-두만강 국경을 통해 북한에 들어가는 절차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주시죠.

“중국 여권이 있고, 북한에 친척이 있다는 증명이 확실하면 북한에 들어가는 일 자체는 어렵지 않습니다. 북한 세관을 통과하는 일이 관건인데, 세관 직원들에게 줄 담배나 술, 소세지 같은 것을 충분히 준비해야 귀찮은 일이 없습니다. 수동식 필름 카메라는 가지고 갈 수 없지만 디지털 카메라는 가져갈 수 있습니다.

나중에 돌아올 때는 북한 세관에서 일일이 사진을 다 검사해서 문제가 되는 것은 삭제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또, 북한에 들어갈 때 가지고 간 돈을 나올 때 그대로 가지고 나오면 시비 거는 일이 많습니다.”

-북한을 방문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북한에 들어가기 전에는 항상 설레고 흥분되는데, 막상 북한 세관을 통과하면 사실 겁이 납니다. 내가 중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막연한 불안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북한에 들어가면 기도를 더 많이 하게 됩니다. 그리고 북한은 도로가 좋지 않고 차가 부족하니까 물자를 갖고 이동하는 일이 제일 힘들죠.”

-최근 일반 주민들의 생활은 어떤가요?

“몇 년 동안 함경북도 여러 지역을 다녀봤는데 주민들의 생활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10년 전처럼 길거리에 사람이 쓰러져 있거나 굶어 죽는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먹는 문제가 많이 좋아졌고 텔레비전과 자전거도 많아졌지만 기본적인 생활 조건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시멘트가 비싸니 탄가루로 벽돌을 만들어 울타리를 치고 사는 사람도 많습니다. 최근에는 학교에 가지 않고 농사나 노동에 동원되는 아이들도 많이 보였습니다.”

-이제 곧 성탄절입니다. 북한에서 보내시겠군요.

“북한 주민들은 아직 성경도 잘 모르고 예수님도 잘 모릅니다. 성탄절은 더더욱 모르죠. 물론 제가 북한에 들어가서 주민들에게 예수님의 탄생에 대해서 섣불리 말을 꺼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북한에 있는 성도들에게 “오늘 예수님께서 태어나셨군요”라는 말이라도 나눌 수 있겠지요. 북한 성도들에게는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탄절은 모든 사람에게 축복이 되는 날입니다. 북한 주민들도 예외는 아니겠죠. 사탕 한 봉지, 쌀 한 포대라도 그들을 웃게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에게는 인생에서 가장 뜻 깊은 성탄절이 될 것 같습니다.”

정문을 지키는 초병의 수신호가 떨어지자 지원물자를 실은 화물차가 싼허(三合) 해관(海關) 앞마당으로 들어갔다. 싼허 세관은 기자가 들어갈 수 없는 금지의 영역이다.

작별 악수를 나누던 순간에도 전씨의 시선은 통관 수속을 기다리는 지원물자에 머물러 있었다. 손을 흔들며 뒤돌아서는 그의 뒷모습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향기가 피어난다. 2007년 동방의 산타클로스는 그렇게 성큼성큼 두만강을 건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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