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과 다른 상황전개에 또 잠적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또다시 ’은둔’에 들어갔나.

지난 9일 핵실험을 전후한 시점부터 김 위원장의 행적이 자취를 감췄다. 북한 내 최대 명절 중 하나인 당 창건기념 61주년(10.10) 관련 각종 행사에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최태복 최고인민회의 의장, 김일철 인민무력부장 등 당.정.군 고위인사들이 대부분 참석한 10일 저녁 경축음악회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지난해의 경우 60주년이라는 의미가 남다르긴 했지만 김 위원장은 당 창건 각종 기념 행사에 직접 참석했다.

김 위원장의 동정이 마지막으로 공개된 것은 지난 5일. 조선중앙통신이 북한군 대대장, 대대정치지도원 대회 참가자들과 만났다는 보도를 한 것이 마지막이다.

북한이 미국 등 외부세계와의 대립이 심화될 때마다 김 위원장은 종종 장기 은둔에 들어갔다.

지난 7월5일 대포동2호 시험발사 때도 40일간 그의 동정이 소개되지 않았다. 2003년 초 북핵문제로 북미 간 위기가 고조되던 시기에는 50일간 모습을 감췄다.

섣부르게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김 위원장이 일단 은둔하기로 결심했을 경우 핵실험 이후 국제사회의 제재, 미국과 중국, 한국의 동향 등 제반 정세를 지켜보면서 상당한 기간 뭍 밑 행보만 계속할 수도 있다.

핵실험 후 주변상황도 북한이 원하는 대로만 흘러가지 않고 있다. 대규모 수해에 더해 핵실험에 따른 각종 제재로 경제가 6.25 전쟁 이후 최악의 상황까지 악화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반면 이런 상황에서 오히려 김 위원장이 조기에 공개활동을 재개하면서 주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고 주도적으로 체제단속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김 위원장은 98년 대포동 1호 발사 때는 9일 만에 북한 정권수립 50주년(9.9) 열병식에 참가하는 등 거리낌 없는 공개활동을 하기도 했다.

일단 김 위원장이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다음 시기는 17일이다. 이날은 북한에서 소위 사회주의 혁명의 기점으로 간주하는 ’ㅌ.ㄷ(타도제국주의동맹-김일성이 1926년 만주에서 최초로 결성했다는 혁명조직) 결성 80주년’으로 올해는 ’꺾어지는 해’이기도 하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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