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 없는 방류, 같은 민족이 할 짓인가”

북한이 예고 없이 댐에 있는 엄청난 물을 순식간에 방류해 발생한 임진강 급류 사건에서 아들은 살리고 자신은 급류에 휩쓸려간 사연이 전해져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5일 밤 경기 연천군 군남면에 위치한 임진강 중류의 한 모래섬에서 텐트 속에서 동료들과 함께 잠들었던 서강일 씨(40)는 다음날 오전 5시께 발생한 갑작스런 물보라에도 불구하고 아들 서모 군(12)을 아이스박스에 태운 뒤 급류에 흔들리지 않도록 붙잡아 두는 부정(父情)을 보여줬다.

이렇게 아버지의 희생과 동료 김모 씨(37)의 도움으로 강둑에 닿은 서 군은 그 후 아버지를 애타게 불렀지만 끝내 아버지는 실종되고 말았다. 단란한 가족의 주말 낚시가 비극이 될 줄은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서 씨외에도 실종자는 이경주(39), 이용택(7~8), 백창현(40대), 이두현(40대), 김대근(39)씨 등 총 6명으로 파악됐다.

이 소식을 들은 가족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남편 이경주 씨와 아들이 함께 실종된 김선미 씨(36)는 “(낚시를) 가지 말라고 할 걸. 우리 아들, 우리 남편 불쌍해서 어떻게 하냐”며 흐느꼈다. 김 씨는 울다 탈진해 병원으로 실려 갔다.

실종자 백창현 씨(39)의 동서 최천수 씨(51)는 “대피를 시킨 뒤 방류를 해야 맞는 것이지 예고도 없이 이렇게 사람을 물에 휩쓸려가게 하는 것이 같은 민족이 할 짓이냐”며 예고 없이 댐을 방류한 북한에 대한 원망의 소리를 내뱉었다.

가족들은 임진강의 무너진 경보체제에 대한 불만도 제기했다. 이 사건에 대한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수위가 일정 기준을 초과하면 자동으로 안내방송을 하는 무인자동경보시스템은 필승교 수위가 3m를 넘어선지 4시간이 지난 오전 7시에야 작동했다.

연천군과 수자원공사가 야영객들에게 대피하라는 방송을 내보낸 것은 이미 급류에 5명이 휩쓸려간 뒤인 오전 6시 10분이었다.

이경주 씨의 형 이용주 씨(46)는 “철책선 군부대는 수위가 높아지는 것을 먼저 알았을 텐데 이를 알리지 않고 무엇을 한 것이냐”고 항의했다.

최천수 씨도 “(관련 기관들이) 대응이 늦은 경위를 밝혀야 한다”고 성토했다.

군 관계자는 “민간 피해는 안타깝지만 군도 홍수경보 정보를 받지 못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한편 우리 정부는 지난 2002년 10월부터 북한의 황강댐 건설에 지속적으로 이의를 제기해왔지만 북측은 줄곧 논의를 거부했다.

2002년 10월과 2004년 4월에 열린 임진강 수해방지 실무협의회에서 우리 측은 황강댐 건설로 피해가 우려된다고 공동조사를 제안했지만 북측은 군사보장의 필요성을 들어 거부했다.

2006년의 임진강수방 실무접촉과 2007년의 서해평화추진위 제1차 회의에서도 피해발생 우려를 전달했지만 북측에서는 응답이 없었다.

다만 2003년과 2005년에 임진강 수해방지 관련 합의를 통해 북측이 그 해의 임진강과 임남댐의 방류계획을 남측에 통보하기로 합의한 적이 있지만 북한은 2002년, 2004년 단 두차례만 방류를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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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용 기자
sylee@uni-medi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