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디김정일]영화 좋아하는 김정일은 춘향뎐도 봤을까?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영화화된 소설은 ‘춘향전’이다. 지난 2000년 칸영화제 본선진출로 화제가 되었던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은 영화로만 따져서 14번째의 춘향전이라고 한다.

초등학생도 빤히 내용을 알고 있는 춘향전이 계속해서 영화로 만들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관객이 스토리를 뻔히 알고 있으니 감독이 ‘어느 부분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독특한 개성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이 매력일지도 모르겠다.

춘향과 몽룡의 애정행각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면 청춘의 무모하고도 아름다운 러브스토리가 될 수 있고, 춘향에게 수청을 강요하는 변학도의 포악함에 초점을 맞추면 조선 중·후반기 사회상과 계급질서의 부당함을 드러내는 영화가 되며, 걸인의 행색으로 나타난 몽룡이 사실은 암행어사여서 죽음을 앞둔 향을 구해내는 부분은 잘 강조하면 영웅담처럼 되는 식이랄까.

임권택 감독의 2000년 판 ‘춘향뎐’은 판소리와 영화를 절묘하게 결합하여 항간에 ‘판소리 뮤지컬’이라 불릴 정도로 춘향전 영화의 또 다른 묘미를 보여주었다.

그래도 역시 소설이나 영화 춘향전에서 읽는 이, 보는 이의 기억에 가장 강하게 남는 장면은 춘향과 몽룡이 첫날밤을 보내는 장면과 후반부의 어사출도가 아닐는지. 특히 ‘어사출도’는 이미 몽룡이 암행어사인 것을 알고 있는 관객에게도 여전히 은근한 재미를 전해준다.

능구렁이 몽룡은 춘향과 월매에게까지 자신을 숨긴 채 변학도의 생일잔치에 몰락한 양반의 행상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생일잔치 참가자들의 비웃음도 아랑곳 않고 능청스럽게 술과 안주를 청하는데, 드디어 술상을 걷어차고 옆자리의 갈비를 덥석 베어 문다.

그리고선 하는 말. “이러한 잔치에 풍류로만 놀아서는 맛이 적사오니 차운(次韻-남의 운을 떼어 시를 짓는 놀이)이나 한 수씩 해보면 어떠하오?” 자, 여기서 운자로 나온 글은 ‘높을 고(高)’와 ‘기름 고(膏)’. 몽룡은 거침없이 시 한 수를 지어 놓고 유유히 자리를 빠져나간다.

金木+尊美酒千人血 금동이의 아름다운 술은 천 사람의 피요
玉盤佳肴萬姓膏 옥소반의 맛좋은 안주는 만 백성의 기름이라
燭淚落時民淚落 촛불의 눈물이 떨어질 때 백성의 눈물이 떨어지고
歌聲高處怨聲高 노래 소리 높은 곳에 원망 소리 높았더라

북한에도 영화 춘향전이 있을까? 물론 있다. 90년대 초반이었던 것 같다. 당시 학생운동권에서는 ‘북한 바로 알기 운동’이라는 것이 한창일 때 북한영화 몰래 상영이 유행했다. 물론 그 필름을 뺏기 위해 새까맣게 몰려든 전경들과 싸우면서 영화를 상영하다보니 눈물, 콧물 다 흘리며 봐야 했다. 생각해보면 얼마나 스릴 넘쳤던 ‘북한 바로 알기’였던가.

북한 춘향전에서도 역시 영화의 백미는 어사출도 장면. 남한 춘향전보다 이 장면은 더욱 실감난다. 우렁찬 함성소리와 함께 우당탕탕 잔칫상을 뒤엎고 올라오는 관졸들, 여기저기 구멍을 찾아 숨어들고 물 속으로 뛰어들면서 혼비백산하는 각 고을 수령들, 변학도의 졸개들… 그리고 물론 북한 춘향전에도 몽룡이 시를 읊는 장면이 있다. 그 어떤 남한 춘향전 못지 않게 멋지고 장엄하게, 그리고 시원스럽게.

여기서 자타가 공인하는 영화광 ‘김정일’을 떠올려 본다. 영화를 너무도 사랑하고, 영화인들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는 그가 ‘춘향전’ 역시 못 보았을 리 없다. 그런데 참 궁금하다.

‘금동이의 아름다운 술은 천 사람의 피고 옥소반의 맛좋은 안주는 만 백성의 기름’이라는 이몽룡의 시가 읊어지는 장면에서 김정일의 표정은 어땠을까.

수령의 무덤에 금칠을 하고 북녘 땅 곳곳에 번쩍이는 동상이 올라갈 때 굶어 죽는 2천만 민중의 뼛조각이 쌓여가고, 수령을 찬미하는 노랫소리 높아갈 때 2천만 민중의 원망과 저주의 목소리가 하늘을 찌르는 것을 그는 알고도 모르는 척 하는 것일까 아니면 정말 모르는 것일까.

The Daily NK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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