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독재정권은 없어…北주민 변화할 준비해야”



▲ 버마 민주의 소리 25주년 기념식 모습 <사진=진유나PD>

진행 : 예전에는 북한만큼이나 독재 국가로 유명한 나라였죠, 버마. 지금은 미얀마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이곳은 과거 독재 정권 시절 주민들을 통제하기 위해 강도높은 정보통제 정책을 펼쳤습니다. 당시 정권에 맞서 망명자 신분이 되면서까지 본국에 외부사회의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활동했던 단체가 있어 찾아가봤습니다. 미얀마 민주화 성공의 비결을 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고 하는데요. 현장에 다녀온 진유나 PD 나와있습니다. 먼저 미얀마의 정치 상황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주시죠.
 
네. 미얀마는 1962년 네윈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한 이후 군부1당이 독재정권을 이어갔습니다. 1990년 있었던 국회의원 선거에서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적 인물인 아웅산 수치가 대표로 있는 민족민주동맹이 처음으로 압도적 과반 의석을 차지하게 되지만 군부독재정권이 선거를 무효화시킵니다. 이후 약 30년 넘게 국내외에서 벌어진 민주화 투쟁과 민주화에 대한 국민적 열망으로 2011년에는 문민정부가 들어섰고, 이후 개혁과 개방 노선을 택하며 미얀마의 봄이 성큼 다가오게 됐습니다.
 
진행 : 이번에 미얀마에서 방문한 단체는 어떤 단체인가요?
 
DVB, 버마민주화소리라는 민간단체입니다. 지난 7일 한국을 떠나 미얀마의 옛수도 양곤에 도착해 3일간 진행된 버마민주화의소리 25주년 기념행사에 참여했습니다. 저희가 찾아간 날은 바로 25주년 기념행사를 하루 앞둔 날이었는데요, 생일잔치를 앞둔 동네 큰집처럼 분주하고 어수선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버마민주의소리는 저희를 각별하게 맞이하며 환영해줬습니다.
 
진행 : 그곳 사무실에 방문한 건가요? 그럼 방송 제작도 볼 수 있었겠군요?
 
생일날이래도 방송 제작은 계속해야겠죠? 행사 준비로 들떠있는 직원들 옆으로 그날 방송 제작으로 분주한 젊은 기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희 방송국도 꽤 젊은 단체라고 생각했는데, 버마민주화의소리에도 많은 미얀마 청년들이 일하고 있더라고요. 혼자 혹은 둘셋씩 모여앉아 영상과 기사를 보며 어떤 방송을 만들지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었습니다. 미얀마의 민주화를 향한 젊은 세대의 기대, 열기를 간접적으로 느낄수 있었던 첫 방문이었습니다. 
 
진행 : 25주년 기념행사의 첫 공식일정은 뭐였나요?
 
기념행사 첫 공식일정으로 특별히 미얀마주재 노르웨이 대사관에서 환영 연회를 열어주었습니다. 25년전인 1992년, 버마 내 독재정권의 탄압을 피해 버마민주의소리는 해외에서 단파라디오방송을 시작했는데요. 당시 거점을 마련한 곳이 바로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였습니다. 그때부터 노르웨이정부는 이들 활동을 지지하고 후원하게 된 것입니다. 

노르웨이 대사 : 우리는 버마민주의소리의 활동을 오랫동안 지지해왔고 지금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우리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버마민주화의소리 활동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미얀마 민주화를 위해 노력한 초기 활동가들, 기자들의 노력에 감사의 박수를 보내며 미얀마 민주화를 향한 그들의 여정은 계속될 것입니다.
 
버마민주의소리는 노르웨이 정부뿐 아니라 네덜란드자유의소리, 민주주의국가기금 등 세계 각국 정부, 비영리기관, 시민사회단체들의 지원과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25주년 기념행사에는 이들 후원자들과 지지자들이 함께 미얀마 민주화에 대해 돌아보고 앞으로의 활동을 다짐하는 자리가 됐습니다.
 
진행 : 25년이라는 시간 동안 미얀마의 민주화를 응원하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한 것이군요. 듣다보니까 버마민주의소리에 대해 더 궁금해지는데요.
 
버마민주의소리는 과거 독재정권의 정보 통제에 대항해 미얀마 망명자들이 정권에 의해 검열되지 않은 정보를 본국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 활동을 시작한 민간단체입니다. 1992년 오슬로에서 단파 라디오방송으로 외부정보를 보내기 시작했는데요, (진행 : 웬지 낯설지 않은 활동인데요) 네. 바로 저희 국민통일방송과 매우 비슷하죠? 단파라디오방송을 시작한 이후 2005년엔 위성 텔레비전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미얀마에서 정치개혁 일어난 이후인 2012년 오슬로에서 미얀마로 사무실을 옮길수 있었는데요. 2013년 오슬로사무실은 공식적으로 문을 닫게 됩니다.
 
버마민주의소리는 현재 200여명이 넘는 직원을 두고 있지만 25년전 단파라디오방송을 시작할때에는 미얀마 청년 넷 뿐이었습니다. 그 중 한명이었던 아이 첸 나잉 현 사무총장은 미얀마를 떠나던 날을 떠올리며 당시의 심경을 밝히기도 했는데요. 가족들에게 남긴 편지에 6개월후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그 약속이 25년 가까이 지나고서야 이뤄졌다며 그만큼 미얀마 민주화 운동은 쉽지않았다고 전했습니다. 정권에 의해 외부정보가 통제됐던 미얀마 사람들에게 버마민주의소리 활동이 왜 중요했는지, 그에게 물어봤습니다. 
 
아이 첸 사무총장 : 우리 모두가 편파적이지 않고 독립적인, 진실된 정보를 원하죠. 사람들은 실제 어떤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진실을 알고 싶어하고 이건 매우 중요합니다.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있으면 우리의 일상, 경제, 정치 등에 대해 그릇된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그러니 국민통일방송도 지금 역할을 계속해 나가길 바랍니다. 나중에 북한 사회가 열리면 북한 주민들은 틀림없이 지금 여러분 활동에 대해 매우 감사해할 것입니다.
 
진행 : 20여년동안 망명 생활을 하다 약 5년전부터 미얀마로 돌아와 국내 방송활동을 시작한 것인데요, 그렇다면 미얀마 내에서 버마민주의소리 방송을 보는 사람들은 어느정도 되나요?
 
비교적 최근 국내 활동을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버마민주화의소리는 국민적 신뢰와 지지를 상당히 받고 있었습니다. 양곤에 있는 동안 길거리에서 마주친 많은 미얀마 사람들이 버마민주의소리를 알고 있고 응원을 보내왔는데요, 실제 2016년 말 영국공영방송 BBC에서 실시한 Media Action 여론조사에서 미얀마의 27퍼센트, 약 1,500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버마민주화의소리 방송을 시청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25주년 기념행사에는 미얀마의 민주화를 지지하는 세계 각국의 인사들이 참석했는데요.  그중 북한의 민주화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인권 활동가가 있어 만나봤습니다. 데비 스토타드 국제인권연맹 아세안지부 사무총장은 오랜 역경을 지나 이제 첫발을 뗀 미얀마의 민주화처럼 북한의 독재 정권도 분명 막을 내리는 날이 올 것이라고 확신했는데요. 민주화가 시작되는 것은 역사적 필연이라며 북한 주민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데비 스토다드 사무총장 : 어떤 강압독재정권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결국엔 끝나게 될 것입니다. 중요한건 북한 주민들이 변화를 기대하고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느냐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변화에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우리는 금새 이전으로 돌아가버릴 것이기 때문이죠. 그러니 북한주민 여러분, 변화에 대해 계속 생각하세요. 꼭 강하게 살아남으세요.
 
진행 : 미얀마에 부는 개혁과 개방 바람이 북한내에서도 일어날 수 있기를, 그래서 언젠가 국민통일방송이 북한 내에서 방송을 만들어 전하는 날이 빨리 찾아오기를 바라봅니다 지금까지 기획특집 진유나 PD와 함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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