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군들은 왜 임진강 전선에 목숨을 바쳤나?

한국 전쟁을 겪었던 세대는 이제 노년의 길로 접어들었다. 한국전쟁 이후 한국은 경제 부흥을 일구었고 전후 세대들은 풍요를 바탕으로 미래를 꿈꾸며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60년 전 이 땅위에 동족상잔의 비극과 수많은 젊은이의 생명이 제물로 바쳐지는 참상이 있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울 정도다. 그만큼 우리에게 전쟁은 기억 속에서 멀어져 가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한국 전쟁 60주년을 맞아 한국인들에게 사라지는 전쟁의 기억을 다시 되새겨 주는 책이 출판됐다. 워싱턴 타임스지 서울 특파원으로 일하고 있는 앤드루 새먼은 타국의 전쟁터에서 산화한 영국군 병사들의 기록과 증언을 담은 『마지막 한발』(시대정신, 2009. 12)을 내놓았다. 그가 기록한 영국군 참전 용사들의 증언은 생생한 전장의 현장감을 전하는 동시에 그들의 죽음이 던지는 의미를 고찰하게 한다.


1951년 4월 수적으로 우세한 중국군의 공세에 맞선 영국군은 이틀간 방어선을 지켜내는데 성공한다. 후퇴 명령을 받은 29보병여단 가운데 글로스터 대대 750명은 퇴로가 차단되어 중국군의 주력인 제 63군 3개 사단, 약 4만 2천명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게 된다. 병력면에서 중국군의 1/50밖에 되지 않는 글로스터 대대가 버텨낸 사흘은 전쟁사적으로 유래 없는  전투로 기록돼 있다. 전투가 끝난 후 글로스터 대대원 중 생존자는 단 50명에 불과했다.


물론 전쟁은 이상적으로 미화 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러나 50여명의 임진강 전투 생존자들은 한국전쟁에 참전해 산화한 동료 병사들의 생명과 자신의 고통이 분명한 역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증언한다. 그것은 너무나도 다른 모습을 지니게 된 한국과 북한의 현재가 만들어 준 것이다.


한 노병의 진술을 귀담아 들어볼 필요가 있다.


“어느 날 밤 침실에서 자고 있는 데 내 무의식이 무언가의 존재를 감지했어. 잠에서 깨 눈을 떠보니 누군가가 침대 발치에 앉아 나를 또렷이 쳐다보고 있는 거야. 내가 처음으로 죽였던 그 중국군 병사였지” -데이비드 스트라찬


전쟁의 참상은 생존자에게는 지옥과 흡사한 잔상을 남기게 된다. 피란민들이 건너는 다리를 폭파해야만 했던 일, 남한의 준군사조직에 의한 민간인 학살, 자신들의 총에 죽어갔던 앳된 중국병사들.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한국에 왔지만 자신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인지 참전용사들은 혼란스러웠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기억으로 전역 후 그들은 다양한 외상 증후군을 겪게 됐다.


그러나 60년이 흐른 지금 한국의 발전된 모습과 밝은 국민들의 표정은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었다.


“지금의 한국이란! 하나님 맙소사. 믿을 수가 없더군. 허리띠의 버클이 고장나 그것을 고치려고 가게로 들어갔지. 거기 있던 주인이 인사를 하더니 새 버클을 끼워줬어. 얼마냐고 물었더니 ‘괜찮습니다. 저희들의 자유를 위해 싸워주셨잖습니까!’라고 말 하더군 크게 감동받았어. 우린 뭔가를 베풀었고, 그들은 거기에 감사를 한 거지.” -데이비드 스트라찬    


“50년 전 나는 내 인생의 1년을 줬어. 아니 나로서는 인생의 1년을 잃어버린 거지. 그리고는 내가 준 그 보잘것없는 것으로 한국인들이 뭘 이뤄냈는지 모르고 있었지. 한국인들이 날 환영할 때 난 그것보다 더 큰 무언가를 봤어.


그들은 신천지를 만들어냈더군. 놀랍도록 번성한 새로운 국가 말이야. 오히려 내가 이런 말이 하고 싶어. ‘저한테 감사하지 마십시오.  내 인생을 가치 있게 만든 건 여러분입니다. 내 자신을 돋보이게 해준 사람 또한 여러분입니다.”- 프레스톤 벨
  
책은 꼼꼼한 기록을 바탕으로 만들어 졌다. 저자는 참전용사들을 인터뷰하면서 그들의 경험을 시간대 별로 재구성해 임진강 전투를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특히 1950년 11월 시변리 전투부터 이듬해의 임진강 전투까지 영국군이 참가한 전투의 치열함과 비참함, 북한 포로 수용소에서의 생생한 경험담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포로로 붙잡혔다는 이유로 인사상 불이익을 당했던 장교 이야기, 밤마다 자신이 죽인 중국군 병사의 끔찍한 모습에 시달리는 병사들에 대한 이야기 등. 실제로 전투를 치룬 개개의 병사들이 겪어야 했을 갈등과 고통, 연민과 용기가 잘 나타나 있다. 책에는 참전 용사들이 직접 찍은 사진이나 그림, 전투 상황도, 전투에 참가한 병사들과 부대의 근황이 실려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