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결식 참가자에 ‘슬픔’ 없고 ‘불안’ 있었다

28일 조선중앙TV를 통해 공개된 김정일 영결식 장면은 1994년 북한에서 봤던 김일성 영결식때와 크게 다른 점이 없었다. 금수산기념궁전에서 행사를 진행하고 영구차량이 평양 시내를 돌아본 뒤 다시 금수산기념궁전으로 들어오는 행사 순서는 동일했다.


평양주민과 군인들이 일제히 동원돼 오열하는 장면까지 엇비슷하게 연출됐다. 그러나 TV에 잡힌 평양 주민들의 얼굴에서는 1994년과는 다른 분위기가 읽혀졌다.


조선중앙TV를 통해서는 오열하는 주민들의 모습이 반복적으로 보였다. 어떤 장면은 세 번도 넘게 나오기도 했다.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주민은 반복적으로 손을 올리고 내려 카메라가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무의식중에 드러내는 듯 했다. 


운구행렬이 전승거리를 지날 때는 여성들이 몸을 흔들며 ‘오열하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는 주민의 모습까지도 포착됐다. 앞에 서 있는 주민들은 몸을 몹시 흔들며 울고 있으나 중간지점 뒤쪽에 서 있는 주민들은 추위에 얼굴을 찡그리며 서성거리기도 했다.


당 선전선동부의 지휘아래 보도일꾼들의 철저히 계산된 영상임에도 곳곳에서 실수가 포착됐다. 철저한 감시와 통제 속에 진행된 영결식이지만 주민들의 마음까지는 감추지 못한 기색이 역력한 모습이었다. 


담담하게 서 있다가도 촬영기가 오는 것을 발견하면 바로 눈을 가리고 몸을 흔들며 우는 주민의 얼굴도 카메라에 잡혔다. 얼굴을 숙이고 있다가 카메라가 가까이에 온 것을 미리 감지하지 못해 멍하니 이를 바라보는 주민들도 눈에 띄었다.


이러한 모습들은 김일성 영결식 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김일성 영결식 때에는 땅에 엎드려 통곡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울다 지쳐 기절하거나 망연자실 땅에 주저앉아 있던 사람들도 드물지 않게 목격됐다. 


당시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숨을 거둔 사람들도 있었을 정도다. 김일성 영구가 발인되는 순간에 숨은 거둔 김일성 저택 지킴이 노인의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그는 이후 김일성의 위대성을 선전하는 데 자주 오르내렸다. 


물론 당시 100% 사실이라고 믿기는 어렵지만 김일성이 사망하기 전까지는 주민들이 그나마 먹을 고생을 안했다는 점에서 ‘수령’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와 애정은 남아있었다. 때문에 주민들은 이 같은 당국의 선전에 많은 부분 신뢰를 보였다.


그러나 이후 주민들은 ‘고난의 행군’으로 불리는 대아사 기간을 겪었다. 배급이 끊기면서 김정일과 지도부에 대한 불신은 갈수록 깊어졌다.


김정일 정권이 들어서서 나라의 경제와 주민생활이 하락했기 때문에 “국방에 들어가는 10%만 인민생활에 돌린다면 우리가 이렇게 가난하게 살지는 않을 것이다”는 볼멘소리를 공공장소에서 거리낌 없이 내뱉었을 정도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무덤덤한 표정으로 김정일의 운구행렬을 바라보는 주민들의 눈속에는 이미 김정일은 없었다. 다만 앞으로 닥쳐올 김정은 체제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에 따른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회의만 있었을 뿐이다.


영결식을 끝으로 독재자 김정일은 역사의 뒤안길로 완전히 사라졌다. 수령 독재의 바통을 이어받은 김정은이 김정일의 유산을 받아 안겠다고 공식 선언했지만 이는 김정일 일가(一家)에 대한 ‘불신의 시대’의 연장을 선언한 것일 뿐이다. 주민들의 모습에서 다갈올 미래의 불안이 엿보인 이유다.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