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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28일 ‘남북군사회담 북측 대변인’ 명의로 경의선∙동해선 철도연결 시험운행 취소와 관련, DJ의 방북을 남측의 ‘정략적 기도’라는 담화를 발표했다.
담화는 “그 누구의 열차방북은 협력과 교류의 외피를 쓴 정략적 기도에서 출발한 것이라는 것을 군대는 간파한지 오래”라고 주장했다.
북한은 경의선 열차시험운행을 합의한 지 1주일만인 24일 아침 ‘박정성 철도청 국장’ 명의로 통지문을 보내 ‘군사적 보장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점과 남측의 불안정한 정세’를 이유로 열차운행을 취소한다고 통보해왔다.
이후 남한 언론에서는 ‘북한 군부가 반대하여’ 열차운행이 취소된 것으로 보도해왔으며, 급기야 ‘남북군사회담 북측 대변인’ 명의로 담화가 발표되자 ‘확실히’ 군부의 반대로 무산된 것처럼 보도했다. 이 때문에 북한군부가 김정일과 별도로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처럼 오해를 사고 있다. 이로 인해 ‘김정일의 리더십에 문제가 있나?’ 식의 기사도 나왔다.
그러나 이 문제는 막연하게 ‘군부’로 표현할 것이 아니라, 좀더 정확히 볼 필요가 있다. 28일 담화는 ‘남북군사회담 북측 대변인’ 명의다. 여기에서 ‘남북군사회담’이란 남북장성급회담에 나온 북측 대변인을 의미한다. 장성급회담에 나온 군인들은 대부분 조선인민군 정찰국(남한 정보사에 해당)에 소속된 군인들이다.
만약 이들이 조선인민군을 대표할 수 있다면 남한언론에 나온 것처럼 ‘북한군부’가 반대했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군부’를 대표하는 사람은 오로지 최고사령관 겸 국방위원장,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인 김정일 한사람 뿐이다.
그런데, 남한언론에서는 북한군부와 김정일을 분리하여 마치 군부가 독자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보도하고 있다. 특히 대변인 담화가 나오자 ‘북한군부’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대변인 담화는 군부의 담화가 아니라, 김정일의 지시로 발표된 것일 뿐이다. 즉 24일 이후 북한이 열차시험운행 취소와 관련하여 나온 각종 대남 비난은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북한 철도청에서 남북 열차시험운행 보고서를 김정일에게 올렸는데, 군이나 당 일각에서 김정일에게 의견을 제시할 수 있고, 김정일이 마음이 변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김정일은 결심했는데 군부가 반대하여 무산됐다’는 식으로 보는 것은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다.
지금 김정일은 마치 군부에 독자적인 목소리가 있는 것처럼 ‘대남 선전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필요할 경우 대외적으로 ‘군부’를 활용하자는 속셈이다. 이를 정확히 보지 못하면 24일 이후 진행되고 있는 열차운행 취소사태를 제대로 볼 수 없다. 김정일은 지금 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를 놓고 남한의 양보를 압박하고 DJ 방북을 빌미로 현금이나 경제지원을 더 타내려는 ‘게임’을 벌이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김정일은 지금 대남 압박중
김정일의 군에 대한 감시체계는 대단하다. 김정일은 군사 집단간 충돌과 쿠데타를 우려해 군부대 당일꾼, 지휘관, 보위사령부(남한 기무사 해당)들의 동향을 낱낱이 감시하는 2중, 3중의 감시체계를 세워놓고 있다.
군 사령관이나 군 요직 간부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매일 군 ‘통보과’를 통해 보고되며, 그들의 움직임과 관련한 특기 사항은 작성자의 개인적인 관점이나, 해설이 들어가지 않고 6하 원칙에 따라 사실관계만 적시하게 되어있다.
이번 대변인 담화는 김정일의 배후 조종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북한군 대변인이 ‘단명으로 끝난 금호지구 건설’ 등을 언급하면서 개성공단과 경수로 문제까지 들고 나왔다. 남북경협 문제(장관급 회담)와 경수로 문제(6자회담)는 군 대변인이 발표할 수도 없는 것이다.
따라서 철도연결이라는 카드를 쥐고 DJ 방북에 앞서 군의 강경함을 인식시켜 NLL 양보와 지원을 받아내기 위한 ‘남한 비틀기’일 가능성이 높다. 그 주역은 ‘군부 대표’ 김정일임에 틀림없다.
한영진 기자(평양출신 2002년 입국)hyj@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