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운행무산…대북 조치와 남북관계는

“이번 사안 하나를 갖고 남북관계 전체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정부는 이번 일과 관련된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인가에 대해 다각적으로 검토할 것이다.”

신언상(申彦祥) 통일부 장관이 24일 북측이 경의선.동해선 열차시험운행을 무기연기한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밝히면서 앞으로 어떤 조치가 취해지고 남북관계는 어떻게 될 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신 차관은 그러나 조치의 내용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북측이 시험운행을 불과 24시간 앞두고 합의사항을 깨고 무기연기했다는 측면에서 그동안 남북 간에 합의했던 신규 경제협력사업이나 대북 지원사업을 ‘유보’할 가능성마저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향후 방향에 대해 “예정된 남북관계를 일정대로 추진하면서 큰 틀에서 남북관계와 대화 채널을 유지하면서 이와 조화롭게 북측에 결자해지 차원의 해결을 촉구하고 여러 조치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설명을 풀어보면 남북관계 유지에 우선점을 두되, 이번 문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고 상황에 따라 조치를 구사하겠다는 취지로 들린다.

이처럼 정부가 남북관계 유지에 방점을 찍은 것은 북핵 문제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가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 남북관계를 통해 북핵 문제를 풀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던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역으로 보면 북측이 시험운행 무기연기 조치가 몰고올 파장이
어느 정도일지를 뻔히 알면서도 이날 갑자기 연기를 통보한 것도 우리측이 처한 이런 상황을 미리 계산에 넣었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여러 조치’를 언급한 대목이다.

구체적인 언급은 피했지만 여기에는 그동안 우리측이 북한에 대해 비공식적 지렛대로 사용해 온 경협사업이나 대북지원이 포함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북측의 이번 연기통보로 인해 여론이 악화된다면 정부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대북 지원에 대한 명분 축적이 어렵게 되는 상황도 가정할 수 있다.

일단 ‘조치’의 대상으로는 지난 19일 경제협력추진위원회(경협위) 제4차 위원급 실무접촉에서 열차 시험운행을 위한 세부계획에 합의하면서 대체적인 의견 접근을 본 경공업-지하자원 협력사업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는 우리측이 신발, 의복류, 비누 등 3대 경공업 원자재를 제공하고 북측은 마그네사이트 등 지하자원에 대한 투자개발권을 우리측에 준다는 내용으로, 작년 7월 10차 경협위에서 합의한 뒤 이행방안을 논의해온 사안이다.

특히 경공업 원자재 문제는 북측이 ‘올인’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현안이다.

이 때문에 협의과정에서 우리측의 철도 시험운행과 북측의 경공업 원자재 제공요구가 사실상 맞물리는 형국을 보였다는 점은 우리측이 향후 협의과정에서 원자재 제공 논의를 유보할 가능성을 점칠 수 있게 한다.

정부 관계자는 원자재 제공과 관련, “아직 최종 합의가 안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이달 말이나 다음달 초 제12차 경협위가 열린다면 경공업 원자재 문제 뿐 아니라 대북 쌀차관 제공 문제도 논의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쌀차관이나 북측이 추가로 요구한 비료 지원도 ‘조치’의 대상이 될 여지가 적지 않아 보인다.

이런 맥락에서 정부는 제12차 경협위 개최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경협위가 예정대로 열린다면 경색 위기에 처한 남북관계에 활로를 찾고 북측의 태도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이번 무기연기 사태가 경협라인이 아닌 북측 군부의 판단에 따라 막판에 이뤄진 것으로 보고 경협 채널에 마지막 기대를 걸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결국에는 서해 경계선 문제에 봉착할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다.

시험운행을 위해서는 북측이 문제삼은 군사보장에 대한 재협의가 불가피한 데다 북측 군 당국이 군사보장 문제에 해상경계선 문제를 연계하는 듯한 스탠스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시험운행의 무산을 하루 전에 암시한 북측 군 당국의 전통문이 서해상 충돌방지 방안을 거론한 것은 이런 전망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북측 군 당국은 23일 오후 늦게 군사채널로 보낸 전통문에서 “서해상 충돌방지와 같은 근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어떤 문제도 제대로 해결될 수 없다”고 밝힌 것이다.

이에 따라 군사회담이 열린다면 지난 16∼18일 열린 제4차 장성급군사회담의 연장선상에서 북측의 해상경계선 재설정 문제와 우리측의 남북기본합의서 상의 8대 군사합의 이행 문제가 다시 맞부딪힐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북측이 우리측 제안을 받을 가능성이 희박한 것은 물론 우리측 요구대로 이 문제를 논의할 남북국방장관회담 개최에 동의할 지 여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김대중(金大中.DJ) 전 대통령의 6월 하순 방북도 관심사다.

정부는 북측이 초청한 것인 만큼 이번 시험운행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이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북측이 또다른 이유를 대면서 미룰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DJ 방북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오는 29일로 잡힌 제2차 실무접촉이 예정대로 열리고 방북도 실현된다면 상황을 뚫을 수 있는 계기가 되겠지만 미뤄지거나 무산될 경우 향후 남북관계 악화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이와 함께 6.15 6돌을 맞아 남쪽에서 열리는 기념행사에 북측 당국 대표단이 다음달 14∼17일 광주 등을 방문하기로 우리측과 합의한 상태인 만큼 남북 고위급 채널의 만남을 통한 극적 해법도 기대해 볼 수 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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