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시험운행 동해선 시승기

오전 11시 25분 금강산역. 열차에 빨리 오르라는 북한 승무원의 재촉에 승강장에서 환담을 나누던 남북측 인사들이 북측의 `내연 602호’ 열차에 몸을 실었다.

역사에 스피커 시설이 없어서인지 북측 역무원이 플랫폼 근처에 주차해놓은 현대 스타렉스 차량에 설치된 확성기로 ‘열차에 오르십시오’라며 두세 차례 말해 승객들의 탑승을 독촉한 것이다.

역사적인 동해선 시험운행은 이렇게 시작됐다.

열차의 외관은 현대식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어 보였다. 초록색 몸체에 지붕은 옅은 회색 페인트칠이 돼 있어 다소 조악한 모습이었다.

임종일 건설교통부 남북교통팀 사무관은 “외관은 비둘기호 정도지만 성능은 비둘기호 보다는 낫다”고 설명했다.

열차에 오르자마자 최근 칠을 새로 한 듯 냄새가 코를 찔렀다.

2호차에 들어서자 정면으로 보이는 맞은편 출입구 위에 고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좌석은 남과 북의 인사가 마주보게 배치됐다. 4명 당 사이다 1병, 딸기 단물 1병, 일경 금강수(금강산 샘물) 등이 준비돼 있었다.

객석은 고정돼 있었다. 자리를 뒤로 젖힐 수도 없었고 시트와 등받이가 거의 수직을 이뤄 다소 불편한 편이었지만 아이보리 색의 비닐 시트는 생각보다는 푹신했다.

오전 11시 27분. ‘뿌우우~’ 기적이 울렸다.

열차가 앞뒤로 서너 차례 덜컹거리다가 서서히 출발했다. 건교부 관계자는 “북한 열차는 기적소리를 자주 울린다”고 귀띔했다.

열차는 시속 10km 정도의 속력으로 역을 서서히 빠져나갔다. 역 주변의 북한 주민들이 일손을 놓고 열차를 바라봤지만 손을 흔드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금강산도 서서히 시야에서 멀어졌다. 철로 주변에는 아직 모내기를 하지 않은 물 댄 논들이 펼쳐져 있었지만 주민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금강산 관광차 관광버스 행렬을 지어 북으로 가는 한국 여행객들이 도로 옆 철로를 달리던 열차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첫 곡선주로가 나왔다. 기차 차체가 10도 정도 도는 방향으로 기우는 듯했다. 이런 상황은 곡선주로마다 반복됐다.

열차 안에서는 남북이 이야기 꽃을 피웠다. 웃음소리도 들렸다.

“뭐 하시겠습니까”라며 평양봉사대에서 나온 여성 봉사단원들이 좌석을 오가며 음료를 서비스하기도 했다.

오전 11시50분께 삼일포역을 지났다. 그리고는 남측이 상판제작을 해 복구됐다는 남강 1교 다리를 통해 남강을 건너갔다. 삼일포역을 지나자 멀리 북한의 명승지인 삼일포와 해금강이 한눈에 들어왔다.

차창 밖으로는 또 이번 열차시험운행을 위해 새로 지었다는 디젤 기관차 차고 건물 두동이 보였다. 한 동에는 군인 10명 가량이 차고 안에서 유리창을 통해 밖으로 열차를 지켜봤다. 차고에 디젤기관차는 없었다.

열차가 갑자기 속도를 줄였다. 감호역이었다. 북측의 마지막 분계역으로 통행 세관검사가 이뤄지는 곳이다. 오전 11시55분. 금강산역에서 감호역까지 15km 가량 되는데 30분 걸렸으니 평균시속 30km로 달린 셈이다.

낮 12시께 세관원 4명과 역무원 2명이 칸마다 탑승했다. 그중 한명이 “첫열차 운행의 승객이 된 여러분들을 열렬히 환영합니다. 이제부터 통관 및 세관 검사를 실시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검사를 시작했다.

사진이 첨부된 명단과 실물을 대조하고 디지털카메라 검사도 철저히 했다. 차창 밖 북측 지역을 촬영했는지 살펴보는 절차였다. 북측은 과거에도 군인 등 민감한 부분이 찍힌 사진을 발견하면 지우게 한 적이 적지 않다.

이 때문에 통관 검사에 시간이 꽤 소요됐다. 하지만 예정된 출발시간 탓인지 검사를 채 마치지 못했다.

다시 기적소리. 그와 거의 동시에 열차는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아까의 두배는 되는 느낌이었다. 기적소리 빈도가 높아졌다. 그리고 DMZ에 들어섰고 낮 12시21분 역사적인 군사 분계선을 통과했다.

객차 내에선 박수소리가 터져나왔다. 분계선을 지나치자 마자 거짓말처럼 속도가 줄면서 열차도 조용해졌다.

`60′, `20′ 속도가 적혀있는 속도 표지판, 속초 56km 등으로 적힌 이정표와 풍광이 남쪽 지역임을 알려줬다.

시간이 지나면서 널찍한 포장 도로가 나타났다. 동해선 열차시험운행의 종착역인 제진역에 도착한 것. 낮 12시34분이었다.

요란한 고적대 음악소리와 한반도기를 흔드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면서 반세기만에 열차가 남북을 달리는 역사적인 순간에 있었음을 새삼 자각하게 했다./고성=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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