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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차 경추위에서 열차시험운행을 한다는 조건으로 남한이 8,000만 달러 (약 800억)상당의 경공업 원자재를 북한에 지원하기로 합의됐다. 비록 시험운행이 합의문에는 빠졌지만 구두로 합의됐다는 것이 경추위 남측 위원장의 설명이다.
합의문에는 ‘조건이 조성되는 데 따라’라는 문구가 들어갔다. 박병권 남측 위원장은 7일 ‘조건 조성’에 대해 서로 다른 해석의 여지를 제거하기 위해 합의문 낭독시 ‘조건조성’은 열차시험운행을 뜻한다고 명확히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열차시험운행이 선결되지 않으면 경제지원을 할 수 없다는 남측의 입장은 일단 명백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이 이같은 ‘구두 합의’를 제대로 지킬까 하는 것이다. 그동안 북측은 멀쩡히 합의해놓고도 지키지 않은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일방적인 합의 파기와 시간연장 등 제멋대로 한 사례가 너무 많아 이번 합의도 실행에 옮겨지기까지 꽤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제네바 합의, 남북기본합의서, 한반도비핵화협정, 9.19 공동성명 등 중요 국제협정이나 합의를 제외하고 최근 남북관계에서 비교적 ‘사소한’ 문제에서 북한이 어떤 식으로 합의를 파기하거나 변경했는지 요약해본다.
일방적인 변경, 취소로 남한 길들이기
▲ 2005년 6.15 남북공동행사에 참석하는 대표단의 규모를 축소해달라고 요청. 당시 6.15행사는 바로 며칠 전 개최된 차관급 회담에서 논의된 합의사항이었지만, 북한은 “미국이 최근 핵문제와 관련해 북한체제를 압박 ∙ 비난하는 등 축전개최에 새로운 난관이 조성되고 있다”고 주장. 남한 정부 수락.
▲ 2003년 8월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 때 개막 사흘 전에 갑작스레 불참 선언. 그 며칠 전 열렸던 보수단체들의 8.15 시위에서 인공기 소각을 빌미로 삼았다. 이에 노무현 대통령이 유감의 뜻을 표하자 7시간 만에 다시 ‘참가’.
▲ 2001년 10월 6차 장관급 회담을 포함한 남북간 각종 당국회담을 애초에 합의된 서울이 아니라 금강산에서 하자며 회담개최 보름 전에 제의. 이유는 “(테러와의 전쟁으로 인해) 남조선은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 남한 정부 수용.
▲ 2004년 3월 경기도 파주가 개최 예정지이던 남북청산결제실무회담을 북한이 하루 전에 일방적으로 개성에서 열자고 제안. 이유는 당시 대통령 탄핵사태로 인한 남한의 ‘정국불안’ 때문이라는 것. 남한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한 달 뒤 파주에서 개최.
▲ 철도 연결시험은 2000년 제1차 남북장관급회담, 2004년 경제협력추진위 제9차 회의, 2006년 5월 24일까지 도합 세 번 합의서 무산.
북한은 지난 5월 24일 시험운행을 취소할 때도 ‘서해 NLL 논의’ ‘단명으로 끝난 금호지구 건설’, ‘남한 내 정세’ 등 엉뚱한 주장을 들고 나왔다.
이를 보면 북한은 열차시험운행까지 각종 핑계를 들고 나올 가능성이 높다. 그중 유력해 보이는 것은 ‘열차시험운행을 하려거든 미국이 먼저 금융조치를 철회하여 6자회담에 난관이 조성되지 않도록 남한이 노력해봐라’고 할 가능성이 있으며, 아울러 ‘군부 반대’ 운운하며 서해 NLL 논의를 계속 들고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한국정부는 북한이 무슨 핑계를 들고 나오든 열차시험운행이 될 때까지 다른 현안과 연계하지도 말고 경제지원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 좋다. 지난 5년 이상 시험운행이 지연돼 왔는데, 몇 달 늦어진다고 애 태울 일이 아닌 것이다. 급한 쪽은 북한이라고 생각하고 느긋하게 기다리는 것이 좋다.
한영진 기자(평양출신, 2002년 입국)hyj@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