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당 반대하면 국민 대다수가 파시스트인가?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은 8월 29일 참여연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열린우리당의 5·31 지방선거의 참패와 관련, “1930년대 대공황을 전후해서 유럽에서 파시즘이 대두한 것처럼 우리 사회에 그런 위험이 있다. 그것이 5.31에서 표현된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언론에 알려진 발언의 내용은 매우 간략해 그가 어떤 맥락에서 이 발언을 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열린우리당이 정치적 위기에 몰릴 때 한국의 보수진영을 히틀러 파시즘과 동일시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김의장은 2004년 3월 노무현대통령이 국회에서 탄핵된 후 한편으로는 헌법재판소에서 최종 심판이 진행되고 4․15 총선을 앞둔 때에 한 TV토론에서 다음과 같은 취지로 발언을 했다:

김근태 위원장은 10일 밤 KBS심야토론에서 한나라당 박세일, 자민련 정우택 선대위원장 등이 “정치권이 헌재의 탄핵 결정 승복에 합의하자”고 제안하자 “합법적이니까 헌정 중단이 아니라는 것은 히틀러가 나치즘을 건설해 집권한 그때와 같다”며 명확한 합의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또 “히틀러의 1930년대 집권과정은 절차적으로는 합법적이나, 국민의 의사에 반하는 중대한 문제”라며… 탄핵 결정 승복 합의 여부를 끝까지 비켜갔다.[문화일보 2004.4.12]

집권당의 대표가 한국사회가 파시즘화 될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하였다는 것은 그 자체로는 나쁜 일이 아니다. 김근태 의장이 히틀러의 집권과정과 당시의 독일 상황, 그리고 파시즘의 본질이 무엇이냐에 대하여 어떤 지식과 판단을 갖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실로 파시즘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민주주의 사회로부터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지지하는 모든 사람들이 항상 경계해야 할 바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자유민주주의와 파시즘은 양립할 수 없는 가치관들이기 때문이다. 즉 파시스트는 자유민주주의 사회를 떠나야 하고 자유민주주의자는 파시즘 하에서 살 수가 없다.

정권의 선동, 포퓰리즘이 파시즘적 요소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서로 다른 가치관, 서로 다른 이념이 충돌하는 것은 당연할 뿐더러 필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가치관들이 서로 다르고 또 당면한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 역시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처럼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다양한 의견들도 그 어떤 민주적 절차를 거쳐서 단일한 결론에 도달해야 비로소 문제해결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관건은 이 민주적 절차가 무엇이냐라는 점이다. 다음의 세 가지가 핵심이다:

첫째, 서로 다른 의견이 충돌할 때, 가장 먼저 시도해야 할 점은 논쟁(토론)이다. 논쟁이란 자신의 주장을 근거와 함께 제시함으로써 타인을 설득하려는 시도이며, 당연히 자신도 타인의 주장과 근거가 옳다면 설득당할 수 있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논쟁이 아니라 다만 논쟁을 빙자한 강요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내용적 측면이다.

둘째, 여러 의견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때, 혹은 하나로 합의할 때 필요한 것이 다수결의 원칙이다. 다수결의 원칙이 반드시 최선의 해결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민주주의는 진리의 상대주의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형식적으로 다수결의 원칙은 반드시 필요하다.

셋째, 이러한 의사결정 과정이 국가의 중대사일 경우 그것은 법적으로 명확하게 정해진 규칙에 따라야 한다는 법치주의가 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요소들이 무엇인지는 명백하다.

우선 이성적 논쟁을 선동과 포퓰리즘이 대신하였을 때 민주주의는 내용적으로 붕괴되기 시작한다. 다음으로 다수결의 원칙이 오로지 그 결과적 측면만을 고려하여 협박과 매수, 회유, 사기 등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추구되었을 때 민주주의가 형식적으로 붕괴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법적으로 정해진 절차를 무시하면 법치주의가 무너지면서 사회는 법의 영역 밖으로 원심 분리되어 사회의 제반 세력은 폭력과 궤변으로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고자 한다. 민주주의의 다양성은 야만사회의 불안으로 순식간에 뒤 바뀌는 것이다.

열린당 반대하면 국민 대다수가 파시스트인가?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열린우리당은 지난 2004년 대통령 탄핵을 ‘의회 쿠데타’라고 규정하였고, 그 이유는 “대통령은 국민에 의해 선출된 권력이라는 사실”을 국회가 무시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대통령 탄핵의 경우 ‘대통령’의 헌법적 정의상 “국민에 의해 선출된 권력을 탄핵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고, 탄핵의 주된 이유가 대통령의 위법 행위에 있었다는 점도 역시 무시되었다.

간단히 말해 국회에서는 탄핵에 대한 이성적 논쟁보다는 여당의 언어도단(言語道斷)적 선동이 전면에 나선 것이다. 또한 정권과 유착된 공영방송들은 대통령의 탄핵에 대한 중립적, 이성적 논쟁보다는 차라리 광기라고나 부를 수 있는 일방적 선전을 쏟아 부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의 선동은 탄핵과정에만 그친 것이 아니다. 헌법재판소의 심판을 기다리는 와중에, 바로 위에서 인용하였듯이, 김근태 의장(당시 원내대표) 등은 헌법재판소의 법적 권위 자체를 부정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면서 김의장은 독일 의회의 입법권을 박탈하여 총통에게 부여한 독일의 수권법(Ermächtigungsgesetz)을 염두에 두고 “히틀러의 1930년대 집권과정은 절차적으로는 합법적이나, 국민의 의사에 반하는 중대한 문제”라면서 마치 당시 탄핵에 참가한 정당이 파시즘적 권력찬탈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여기서 밝히고 넘어가야 할 것은 히틀러가 수권법으로 집권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 이전에 히틀러의 나찌당은 총선에서 다수당이 되어 독일국가인민당(Deutschnationale Volkspartei)과 연정으로 내각수반이 되었으며, 따라서 독일국민의 의사로 집권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히틀러의 돌격대(SA)에 의한 거리의 테러리즘을 통하여 수년 전부터 공포분위기를 조성하였고, 선전상 괴벨스는 역사상 처음으로 방송을 정권의 선전과 선동수단으로 사용하였으며, 그의 간계를 통해 의사일정도 자기편에 유리하도록 인위적으로 조작하였다는 점이다. 바꿔 말해 수권법의 통과는 정상적인 민주적 절차를 밟은 것이 아니며, 차라리 탄핵 당시 집권당과 정언유착의 신문, 방송의 행태가 바로 파시즘의 일상적 행태에 더 가까웠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의장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 당시 헌법재판소의 심판을 수권법에 비교하면서 국민의 심판만이 이러한 형식적 민주주의, 파시스트적 횡포를 저지할 수 있다고 강변하였다. 이런 사실 훼조와 선동의 결과인지, 열린우리당은 국민다수의 지지를 받아 국회에서 과반수를 넘는 대승을 하였다. 그때는 탄핵 당사자나 김근태 의장 모두 ‘민심이 천심이며, 수구보수의 정권찬탈음모를 국민의 힘으로 분쇄하였다’고 감격하였을 것이다. 그것은 헌법재판소에서 분명 대통령의 위법사항을 적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심판 후 반성보다도 “임당수에 몸 던진 심청이를 국민이 건져 주었다”는 대통령의 무용담으로도 분명한 것이다.

그러나 김의장은 바로 국민의 절대다수가 현 정권과 집권당을 심판한 지난 5.31 지방선거 결과를 1930년대 대공황 전후의 독일 상황에 비교해 마치 극우세력의 결집인 것처럼 주장하였다. 김근태 의장의 사고방식에 따르면 국회에서 합법적으로 의결된 것도 열린우리당의 이해와 충돌하면 국민의 의사를 통해 저지해야 할 파시스트적 폭거요, 국민의 의사가 열린우리당의 이해에 충돌하면 이에 가담한 국민들 자신이 파시스트라는 것이다.

제대로 알고 ‘파시즘’ 말하자

물론 우리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다수의 지지가 반드시 올바른 결정이 아닐 수 있음을 잘 알고 있다. 특히 현대와 같이 얼마든지 조작 가능한 영상매체가 대중의 의사결정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사회에서 대중의 견해에 대하여 비판하는 것은 지식인들의 사명이기도 하다. 더 멀리 갈 것도 없이 바로 2년 전 탄핵에 참가했던 정당들에게 궤멸적 패배를 안겨 주었던 총선시의 국민이 탄핵의 주역이었던 조순형 의원을 이번 보궐선거에서 당선시켜준 것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민심이 천심”이라는 정치가들의 아부성 발언이 아니라 “어떤 상황 하에서 어떻게 형성된 민심이 천심”인가라는 점이다.

1929년 대공황이 히틀러의 집권에 결정적 발판을 만들어 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대공황은 독일에만 온 것도 아니고 독일에서도 나찌 지지자들에게만 고통을 준 것도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히틀러가 경제공황의 늪에서 고통을 받는 독일국민의 심리를 당시 독일의 어떤 정치가들보다 잘 이용하였다는 점이다.

그는 실업자에게는 직업을, 군인들에게는 베르사이유 조약의 무효를, 기업인들에게는 이윤창출을, 학생들에게는 독일제국의 영광을, 그리고 독일의 참상은 모두 유태인의 탓으로 전가하면서, 심지어 결혼하지 못한 처녀총각에게는 배우자까지 약속하였다. 당시로서는 최첨단의 이미지 조작, 여론조작 그리고 신들린 연설을 통하여 “단순 명쾌한 해결책”을 원하는 모든 독일국민들에게 분명한 답을 주었다. 조금이라도 생각할 줄 아는 국민이라면 이 모든 약속이 절대로 지켜질 수 없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지만, 1차 대전 이후 어렵게 이룩한 얼마간의 사회안정이 경제공황으로 무너지자 독일국민들의 눈에는 당장의 달콤한 포퓰리즘이 냉정한 현실인식보다 더 반가웠고 민족감정의 자극은 죽은 사람도 다시 일어날 만큼 자극적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반드시 집고 넘어가야 할 점은 당시 독일 국민이 보수로, 우파로 회귀한 것이냐는 의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는 학자들도 파시즘이란 근본적으로 우파에서 나오거나 혹은 자본주의의 산물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파시즘은 무엇보다도 권력의 쟁취와 유지를 위한 일련의 정치적, 이념적 메카니즘을 통해서 등장하는 것이지, 자본주의와 직접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다. 생각해 보라. 마르크스에 의하면 자본주의에 내재해 있다는 공황의 발생으로 극도의 고통을 받고 있는 독일 일반국민이 무엇 때문에 자본주의화, 우경화, 보수화를 지지하였겠는가?

이 점은 나찌(Nazis)의 당명이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Nationalsozialistische Deutsche Arbeiterpartei)”이라는 점에서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즉 파시스트 정당은 부유층의 지지를 기반으로 출발하는 엘리트 정당이 아니다. 파시즘은 거의 전부 포퓰리즘을 기반으로 서민들, 실업자, 영세상인, 전후 방황하는 제대군인 등 대중동원을 바탕으로 하며 히틀러의 돌격대 성향 역시 숙청되기 전까지는 사회주의 계열이었다. [이 점은 이탈리아 파시스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며 무솔리니 역시 사회주의자였다].

히틀러는 집권기반을 마련할 때까지 독일 기업가들로부터 거의 지원을 받지 못하였다. 독일의 기업가들이 히틀러와 손을 잡은 것은 히틀러가 권력을 잡을 확률이 높아졌을 때로서 정경유착의 혜택과, 공황으로 인해 혼란에 빠진 독일사회가 공산주의화 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였다. 히틀러는 자기의 국가사회주의가 공산주의보다 더 진정한 사회주의라고 주장하였고, 영미의 자본주의는 “돈 많은 자들의 정치(plutocracy)”라고 비난하였다. 히틀러에게는 사회주의는 서민들이라는 권력기반을 놓고 싸우는 경쟁자요, 영미식 자본주의는 국가의 정신적 가치를 모르는, 개인들의 천박한 이윤추구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였다.

5.31선거에서 집권당 참패의 원인은 김근태 의장 본인도 인정하듯이, 노무현 대통령의 무능과 오기로 인한 경제적 실정, 패가르기에 의존하는 포퓰리즘적 선동, 그리고 김정일 봉건세습파시즘에 대한 일방적 옹호의 참담한 결과들이다.

그렇다면 선거의 결과는 무엇인가?

국민들이 보수정당을 지지하였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나, 그것을 파시즘으로 모는 것은 이만저만한 자가당착이 아니다. 만약에 한나라당이 파시즘적 행태인 선동과 포퓰리즘으로 선거운동을 하였다면 아마 열린우리당은 지금과 같은 참패의 수모를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국민은 지난 지방선거를 통하여 정권과 집권당의 무능한 선동정치에 진절머리를 내었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집권세력이 보여주고 있는 파시즘적 행태 그리고 그 무능함에 경고를 보낸 것이다. 한마디로 치료를 간단히 장담하는, 심지어는 치료가 되었음을 그냥 ‘선언하는’ 돌팔이 정권에 대한 학습효과의 결과이다.

사실 지난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의 선거운동은 몇몇 시와 도를 제외하고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었다. 국민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벼르고 별러 투표장에 달려들은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가슴에 누적된 화병을 다스릴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백번 옳았던 열린우리당의 “지자체 선거는 지방정치의 일꾼을 뽑는 것이지 중앙정치를 심판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호소가 전혀 먹혀 들어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선거결과를 아예 무시하고, 집권당 의장이라는 사람은 국민의 분노를 파시스트적 행태라고 모욕하고 있다. 총선이 있은 지 불과 2년 후의 결과를 이렇게 거꾸로 해석하는 것은 평범한 사람에게는 낯간지러워서라도 대취(大醉)하기 전에는 힘든 일이다.

김근태 의장은 5.31 지방선거를 1930년대 독일의 선거와 동일시하기 위해서는 한나라당이 어떤 꿀단지 같은 선거공약으로 국민들을 현혹하였는지를 먼저 밝히는 것이 옳았다. 그렇지 않고 좌파정권의 자업자득으로 일어난 경제난국 때 국민들이 우파에게 표를 던지는 것이 곧 파시즘이라면,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좌파는 경제에 관한 한 아무 신경도 쓸 필요도 없으며 책임도 없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보수진영에 대한 경멸과 오만이 없다면 이런 생각은 정말 나오기 힘든 것이다.

남북정권 차원 ‘파시즘’ 엿보여

필자는 그러나 지난 탄핵 때나 이번 5.31지방 선거 결과를 놓고 김근태 의장이 주장한 파시즘은, 그리고 필자가 이에 반론하면서 주장한 집권세력의 파시즘적 행태는 본격적인 파시즘에 비하면 물 찻잔속의 태풍에 불과하며, 진정으로 파시즘이 현실화 될 수 있는 가능성은 순전히 국내 정치에서는 매우 힘들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파시즘의 현실화에 필요한 “무자비한 폭력”의 대규모 공급이 현 한국사회에서는 어렵기 때문이다. 인천 자유공원과 평택 등에서 일어난 폭력 시위에 대한 국민의 반응에서 알 수 있듯이, 폭력과 무기사용에 대하여 한국국민은 거의 공감을 하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한국사회가 파시즘화 될 가능성은 없는 것인가? 필자의 관심은 실은 여기에 있으며 그 대답은 물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국내차원이 아니라 한반도 전체를 보았을 때에나 분명하게 보이는 가능성이다. 이 점을 알려면 파시즘의 세 가지 측면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파시즘은 폭력, 정권의 선동, 대중의 광기가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회오리 바람처럼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파시즘은 단순한 독재가 아니다. 독재는 권력유지에 필요한 기관만을 장악하지 권력의 저변에 깔린 이데올로기를 확대재생산하는 것에는 큰 관심이 없다. 즉 군대와 경찰, 사법기관 등을 장악하고 언론을 탄압하고 정권유지를 위한 돈을 장만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독재는 히틀러파시즘의 “정신적 가치”와 비교할 때 매우 세속적이며 실은 이데올로기라고 할 것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히틀러가 무슨 이유로 수백만의 유태인을 절멸수용소에서 마치 컨베이어 벨트에 밀어 넣듯 가스로 죽였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결코 물질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것이다.

반면에 파시즘은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선전기관을 통해서 선동하지만, 그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각 분야에서 계속 자발적으로 확대 재생산하는 것이 특징이다. 예를 들어 나찌 하의 언론계, 학계, 예술계 등등에서 자발적인 참여가 있었다. 그리고 이처럼 확대재생산하여 선동과 열광을 일으키기 위한 재료가 “민족(인종)의 우상화”와 “외세에 의한 탄압과 외세에 대한 저항”임은 모든 파시스트들에게 공통인 사실이다.

그것은 마치 지금 한국사회에서 해방 후 지난 60년의 역사를 미 제국주의의 앞잡이들의 역사로 치부하여 민족해방이 ‘현재’ 우리민족의 과제라고 생각하는 광범위한 세력이 때로는 자발적으로, 때로는 정권과의 유착 하에서 활동하는 것과 매우 흡사하다. 간단히 말해 한국사회에는 파시즘에 필요한 선동과 열정은 존재하나, 이를 바탕으로 반대세력을 무력으로 제압할 폭력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반면에 김정일 정권의 경우 이미 부도난 상태로 인해 경제적 관점에서 공산(共産)은 사라졌으며 남은 것은 통치의 상부구조로서 수령주의의 깃발아래 사당(私黨)화된 권력집단이다. 그러나 이들은 파시즘체제의 특징인 집단수용소와 공개처형이라는 무자비한 폭력을 무기로 아직도 막강한 선동능력을 지니고 있다. 아니, 북한정권의 역사는 선동의 역사라고 보아도 무방할 만큼 양과 질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문제는 파시즘의 본격화에 필요한 대중의 열광이 북한에서 사라졌다는 점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하루 연명하는 것이 어려운 사회에서 ‘자발적’인 이데올로기의 재생산이란 무력으로도 강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반도 전체로 보아서 남의 ‘선동’과 ‘열광’이 북의 ‘폭력’과 결부되면 반드시 파시즘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남쪽의 선동과 열광은 그 기반이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이른바 “우리민족끼리”라는 극도로 배타적 이념에서 출발, 북한정권에 의한 “인간성에 대한 범죄행위”를 옹호, 변명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믿는 개방적 사고를 지닌 국민들과 충돌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후자의 저항을 논쟁과 민주적 절차로는 절대로 제압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즉 필요한 것이 폭력이다. 우리는 이런 남북협력의 조그마한 실례를 작년 12월 한국에서 열린 세계북한인권대회에 대한 열린우리당 의원 몇몇의 반응에서도 이미 보았다. 인간 보편의 가치를 위한 자리를 그들은 “전쟁하자는 것이냐”라고 반응하였다. 즉 북한의 무력을 담보로 하는 협박이다. 반대로 북에는 경기장이나 광장 밖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사라진 대중적 열광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지금까지 북한정권의 선동과 선전의 당위성을 증명해 줄 사태가 요구된다. 그것이 바로 남쪽의 열광과 북한정권을 통해 조공으로 둔갑한 물질적 지원일 것이다.

지금 우리사회, 이성적 논쟁 가능한가?

김근태 의장은 북한인민이 아니라 “김정일세습 봉건파시즘에 대한 경멸과 저항”을 파시즘과 “냉전수구대연합”이라는 괴물의 등장으로 표현하고 있다. 필자는 이 지점에서 현 한국사회에서 이성적 논쟁이 더 이상 진전될 수 없는 한계상황이 분명해지고 있음을 본다. 서로 다른 견해와 가치관을 지닌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인간성의 저 밑바닥, 사실확인의 저 근저에 있어야만 하는 최소한의 공통점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필자는 이 글을 탄식으로 끝내지 않기 위해서 김근태 의장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고 싶다: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에서 살기를 원하는가?

만일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필자와 같은 “냉전수구”와 김의장과 같은 “화해진보” 사이에도 이성적 대화의 가능성이 복원될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이 생길 것이다.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제 한국사회에서 결코 자명하지는 않다. 지난 2002년 대선 시 노무현 후보는 “통일 이후의 체제를 자유민주주의로 해야 한다는 것은 소모적인 체제논쟁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홍성기/ 아주대 특임교수(철학박사)

홍성기(洪聖基)
-서울출생(1956)
-경기고, 서울대 독문과 졸업
-뮌헨대 철학석사
-자르브뤼켄대 철학박사(논리학, 동서비교철학)
-아주대 특임교수(현)
-주요논문 : <용수의 연기설><괴델의 불완정성 정리 비판>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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