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좌제 ‘악몽’딛고 ‘전시납북’ 공론화로

최근 6.26전쟁납북자 가족들이 발간한 ’한국전쟁납북사건사료집’에서 납북과 관련한 ’연좌제(連坐制)’ 피해사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눈길을 끌었다.

연좌제란 범죄인과 특정한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연대책임을 지게 하고 처벌하는 제도로, 납북자 가족이나 친족들은 가족이나 친족이 납북됐다는 이유만으로 고급공무원으로 임용하지 못하거나 해외여행 등까지 제한받은 등 각종 불이익을 받아왔다.

이 제도는 전쟁 이후 줄곧 이어지다가 제5공화국 헌법에 금지규정을 신설하면서 사라졌다.

정부 당국은 남북 분단과 휴전 이후 대치상황에서 불가피한 국가 행위라고 간접 설명하고 있지만 납북 피해자 가족들은 ’과거의 악몽’이나 ’시대의 상처’로 기억하고 있는 연좌제 피해를 딛고 일어서 전시 납북자 문제를 수면위로 올려 사회적 공론화를 추구하고 있다.

한국전쟁납북사건자료원(원장 이미일)이 지난해 4월부터 지난 6월까지 채록해 사료집에 실은 57건의 납북자 가족들의 증언에서도 이런 ’응어리’가 분출됐다.

사업을 하다 납북된 아버지를 둔 김 모(58)씨는 “해외여행도 못 갔고 육사나 공무원은 생각도 못했다”면서 “이 나라에 살기 싫어서 아르헨티나로 이민 가서 살고 계신 삼촌에게 불러달라고 간절히 편지를 쓴 적도 있다”고 토로했다.

국회 직원이었던 아버지가 납북된 윤 모(65)씨는 “막내 동생이 ROTC(학군사관후보생)를 지원했는데 납북인사 가족이라고 해서 자격 여건에서 많은 제재가 있어 힘들게 생활하다가 제대했다”면서 “납북인사 가족이라고 해서 법적으로 보호해줘야 하는 국민을 제재대상으로 생각하는 정부의 시책은 잘못됐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의사로 활동하다 납북된 아버지를 둔 최 모(65)씨도 “1979년 회사일로 미국에 출장을 나가려고 하는데 ’아버지가 6.25때 행방불명된 사람’이라면서 신원조회에서 걸려 애를 먹었다”고 밝혔다.

납북자 가족들은 이런 연좌제 피해를 입으면서도 ’빨갱이 가족’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처지라서 이웃들에게 맘놓고 하소연도 못하고 냉가슴만 앓기 일쑤였다.

서울에서 교사로 재직하다 납북된 아버지를 찾고 있는 최 모(62)씨는 “(어린시절) 동네에서도 보이지 않는 따돌림을 받아 마치 내가 북에서 이남으로 와서 사는 사람같은 느낌을 받았다”면서 “어릴 적 아버지가 끌려가는 것을 목격했는데도 다른 애들은 ’우리 아버진 군인갔는데, 너희 아버진 인민군 갔잖아’라고 놀렸다”고 말했다.

이들 납북자 가족의 한결같은 소망은 납북자의 생사확인과 ’빨갱이 누명’을 벗는 명예회복이다. 물론 생존하고 있다면 만나야 하고 사망이 확인될 경우는 유해라도 넘겨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아버지가 자영업을 하다 피란중 납북된 김 모(58.여)씨는 “이산가족 상봉시에도 피랍인 가족은 제외돼 있어 유감”이라며 “살아 계시지 않는다면 어디서 어떻게 됐는 지 알고 싶고, 살아 계신다면 빨리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기억에 아버지가 검은색 코트를 입고 들어오시면 제가 뛰어나가서 아버지 주머니에 손을 넣곤 했었다”며 헤어진 지 반세기가 지나서도 오붓한 부녀의 정을 또렷하게 되살렸다.
그러나 이들 납북자 가족의 소망이 현실로 이뤄지기까지는 험로가 예상된다.

정부는 ’전후 납북피해자 지원법’의 제정을 추진하고 있으나 전시 납북자 문제에 대해서는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으며, 북한은 “애당초 납북자란 존재조차 하지 않는다”며 부인으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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