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역행한 호네커 비참한 최후, 북한 김정은은?

‘고르비’는 구(舊) 소비에트 연방의 마지막 대통령 고르바초프의 애칭이다. 독일에서 고르비의 인기는 절대적이다. 그는 사회주의 체제의 비효율성을 시인하고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라고 하는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하며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개혁을 적극 유도한 시대적 인물이다.

독일에서 고르비에 대한 인기가 높은 이유는 희박할 것이라 예측되던 동서독 통일의 가능성을 최초로 열어준 인물이기 때문이다.
 
고르비는 러시아 남부 스타로폴이라는 마을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1980년 최연소 정치국원, 1985년 공산당 서기장이 되는 초고속 성장을 한 인물이다.

그를 생각하면 온화한 외모와 함께 늘 그의 곁에서 미소 짓고 있던 아내 라이사의 모습이 함께 떠오른다. 1990년대 후반 라이사가 악성 백혈병으로 투병 중일 때 독일사회가 그녀를 따뜻하게 돌봐줬던 일은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그러나 러시아 내에서 고르비에 대한 평가는 매우 냉엄하다. ‘소비에트 연방의 장의사’라는 악평을 보면 위대한 초강대국의 몰락 책임이 고르비에게 쏠리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단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 체제의 구조적 결함을 깨닫고 개혁개방이라고 하는 조치를 감행한 용기는 매우 값지다. 만약 고르비의 개혁개방이 없었더라면 소비에트 연방이 그대로 유지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은 무책임하다.

오히려 유고슬라비아가 민족 간 반목으로 수십만의 희생자를 내고 나서야 슬로베니아(1991년 독립), 크로아티아(1991년 독립), 마케도니아(1991년 독립), 보즈니아-헤르체고미나(1992년 독립)와 신(新)유고연방으로 해체된 것, 그리고 세르비아의 주도권을 포기하지 않았던 밀로세비치는 전범재판에 회부되었던 것처럼 소비에트 연방도 이와 같은 피와 분노의 복수극이 일어나지 않았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역사의 순리는 유고 연방과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를 이미 입력해 놓았고 그 역사의 흐름에 역행하는 행위에 대한 심판은 가혹하리만큼 냉정한 것이 또한 역사의 교훈이라는 사실에 겸허해야 한다.

1989년 10월 24일 고르비는 동베를린에서 거행된 동독 건국 4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장에서 호네커 총 서기장에게 이 역사의 흐름에 동참할 것을 권유했고 이 권유를 거절한 호네커의 말로는 비참했다. 그는 망명지 칠레에서 암과 투병하며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한반도의 미래를 바라보며 역사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고 그 흐름에 순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