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뒤안길로 퇴장한 동교동계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서거에 따라 동교동계도 생명력을 다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동교동계는 반세기 가까운 정치활동을 펼친 김 전 대통령과 영욕을 함께 해온 가신그룹이다.

`동교동계’라는 단어가 세간에 등장한 시기는 언론자유가 보장되지 않았던 지난 1973년께. 언론이 신인 정치인 때부터 동교동에 거주했던 김 전 대통령에 대해 실명 대신 `동교동계 재야인사’라는 별칭을 사용하면서부터다.

동교동계 멤버들은 김 전 대통령이 야당 총재 시절 동교동 자택에서 상주하다시피한 가신과 비서들이 주축이 됐다.

동교동계 1세대는 권노갑 한화갑 김옥두 이용희 남궁진 이윤수 등 1960년대부터 함께 해온 인사들을, 2세대는 최재승 윤철상 설 훈 배기선 등 1980년대 초반 합류한 인사들을, 3세대는 전갑길 배기운 이 협 등 1987년 이후 합류한 인사들을 각각 가리키고, 범동교동계로는 한광옥 조재환 박양수 이훈평 전 의원 등이 있다.

일각에선 1990년대 이후 김 전 대통령을 보좌한 박지원 의원도 범동교동계로 분류하고 있지만, 엄밀한 의미에선 동교동계보다는 신(新)측근그룹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동교동계는 김 전 대통령이 지난 1987년 정치활동을 재개한 뒤 대부분 국회로 진출했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가신그룹인 상도동계와 함께 야당의 양대 축 역할을 맡았다.

동교동계는 야당 총재였던 김 전 대통령을 당선시키기 위해 항상 일선에서 총대를 멨다. 평민당, 신민당, 국민회의, 새천년민주당 등 김 전 대통령이 총재를 맡았던 정당들의 중심은 항상 동교동계였다.

지난 1997년 15대 대선 직전 측근정치에 대한 우려감이 제기되자 동교동계 핵심으로 분류되는 7명의 의원들이 `임명직에 나서지 않겠다’는 공동선언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이 대권을 잡으면서 동교동계는 측근정치의 폐해를 상징하는 단어로 국민의 뇌리에 각인됐다. 막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동교동계는 대통령 임기 5년간 줄곧 비난과 공격의 초점이 됐다.

내부에서도 동교동계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정도였다. 당시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의 소장파 리더였던 정동영 의원과 김근태 전 의원은 각각 동교동계를 겨냥해 `2선후퇴론’과 `해체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동교동계는 주요 멤버가 각종 비리에 연루된 것으로 드러나고 내부 분열까지 겹치면서 위기를 겪었다. 김 전 대통령조차 2003년 2월 퇴임과 동시에 동교동계의 해체를 지시할 정도였다.

당내 비주류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2002년 16대 대선에서 승리한 것도 동교동계의 쇠락을 부채질했다. 특히 2003년 노 전 대통령과 정치적 결별을 선택한 것은 결정적으로 수명을 단축한 요인이 됐다.

안동선, 이윤수, 이훈평, 조재환, 배기운 전 의원 등은 2004년 총선에서 모두 낙선의 고배를 마셨고, 그나마 살아남은 한화갑, 김홍일 전 의원은 정치자금법과 선거법 위반이라는 암초에 걸려 의원직을 상실했다.

열린우리당행을 선택한 일부 동교동계 인사는 의원직을 유지하는데 성공했지만 18대 국회까지 정치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동교동계 인사는 문희상 국회부의장과 자유선진당으로 이적한 이용희 의원 정도에 불과하다.

다만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향후 동교동계는 정치계보가 아닌 김 전 대통령을 기억하는 지인모임으로써 결속을 도모하며 생명을 이어갈 가능성은 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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