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대부분의 북한전문가들은 가까운 시일 내에 이집트 사태와 같은 것이 발생해서 김정일 정권이 전복될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현재 북한에 대규모 반정부 군중집회가 열릴 가능성이나 군부가 반란을 일으킬 조짐은 없다. 또 북한의 수령체제를 유지하는 직접적 공포수단인 집단수용소도 건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김정일 정권 붕괴 조짐의 유무’에 대한 질문과 대답에서 중요한 점을 간과하고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우리는 한 정권이 붕괴하기 전에 나타나는 조짐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아니면, 정권붕괴의 조짐이라는 것이 도대체 존재하는가?
잠시 고개를 돌려 언론에 비친 지난 수개월 간의 이집트 관련 뉴스를 살펴보자.
2010년 5월 13일: 이집트 의회, 29년 된 비상계엄법의 시한을 2년 더 연장.
2010년 7월 20일: 미국과 유럽, 수명이 1년밖에 남아 않은 무바라크 사후 시나리오 작성.
2010년 8월 24일: 무바라크의 아들 가말이나 다른 온건파가 집권할 경우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들의 정권장악을 도와야 한다. <美 뉴욕대학교 교수>
2010년 9월 28일: 세계 장기 독재자들/ 北 현대사 첫 3代세습 착수…이집트·카자흐스탄도 대물림 수순.
2010년 11월 22일: 이집트 정부 총선을 앞두고 수백 명의 야당지도자들을 체포.
2010년 11월 30일: 이집트 총선 당일(28일) 표 매수와 이중 투표가 목격됨.
2010년 12월 7일: 이집트 총선에서 집권 여당이 전체 의석의 83% 이상을 차지하는 압승.
2011년 1월 3일: 호스니 무바라크(82) 대통령이 비민주적 선거를 통해 재집권할 것으로 보임. 선거 결과보다는 와병중인 무바라크의 후계 구도가 관심거리.
2011년 1월 16일: 튀니지 국민들이 장기 집권한 대통령을 ‘재스민 혁명’으로 축출. 그러나 동유럽처럼 아랍·중동의 독재정권이 줄줄이 붕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음. 이집트, 이란, 시리아, 요르단 등의 집권세력은 군대를 장악해 무력으로 반대파를 진압할 수 있는 상황임.
2011년 1월 19일: 튀니지 사태가 이집트 정국을 뒤흔들고 있음. 반정부시위가 무바라크 정권의 30년 장기 독재를 끝낼 수 있는 실질적인 위협이 될지에 관심이 집중.
불과 2주 전까지만 해도 이집트에서 무바라크 정권이 붕괴될 가능성은 어느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차라리 언론과 전문가들은 무바라크 혹은 그의 아들 가말 무바라크에 의한 정권세습이 성공할 가능성을 훨씬 더 높게 평가하였다. 그 이유는 첫째, 이집트 군부가 무바라크 정권 지지하고 있고, 둘째, 미국이 무바라크 정권을 지원하고 있으며, 셋째, 비록 부정투표라도 총선에서 무바라크의 국민민주당이 압승했다는 점 등이 꼽혔다.
그러나 만일 무바라크가 권좌에서 퇴진한다면 정권 붕괴가능성을 일축하던 전문가나 언론들은 이번에는 ‘무바라크 정권이 왜 붕괴될 수밖에 없었는가’를 인과적으로 설명하려 할 것이다. 역사해석이란 이처럼 사후 정당화의 측면이 강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정권붕괴의 조짐’이란 것은 어디에 있었단 말인가? 이집트의 사태 경과를 돌이켜 볼 때 그런 조짐이란 실제 붕괴가 눈앞에 이르기 전까지는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 따라서 중요한 점은 특정 독재정권이 ‘언제든지’ 붕괴될 수밖에 없는 정치·경제·사회적 상황이 존재하는지를 냉정하게 살피는 것이다.
바꿔 말해 김정일 정권 붕괴의 조짐을 ‘지금’ 상황에서 찾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차라리 현단계에서는 북한의 현재 정치·경제·사회적 상황을 정확히 들여다보면서, 김정일 정권이 결코 유지될 수 없음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II.
지난 10년 북한의 상황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1990년대에 북한에서 발생한 대기근으로 사회주의 배급체제가 붕괴되면서 이른바 ‘고난의 행군’이 시작됐다. 버려져 떠돌아다니는 어린 아이들을 칭하는 ‘꽃제비’들이 집단으로 죽어 묻힌 곳을 ‘꽃동산’이라고 불른다는 처참한 상황이 북한을 휘어 감았다.
아무리 ‘미제국주의와 남조선 역도 일당’의 위협으로 북한인민의 고난을 정당화하고, 어버이 김일성이 하사하신 주체사상으로 굶주림과 추위를 감싸려 해도 인간은 먹지 않고 입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생물이다.
만일 김정일 정권이 2000년도 초 베트남의 10분의 1 만큼이라도 개혁·개방을 시행하였다면, 지금처럼 북한이 ‘도발’과 ‘구걸’ 사이를 오가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락가락한 것은 김정일의 대남정책 뿐만이 아니었다. 2002년 북한은 7.1경제개혁조치를 도입하였지만, 그것은 북한 경제의 붕괴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취한 조치였다. 오히려 김정일 정권이 기대한 것은 한국의 햇볕정책에 의해 공식적, 비공식적으로 들어오는 막대한 원조였다.
자신의 힘으로는 북한인민을 먹이고 입힐 능력이 전무한 김정일은 한편으로는 자생적 시장경제를 허용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수령체제의 유지를 위해 시장경제를 지속적으로 괴롭히고 통제하여 왔다. 수령의 왕국 북한에서 수령의 존재가 잊혀지고 수령체제가 훼손되는 것을 용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친 것이 아니다. 자생적 시장경제에 대한 괴롭힘과 통제시도는 시장에서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는 북한인민 전부를 현실적 혹은 잠재적 범죄자로 내몰았다. 삶의 흐름을 방해하는 장벽이 생기면 인민은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 수밖에 없다. 북한인민과 인민들의 통제기관 사이에 광범위한 뇌물수수 관계가 형성되었다.
결국 시장에 대한 김정일의 용인과 통제의 이중적 태도는 북한인민에게 3중의 분노를 가져 왔다. 첫째, 도대체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 김정일 정권에 대한 분노, 둘째, 먹고 살기 위한 노력 자체가 범죄행위가 되는 현실에 대한 분노, 셋째, 범죄자가 되지 않기 위해 바쳐야하는 뇌물을 먹고 호의호식하는 간부층에 대한 분노가 그것들이다. 김정일은 2009년 11.30 화폐개혁으로 이런 모순을 해결해 보려고 시도하였으나 결과는 완벽한 실패였다. 수령 유일체제 내에서 시장경제 활성화라는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어떤 방법도 북한에는 존재하지 않음이 증명됐다.
김정일이 수령체제와 개혁개방이 양립할 수 없는 모순관계로 판단하고 수령체제의 유지를 고집하는 한, 위와 같은 북한 주민의 분노는 결코 체제 내적으로 해결될 수가 없다. 김정일의 수령체제는 본질적으로 자기파멸적 경향을 갖게 된 것이다.
물론 김정일이 이런 점을 모를 리가 없다. 그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여타 독재정권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인민의 분노표출의 억제를 위한 공포정치와 왜곡 선동을 통한 세뇌정치가 유일한 임시방편책이다.
왜곡 선동을 위한 전제는 사회전체가 닫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놀랍게도 폐쇄왕국 ‘김일성 조선’에 외부와의 통방구멍을 뚫도록 허용한 자가 바로 김정일이다. 그의 무능력에 의해 배급체제가 붕괴되면서 잡초처럼 끈질긴 생명력을 갖고 생겨난 시장과 함께 중국과의 수많은 크고 작은 국경무역은 외부세계의 정보가 수입되고 유통되는 기반으로 자리잡았다. 북한 전역에 들어선 시장은 정보 소통의 장(場)으로 급부상했다.
북중 국경을 통해 유입되어 시장을 정점으로 유통되고 있는 한국영화, 드라마 DVD는 일반 주민 뿐 아니라 단속 기관원들에게도 정보매체의 역할을 하고 있다. 단속원들은 주민들에게 속칭 ‘알판'(DVD)을 압수하며 뇌물을 수수하고, 압수한 알판을 다시 내다 팔아 부수입을 챙긴다. 부가적으로 주민은 재시청 기회가 생긴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일, 김정은의 위대성 및 강성대국 도래를 각인시키는 정치학습은 점점 더 ‘초현실주의적 개그콘서트’가 되고 있다. 노동당의 선전선동은 더 이상 약발이 먹히지 않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의도했던 세뇌 효과는커녕 조롱과 반발만을 자아내는 역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III.
수령체제 유지를 위해 남는 것은 공개처형과 같은 공포정치 수단과 정치범 수용소를 비롯한 수감 시설에서의 인권유린이다. 그러나 아직 건재하다고 보이는 공포통치도 그 내부에서 부식이 일어나고 있다. 바로 앞에서 언급한 뇌물을 통한 방어기재와 함께, 시장경제 활동 자체가 탈법의 일상화를 요구하여 무고한 범죄자의 대량 양산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북한이 아무리 원자화된 사회라 하더라도 주민들간에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공포정치의 기저를 침식해 들어가고 있다.
공포정치의 본질은 소수의 체제저항자, 체제불만자를 시범적으로 혹독하게 처벌하여 대부분의 피통치자들의 저항 의지를 사전에 꺾어 버리는 데에 있다. 즉, 공포정치의 가장 큰 수단은 공포수단 자체의 무력이 아니라 군중들이 공포수단 앞에서 갖는 공포감 자체에 기반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점이 바로 이것이다. 경찰이나 군대의 무력 자체가 공포정치의 주요 수단이긴 하지만, 그 수단만으로 인민 다수의 저항행위를 완벽하게 꺾어버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번 이집트 사태에서도 군대가 탱크까지 동원하였지만, 결코 시위군중을 무력으로 해산시키지 못하였다는 점에서도 발견된다. 시위군중이 탱크 앞에서 공포심을 갖지 않을 경우, 수많은 사람을 살상할 수 있는 탱크의 포나 기관총은 별안간 장난감처럼 우스꽝스러워지는 현상이 벌어진다. 수십 명, 수백 명도 아닌 수천 명, 수만 명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공포정치 교과서에 들어 있는 ‘교범’이 아니기 때문이다.
북한에서도 이집트의 대형 군중집회와 같은 사태가 발생할 수 있는지는 아직까지 확실치 않다. 그러나 우리는 김정일 수령체제에 대한 본격적인 저항이 아니라도, 생계를 위한 투쟁이 북한 체제의 중·하위에서 언제라도 발생할 수 있음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수령체제의 정점에 있는 지배계급이 주민들의 생계투쟁을 용인하건 탄압하건, 어느 경우에도 북한 내부체제의 안정성은 그 기반을 상실할 것이다.
더 중요한 점은 대규모 시위라는 표출된 항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시위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국민 다수가 지배체제를 지지하지 않을 경우, 경찰이나 군대는 시위진압에 적극적으로 나서기기가 어려워 진다. 그들도 미래의 생존을 위하여 어디를 향해 줄을 서야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뿐더러, 지금까지 복종만 해야 했던 독재자가 거꾸로 자신들에게 운명을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극적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집트의 경우 29년이나 계엄령으로 통치해온 무바라크 정권에 대하여 대부분의 국민이 등을 돌렸고, 이점이 군대의 입장을 극히 온건하게 만들었다.
인민의 지지기반을 잃어버린 독재자가 속빈 강정과 같은 공포수단에 의존하여 정권을 유지하려는 것은 매우 허망한 일이다.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서 아무리 대형 시위가 발생하여도 정권이 무너지지 않는 이유는 바로 국민의 지지와 합의에 의해서 정권이 창출되었기 때문이고, 이점은 바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를 통해 한국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IV.
김정일 정권 붕괴의 조짐은 현재까지 없다. 원래부터 그런 조짐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김정일 정권이 언제라도 붕괴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가 살아있던 죽던간에 북한 내부구조에서 존재하며 시간이 지날 수록 그 확실성이 갈수록 증대될 수밖에 없는 ‘독재정치의 구조적 모순’에 있다. 이 두 가지 ‘사실’은 결코 모순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정상화는 어떤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할 것인가?
첫째, 김정일 정권 자체를 도와주는 것은 북한의 정상화를 직접적으로 가로막는 요소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왜냐하면 북한이 ‘도발’과 ‘구걸’ 사이를 오락가락하도록 만든 장본인은 바로 수령체제와 수령 자신에게 있기 때문이다.
둘째, 북한이 아무리 대화를 통한 원조를 구걸 한다 하더라도 이후 언제라도 도발을 감행할 수 있으며, 북한이 도발을 할 경우에는 언제라도 태도를 돌변하여 ‘우리민족끼리’를 외칠 수 있는 체제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반도에서 평화체제의 상호구축은 북한체제의 본질상 불가능에 가까우며, 따라서 북한의 도발에 대응하고 도발을 억제할 수 있는 물리적, 정신적 힘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셋째, 북한의 정상화와 남북의 통일은 동일한 개념이다. 북한이 수령체제를 버리고 개혁개방으로 나아가 성공한다면 남북이 통일되지 않을 이유가 없으며, 개혁개방에서 심각한 어려움에 봉착한다 하더라도 오로지 남북통일로써만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 북한체제의 평화적 전환을 위한 가장 중요한 기초는 정보의 개방이다. 따라서 북한을 폐쇄사회에서 점진적으로 정보개방사회로 만들기 위하여 지금보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훨씬 더 본격적인 정보투입을 시작해야 한다. 만약 남북간에 정보개방의 상호대칭성이 요구된다면, 북한의 <조선중앙방송>이나 <노동신문>을 부분적 혹은 전면적으로 한국에서 개방할 수도 있다는 전략적 판단도 검토되어야 한다. 남북간 상호 정보개방이 가져오는 효과의 최대 수혜자는 당연히 북한 주민이기 때문이다.
다섯째, 북한식 공포정치의 핵심인 정치범 수용 소 및 각종 수감시설에서의 인권유린을 개선하기 위하여 시급히 북한인권법의 제정과 북한인권기록소의 설립을 추진해야 한다. 이런 조치들이 ‘북한인민의 인권개선에 실제로 어떤 도움이 될 것인가?’라는 반론은 지극히 편협한 시각이다. 북한 공포정치의 집행자들에게 수령체제 이후의 상황을 지금부터 상기시켜, 북한인권유린의 메카니즘을 내부로부터 위축시킬 필요가 있다.
여섯째, 역사의 상상력은 인간의 그것보다 더 뛰어날 때가 많다. 이번 이집트 사태는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에 의해 도화선이 당겨졌고, 튀니지의 혁명은 대통령 일가의 부패에 대한 튀니지 미대사관의 전문을 <위키리크스>가 공개하면서 촉발되었다. 도대체 어떤 중동전문가가 역사의 이런 징검다리를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북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집트의 무바라크 정권을 지지했던 미국이 속수무책이듯이 김정일 정권을 지지하고 있는 중국 역시 ‘역사의 상상력에 의해’ 강 건너 불 보듯이 김정일의 몰락을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도래할 수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