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비극에 대한 기억은 정의로운 창조 작업

▲ 서독 잘쯔기터 인권침해 중앙기록보존소 – 북한인권정보센터

이명박 정부 취임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새 정부는 지난 10년 좌파정부의 맹목적인 대북지원 문제를 꼬집고 향후 상호주의와 실용주의에 근거한 대북접근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 당선인의 대북정책 골자는 ‘비핵․개방․3000구상’으로 요약된다. 여기에 인권 문제 등 북한에 할 말은 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새 정부의 ‘비핵․개방․3000구상’이 지나치게 모호하다며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이들은 ‘비핵개방.3000구상’이 비핵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핵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사실상 대북 접근이 방치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북한인권 전문가 그룹에서도 새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정책 제안이 활발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북한 인권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공히 ‘북한인권범죄기록소’ 설치를 제안하고 있다. 이 제안은 독일의 사례가 원용되고 있는데 최근에 독일의 기록소와 관련된 ‘서독 잘쯔기터 인권침해 중앙기록보존소(북한인권정보센터刊)’ 책자가 발간돼 독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이 책은 1991년 독일어로 출판된 ‘잘쯔기터 보고서(Saltzgitter Reporter)’를 번역한 것으로, 통일 이전 동독에서 자행되었던 인권침해 행위들을 상세하면서도 객관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베를린 장벽이 세워진 1961년 8월부터 1989년 11월까지 모두 186명의 동독인이 서독으로의 탈출을 기도하다 자동소총에 사살당하거나 지뢰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많은 지식인들이 이러한 현실에 분노했지만, 당시에 서독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서독 정부는 동독 정부가 자행하는 인권 침해 행위에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통일 후 형사소추가 가능하도록 1961년 잘쯔기터에 범죄기록소를 설치했다.

‘잘쯔기터 중앙기록보존소’는 설립된 이후 다양한 정보수집 채널을 확보하고자 노력했다. 먼저 동독에 돈을 주고 1963년 이후 33,000명의 정치범을 데려와 이들에게서 인권 침해 관련 정보를 수집했다. 또 연방국경수비대의 상황보고서, 언론매체, 연방행정기관의 설문조사, 탈영병과 동독 탈주자 인터뷰를 통해 다양한 정보를 정리하고 축적했다.

‘잘쯔기터 보고서’는 대부분을 사례보고에 할애하고 있다. 첫 번째 보고는 국경지대의 모습인데, 동독의 국경안전시절, 국경부근 통제지역 시설과 상황, 동독정부의 사격 명령과 집행사례를 광범위하게 정리해 놓았다.

당시 동독 국경지역 병사는 ‘장벽 뒤에서 죽은 자 한 명 보다는 장벽 앞에서 죽은 자 열 명이 낫다. 통제구역을 넘어가기 전에 탈주자를 쏴 탈주를 막아야 한다’는 증오교육을 받았으며, 그 교육의 결과 동독 병사들은 가족이나 친지들에 대한 사격 명령에도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두 번째는 동독 정부의 테러행위 전반에 대한 보고다. 이는 독일 내부 국경과 베를린 주변지역에서 발생한 살인행위, 사회주의 노선을 벗어난 이들에 대한 동독 정부의 정치적 판결, 교도소와 국가안보처에서 발생한 구금 중 학대 등으로 구분된다.

이런 내용을 정리 보존하는 ‘잘쯔기터 중앙기록보존소’는 동독의 정치적 지도자들에게 아주 고통스러운 가시이자, 가장 불편한 반대자로 여겨졌다. 동독 정부는 1966년 10월 실제로 ‘잘쯔기터 중앙기록보존소’ 종사자들을 처벌하는 특별규정을 만들기도 했다. 이 규정은 기록보존소의 활동이 동독 정부에게 얼마나 큰 심리적 압박을 보여준 것인지에 대한 반증이라 할 수 있다.

기록보존소의 방대한 자료는 단순한 심리적 압박뿐 아니라 실효적인 증거 자료로 활용됐다. 동독 판검사들의 인권침해 기록은 통일 후 재임용이나 형사소추의 중요한 근거로 작용했다. 또한 베를린 장벽에서 동족을 상대로 발포한 국경수비대에게 (상관의 명령이었다는 점에서 면책 여부가 주목됐지만) 살인죄가 적용되어 법정에 선 사례도 있다.

과거 독일의 유대인 수용소는 막사와 울타리를 철거하고 학살 현장을 농장으로 개간했으며 철저한 위장을 위해 나무까지 심게 했다. 독일 정권은 뻔뻔스럽게도 이 작업에 유대인들을 동원했으며, 동원된 유대인들은 보안유지를 위해 모두 살해되었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과정으로도 그들의 만행과 비극에 대한 기억을 모두 없앨 수는 없었다.

필자는 현 북한 김정일 정권이 자행하고 있는 인권탄압이 구 동독정부의 그것에 비해 훨씬 악랄하고 광범위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자료도 무수히 많다. 더 늦기 전에 이러한 자료들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북한정부의 자국민 학살과 탄압, 인권유린 사례는 현재 진행형이다. 미국의 저명한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사회적 전환기의 최대 비극은 악한 사람들의 거친 아우성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소름끼치는 ‘침묵’이었다”는 말을 남겼다. 북한의 참혹한 현실에 통탄하는 모든 양심 있는 사람들에게 ‘잘쯔기터 인권침해 중앙기록보존소’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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