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과서, 6.25전쟁 책임 南·美 끌어들이려 안간힘

오는 25일은 6·25전쟁 61주년이다. 6·25전쟁이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개전됐다는 전통주의 주장은 구소련 외교문서를 통해 이미 사실로 입증 받았다.


1981년 미국의 브루스 커밍스가 ‘한국전쟁의 기원’이라는 책을 통해 남침유도설을 주장하면서 시작된 6·25전쟁 책임에 대한 전통주의와 수정주의 간 논쟁은 이제 전통주의의 우세가 돋보이는 형국이다. 브루스 커밍스는 수정주의 입장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지만 1997년 출판한 한국현대사에서 김일성의 책임론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 중·고등 교과서에서는 여전히 수정주의적 입장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미국의 애치슨 라인, 6·25전쟁 이전의 남북간 군사충돌을 거론하며 전쟁 발발을 김일성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 없다는 해석을 유도하는 기술이다.


학계를 중심으로 이러한 기술을 바로 잡으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정부도 지난해 역사교과서 집필 기준으로 6·25전쟁은 남침에 의한 것임을 명확히 할 것을 제시했다. 현대사 기술의 좌편향성이 가장 큰 것으로 지적받아 온 금성출판사는 교과부 검정을 통과하지 못했다.


하지만 몇몇 교과서의 편향적 기술이 여전해 교과서 집필진의 좌파적 성향이 매우 뿌리 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지학사, 천재교육, 미래엔컬처그룹, 삼화출판사, 법문사, 비상교육 등 6종 교과서는 모두 ‘애치슨 라인’을 그림으로 설명하고 있다. 좌파진영에서는 ‘애치슨 라인’을 예로 들며 미국이 의도적으로 한국을 제외해 북한이 남침하도록 유인했다고 주장한다.


1950년 1월 딘 애치슨 미 국무장관은 ‘미국의 극동방위선(일명 애치슨라인)에서 한국과 대만을 제외한다’는 성명을 발표했고 5개월여 뒤 6·25전쟁이 발발했다.


故김일영 성균관대 교수는 이에 대해 저서 ‘건국과 부국’에서 “한국과 대만을 방위선에서 제외시킴으로써 재정 지출 삭감을 주장하는 미 의회와 군비의 효율적 사용을 주장하는 군부를 다독이면서, 북진통일이나 본토 수복을 외치는 이승만과 장제스의 무모한 모험을 견제하고, 그러면서도 유엔을 끌어들여 두 나라의 안전을 확보하겠다는 다목적 발언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라고 분석했다.


미래엔컬처그룹은 6·25전쟁 발발을 설명하는데 역사학자 김성칠의 책 ‘역사 앞에서’를 인용해 “남의 장단에 놀아서 동포끼리 서로 살육을 시작한 걸 생각하면 더욱 가슴이 어두어진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또한 삼화출판사는 “갈수록 심해지는 미국과 소련의 갈등은 이런 대립을 부추겼다”고 기술하고 있다. 비상교육도 “남북 정부의 대립은 6·25전쟁 이전에도 38도선 부근에서 잦은 무력 충돌로 나타났다”고 6·25전쟁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6·25전쟁의 배경을 남과 북의 내전이 확전돼 북한의 남침이 본격화 된 것처럼 설명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한다. 이는 소련 외교문서에 공개된 대로 스탈린이 김일성에게 전쟁 발발 수개월 전부터 ‘어떤 충돌도 피하라’는 지시가 있었다는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삼화출판사는 보조자료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와 ‘웰컴 투 동막골’을 소개하고 있다. 웰컴투 동막골은 강원도 산골의 동막골 사람들이 평화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미군의 폭격을 막아낸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영화를 소개하면서 6·25전쟁의 심각성과 본질을 희석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이 밖에도 6·25전쟁 당시 발생한 국군과 미군의 민간인 사살은 구체적 사건명을 거론하며 비중있게 다루면서도 북한군의 민간인 사살 및 처형 등 전쟁범죄는 모호하게 기술하고 있다.    


삼화출판사는 ‘군대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라는 보충자료에서 “북한의 남침으로 전개된 6·25전쟁에서 전쟁과 관련 없는 수많은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특히 1950년 충북 영동군에서 미군에 의해 300명이 사망했다(노근리사건)”고 기술해 미군에 의한 학살을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천재교육도 인민군에 의한 민간인 사살은 ‘인민재판을 통해 학살하는 일이 점령지 곳곳에서 발생하였다’고만 서술했고 국군과 미군에 의한 학살은 ‘거창사건’과 ‘노근리사건’으로 명시해 보조자료를 통해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북한군은 인천상륙작전으로 수세에 몰리자 대전교도소에서 민간인을 무자비하게 학살해 땅에 파묻었다. 1952년 공보처 통계국이 조사한 ‘6·25사변 피살자 명부’에 의하면 5만9964명이 북한군에 의해 피살되었다. 납북자 단체는 전시에 8만3000여명이 납북됐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6종 교과서 어디에도 이같은 내용은 기술되어 있지 않다.


또한 천재교육과 미래엔컬처그룹은 피카소가 프랑스 공산당의 의뢰를 받아 그린 것으로 알려진 ‘한국에서의 학살’이라는 그림을 실었다. 이 그림은 황해도 신천의 민간인 희생(1950년 10∼12월)을 소재로 미군에 의한 학살을 비난하기 위해 그려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사건의 실체가 미군에 의한 학살인지가 불분명하고 피카소의 상상에 의한 그림으로 교과서 인용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다. 이 삽화를 두고 새 한국사 교과서 검정위원회에서 고성이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종철 ‘story K’ 대표는 ‘데일리NK’와 통화에서 “역사학자들의 다양한 노력으로 한국사 교과서의 좌편향적 시각이 많이 교정되었지만, 아직도 부족한 부분이 많다”며 “학생들에게 6·25전쟁에 대해 정확하고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더 많은 부분이 수정·보완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story K’는 지난 4월 한국사 6종 교과서 수록 내용 중 북한편을 15개 분야로 구분해 분석한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