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관계로 본 김정일의 성격과 심리

▲ 집무실에 앉아 수화기를 들고 있는 김정일

북한과 같은 수령절대주의 사회에서는 수령 개인의 자질과 성격이 중요한 의의를 가지게 된다. 북한 사회가 법과 제도, 심지어 사회주의 원칙과도 무관하게 한 개인에 의해서 모든 것이 좌지우지 되는 ‘마피아형 1인 절대독재’에 돌입한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김정일은 대중 앞에도 잘 나타나지도 않고 철저히 비밀리에 움직이는 것을 선호한다. 김정일의 성격과 심리에 대해 일반 주민들이 알 수가 없다. 설사 측근 중에 부정적인 측면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고 해도 김정일에 대해 말 한마디 잘못해서는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기 십상이다.

다행히 김정일의 주변에서 생활할 수 있었던 가족, 자식의 가정 교사, 경호원, 전속 요리사, 최고위급 관료 등이 북한 사회를 이탈해 공개한 증언들이 나왔다. 이러한 증언들을 교차시켜 비교해보면, 김정일의 성격과 심리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들이 일관되게 말하는 김정일의 성격은 기본적으로 매우 급하고 변덕이 심하다는 것이다. 김정일의 처형이자 아들 정남의 가정교사였던 성혜랑은 “김정일은 기분이 좋을 때는 아주 잘해주지만, 화가 나면 창문이 들썩거릴 정도로 광란을 한다”고 말했다.
전속 요리사였던 후지모토 겐지는 “평소에는 다정다감하게 간부를 대하다가도 화가 나면 간부들을 세워 놓고 소리를 지른다”고 했다.

경호원 출신 탈북자 이영국씨는 “젊은 시절에 그는 성격이 급한 데다가 가정적 고심 때문에 술을 많이 마셨다”며 “그래서 모든 일을 즉흥적이고 과격하게 처리하는 버릇이 있다”고 했다.

김정일 여자관계, 독재자라 해도 너무 심해

김정일의 여성관계는 매우 복잡하다. 자식을 낳아준 것으로 확인된 사람만 성혜림, 김영숙, 고영희 등 3명이고, 그 외 만수대 예술단 배우, 현직 대사의 부인, 기쁨조 등을 통해 마음에 드는 여성은 쉽게 취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전 안기부 북한조사실 단장 송봉선씨는 “과거 우리의 왕조시대 왕이나 여타 독재국가의 독재자들과 비교한다면 자녀는 많다고 볼 수 없으나, 동거녀 3명 외에 다수의 여성을 접촉하는 형태는 현대 지도자로서는 아무리 독재자라고 하여도 지나치다고 할 수 있겠다”고 했다.

▲ 만수대예술단 공연조(기쁨조)의 캉캉춤 공연모습

송씨는 김정일의 여성편력의 특징에 대해 첫째는 친부 김일성으로부터 어느 정도 유전적 요소가 있었을 것으로 봤다. 김일성이 70세가 된 나이에도 간호사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은 것이 부전자전의 의미가 있다고 했다.

둘째는 자신의 눈에 들면 방법을 가리지 않고 편취하는 특징이 있다는 것이다. 친구 이종혁(현 아태평화위 부위원장)의 형수 성혜림을 데려와 이혼시킨 사례, 현지 대사 부인을 취한 사례를 볼 때 도덕성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셋째는 김정일이 매우 정력적이며 성도착 증세도 있다는 데 원인을 두고 있다.

전문가들은 김정일의 성장기 성격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건으로 1949년 생모 김정숙 사망 사건을 들고 있다. 당시 김정일의 나이는 7세였다. 어머니의 갑작스런 죽음과 이에 얽힌 의문, 계모 김성애의 등장, 아버지와 권력을 뺏길 수 있다는 두려움 등을 겪으면서 김정일은 한편으로는 동생 김경희를 극진히 보살피면서 김성애는 ‘어머니’라는 호칭도 쓰지 않고 ‘아주미’라고 부르면서 거부감을 보였다.

김성애가 김정일을 차별했거나 구박했다는 근거는 확실치 않다. 오히려 김성애는 김정일을 받들어 주어야 하는 입장이었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 있다. 그러나 김정일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계모에 대한 배척감, 아버지를 빼앗길 수 있다는 초조감, 권력투쟁에서의 대립 등으로 자연스럽게 부정적 성격 형성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어린시절부터 ‘수상님 자제분’으로 왕자 행세

결국 어머니 사망 사건은 모성애 결핍으로 인한 신뢰와 애정 결핍, 증오심, 적대감, 질투심, 공격성 등의 부정적 성격을 형성하는데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권력을 장악한 김정일이 김성애 일가를 곁가지로 분류하고 철저하게 통제해온 것도 어린 시절 형성된 분노감이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 김정일의 동거녀 성혜림이 영화배우로 활동하던 시절. 영화 포스터 中 <사진:연합>

김정일은 어머니 사망 이후 한동안 방황을 겪기도 했지만 여전히 수상의 아들로 왕자 행세를 했다. 절대적인 독재자 밑에서 사회적으로 그 어떤 통제도 받지 않으면서 자라난 것이다. 다른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늘 자기를 최고 권력자인 김일성의 대리인으로서 제멋대로 방자하게 행동하였다. 그는 커가면서 자기 욕심대로만 행동하는 품성이 더욱 자라나게 되었다.

김일성-김정일을 30년 동안 연구해온 정신과 전문의 백상창 박사는 김정일이 복잡한 여성관계를 갖게 된 배경으로 여러 원인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 중 두 가지를 소개해본다.

첫째는 어머니가 하복부 출혈에도 의사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사망(북한은 심장마비로 발표)한 것에 김정일은 큰 의문을 품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김정일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아버지에 대한 복수심이 동시에 작용하는 “적대적 동일시 현상”을 겪었다고 했다. 즉, 아버지의 여성편력을 닮아갔다는 것.

둘째로 김정일이 어머니가 죽고 계모 김성애로부터 핍박을 받으면서부터 권력을 잡을 때까지 초조와 불안을 항시 동반했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 술과 여성편력을 즐겼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정신 의학적으로 “도피 메커니즘”에 해당된다는 것.

김정일이 성혜림과 처음 사랑에 빠져 함께 살게 되는 과정은 이러한 여러 가지 심리적 요소를 반영하고 있다. 성혜림이 가진 아름다운 외모와 세련된 서울 말투, 정숙한 행동거지, 어머니 사망 이후 외롭게 밖으로만 돌던 그에게 어느 누구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모성애를 던져준 것이다. 김정일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친구의 형수인 성혜림을 이혼시키고 동거에 들어갔다. 이것은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공격적 성향을 그대로 보여준다.

기쁨조와 비밀파티, 성도착 증세도 보여

송봉선씨는 김정일의 여성관계는 현대 지도자로서 예외적인 것임에 이론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김정일의 엽색행각 중에서 무용수를 벌거벗겨 춤을 추게 하거나 간부들도 나체로 그들과 춤을 추게 한 것은 일종의 성도착증세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평소 김정일의 심리와 성격을 몇 가지 살펴보자.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는 “김일성은 자기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 독재를 한다는 인상을 주지만 김정일은 독재 자체에서 기쁨을 느끼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고 말했다. 김정일은 어느 누구도 믿지 않기 때문에 자신과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 권력이 있는 사람일수록 더욱 철저히 감시한다.

김일성은 중앙당 일꾼들을 따로 감시하는 부서를 두지 않았지만, 김정일은 본부당위원회를 두고 서로 감시 비판하도록 하였으며, 조직∙사상을 지도하는 과와 비밀정보사업을 지도하는 과를 따로 두고 2중, 3중으로 감시하고 통제하였다.

▲ 김정일이 기쁨조와 함께 파티를 열었던 8번 연회장 철판구이 코너. 사진 앞에 보이는 희고 평평한 공간이 무대로 활용되는데, 재질 자체가 빛을 발하고 있다. 자세히 보면 무대 양쪽 끝부분에 조명장치가 있다. 천장 중앙에는 디스코테크에서나 볼 수 잇는 사이키 조명시설도 갖춰놓았다.(후지모토 겐지 김정일의 요리사 中)

황 전 비서는 1979년 다시 당중앙의 비서로 복귀할 당시, 이전에 가졌던 최고 수뇌부에서 일한다는 기쁨과 보람은 없고 ‘독재의 고압선’ 바로 옆에서 다칠세라 걱정하면서 잠시도 긴장성을 풀지 못하고 있는 불안한 생활이었다고 말했다.

김정일은 사람들이 화목하게 지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상호 감시 비판하게 했으며, 상호 비판에서는 김정일의 사상과 지시에 충실하였는가, 충실하지 못하였는가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상호비판이 강화되고 당원들이 격렬하게 싸울수록 김정일의 권위는 높아진다. 그는 당원들의 생활을 잔잔한 상태에 두는 것을 반대하고 늘 풍파를 일으키고 들볶는 것을 좋아한다.

친필 서명 통한 ‘제의서 정치’로 일관

김정일은 사람들을 직접 대면하기 보다는 제의서(보고서)를 통해 친필 서명하고 지시를 내린다. 이것은 회의 공간을 통해 상대방 의견을 수렴하고 자신의 논리를 설득해가는 과정은 생략한 채 자신의 독단적인 생각만을 앞세우는 것이다.

당 중앙과 내각, 외무성, 군대, 인민보안성, 국가안전보위부 등에서 직접 올리는 제의서는 빠짐없이 읽고 자신이 직접 결론을 내려 보내 준다. 김정일의 정치는 사람을 통한 정치가 아닌 제의서 정치다.

김정일이 측근들을 모아 주최하는 일명 ‘연회’라는 곳에서도 김정일 특유의 황제의식이 드러난다. 그는 술 파티에서 술이 좀 취한 후에는 김정일 한 사람에 대하여서만 절대적 경의를 표할 뿐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는 직위고하를 따지지 않는다. 술 파티에서는 김정일 한 사람 밖에는 그 누구도 인정하지 말라고 지시해 술 자리에서도 절대 지도자의 권위를 완성시키려고 시도한다는 것이다.

김정일은 늘 모임이 있을 때마다 두 가지 주의사항을 강조한다. 그 하나는 당의 비밀을 지키라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개별적 간부들에 대한 환상을 갖지 말라는 것이다. 공개적인 것보다도 비밀리에 무엇을 하기 좋아하며 남이 잘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질투하는 것은 김정일의 성격상 특징 같이도 보인다.

김정일은 충실한 부하도 대중의 신망이 좋으면 질투하고, 다른 나라 지도자가 대중에게 신망이 놓아도 질투한다고 한다. 황 전 비서는 그의 이러한 성격상 특징이 철저한 이기주의적 관점과 관련되어 있을 것으로 봤다.

김정일의 심리나 성격은 유일지배체제를 완성하는 방향으로 형성됐다. 즉흥적이고 무자비한 습성은 대부분의 독재자를 닮았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수령만을 숭배하고 의지하며, 복종하도록 만든 것은 여타의 독재자와 또 다른 점이다. 그는 자기를 중심으로 한 인간관계 외의 인간관계는 터부시한다.

가족주의, 지방주의는 종파의 온상

그는 가족주의, 지방주의를 종파의 온상이라고 배격하며 동창회를 비롯해 여러 가지 형태의 친목회를 모두 반대한다. 심지어 사제관계나 선후배 관계도 따지지 못하게 한다. 이러한 극단적 이기주의와 지배욕이 수령절대주의 체제를 완성하는 심리적 배후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주변에서 생활한 사람들은 김정일에 대해 “매우 치밀하며 빈틈이 없고, 사람 마음을 꿰뚫어 보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기 힘든 사람”이라고 말했다. 결정의 순간에 즉흥적이면서도 상황 파악 능력이 뛰어나고 권력 유지에 철두철미함을 보인다는 것이다.

성혜랑은 “김정일은 매우 위험한 인물이지만 단순히 정신 나간 독재자라고만 본다면 다른 일면적 진실을 놓친다”고 말했다.

황 전 비서는 “확실히 김정일의 독재는 가혹하고 그의 독재 능력은 탁월하다”면서 “그는 바로 이 탁월한 독재능력으로 자기 아버지를 망치고 북한 사회를 망쳤으며 그를 추종하는 많은 순진한 사람들을 망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앞으로 그가 이 탁월한 독재 능력에 의거하여 남한과 외국의 많은 선량한 사람들을 망치고 7천만 우리 동포들에게 유례없는 재난을 가져오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DailyNK 기획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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