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대생들 ‘혁명화 교육’ 다를 바 없는 화목 작업

올해 2월 국내에 입국한 탈북자 김영순(27) 씨는 대학시절 교도대 훈련을 회상하면서 “말이 군사훈련이지 실제 절반은 노동력 징발이었다”며 더구나 “중대나 대대에서 필요한 연유나 석탄 등 물자구입을 핑계로 간부나 부유한 집 아이들은 집에서 놀기만 했다”고 말했다. 


김 씨의 말을 통해 알 수 있지만 북한 사회 곳곳이 심각한 물자부족에 직면하면서 대학생 교도훈련마저 비틀거리고 있다.


군부대들은 부대유지를 위해 필요한 물자들을 자체로 해결해야 하는 조건이기 때문에 물자공급을 보장하면 그만큼의 혜택을 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반대로 물자공급을 할 여유가 없는 대학생들은 군복과 각종 물품, 부식물 부족으로 큰 고생을 하게 된다.


특히 군사훈련에 익숙하지 않은 여학생들에게는 훈련도 힘든 일이지만 먹을 것과 난방을 보장하기 위한 물자 확보도 어려운 일 중 하나이다. 특히나 난방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땔감나무(화목)를 확보하기 위한 나무작업장(화목장) 작업은 고된 일 중의 하나이다.


화목장이란 말 그대로 겨울나기용 땔감을 준비하기 위한 작업장을 말한다. 그런데 문제는 군부대 관계자들이 교도대 훈련에 필요한 화목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나무장사를 위해서도 교도대 일원들을 동원해 일을 시킨다. 


부대 지휘관들과 정규 군인, 교도대가 숙식하는 병실(내무반)에 땔감을 자체로 해결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대학생 교도대들까지 화목조를 조직해 화목장이 있는 산으로 올려 보낸다.


필자도 대학시절 교도대 생활을 하면서 한 달 동안 화목장에서 지냈다. 화목장 생활조건은 최악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우리 대대는 대대 본부와 두 개의 현역 고사포 중대, 남대학생 교도중대, 여대학생 교도중대로 편성되어 있었다. 대대지휘부에서는 각 중대들과 대대 지휘부, 군관(장교) 사택 화목과 대대에 필요한 건설용 목재를 준비하기 위해 화목조를 조직했다. 각 중대에서 10명의 군인들을 선발했다. 


필자도 5월 농촌동원전투가 끝난 후 6월 중순경 화목조에 배속되어 화목장으로 올라갔다. 대대에서 50리 떨어진 야산에 위치한 화목장에 올라간 우리 여대생들은 깜작 놀라고 말았다. 여성 병실이 따로 없어 남성들과 한 병실에서 숙식하게 된 것이다.


대대 군의가 책임지고 남녀 20여 명의 군인들을 한 병실에서 침식하게 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당시 상황은 최악이었다. 감옥에서도 남녀가 집단적으로 한 방에서 생활하는 예는 없다. 북한에서도 남녀칠세부동석이라고 할 만큼 남녀간 유별이 심했다. 이런 전통을 떠나서도 여성들이 생활이 보장돼야 할 이유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충분하다.


한 방에서 남성들과 1개월 동안 자고 생활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고문이었다. 우리들은 먹고 자는 것뿐 아니라 1일분 화목 과제도 남성들과 별로 차이 없이 맡아 진행했다. 


생활조건도 어설프지만 화목 조건 또한 열악하기 그지 없었다. 화목조에 소속된 20여 명의 현역군인들은 우리 운반조와는 별도로 양날톱과 도끼를 가지고 주변 산봉우리 중 가장 높은 봉우리에 올라가 숙소를 대충 짓고 먹고 자면서 벌목을 진행했다.


이들이 베어놓은 나무를 차가 들어갈 수 있는 야산 입구까지 끌어내려오는 임무가 바로 20여명 의 남녀 대학생 교도대원들이 해야 할 몫이었다.


직경 70㎝이상 되는 아름드리 나무들을 끌어내리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중대에서 준비해가지고 온 장탄줄(쇠줄을 꼬아 만든 직경 7㎜, 길이 3cm 정도 되는 쇠밧줄로 고사포에 탄알을 장탄할 때 쓰는 쇠줄)로 나무 윗부분을 맨다. 다음 나무를 매단 장탄줄을 잡아 끌어 산정에서 아래까지 달려 내려오는데 이렇게 한번 운반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아무리 빨라도 15분이다. 


내려 올 땐 천천히 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경사가 급해 까딱하면 뒤에 따라와야 할 나무가 사람을 치어 다치는 사고도 발생했다. 필자도 끌고 내려오던 나무가 발 뒤꿈치를 때려 몇 일 동안 붕대를 감고 다닌 적이 있었다.


사람이 다쳐도 감독관은 잠깐 쉴 시간을 준 다음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무를 나르라고 계속 다그친다.


산길은 현역군인들이 곡괭이로 심하게 돌출된 돌들만 대충 뽑아버린 길인지라 내려올 때 길을 잘 보지 않으면 돌에 걸려 넘어지기 쉽다.
 
가끔 나무가 큰 돌에 걸려 끌던 장탄줄이 끊어질 때도 있다. 나무에 맨 장탄줄은 멧돼지나 곰 사냥에도 쓰이는 쇠줄이다. 이렇게 질긴 쇠줄로 만든 장탄줄이 끊어질 정도이니 나무를 운반하는 교도생들의 고충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있을 것이다.


15분 가량을 정신 없이 달려 내려와 나무를 내려놓고 다시 올라가려면 40분 정도 걸린다. 숨을 고르면서 슬슬 걸어 올라가는데도 산정에 당도하면 숨이 턱에 닿고 다리가 아파 10분 가량 앉아 숨을 고른 뒤에야 다음 나무를 나를 수 있다. 화목을 책임진 군의는 아래에 지켜서 있다가 지친 우리들에게 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다시 올라가라고 재촉한다.  


오전에 두 탕, 오후에 두 탕씩 하는데 하루 종일 이렇게 하다 보면 저녁에는 밥술을 놓기 바쁘게  잠자리에 떨어지고 만다. 화목작업을 시작해 한 주일이 지나니 지급받았던 지하족(활동화)에 구멍이 나버렸다. 그래도 새 신발을 공급하지 않는다. 구멍이 난대로 신고 일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일반 화목감을 해결 하려면 이런 큰 나무들을 베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대대에서는 화목감 해결을 핑계로 (건축) 목재도 해결하려 하기 때문에 큰 나무들을 베도록 한 것이었다.


1년 동안 이렇게 교도대와 군인들이 베어 날라 마련한 목재들은 대대나 중대 병실들을 짓거나 보강하는 데 쓰인다. 또 대대 산하 군관들의 집을 짓는데도 쓰인다. 상급 단위에서 요구할 때는 사업용으로 줄 목재들을 준비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이렇게 마련한 목재들을 팔아 부대 운영에 필요한 물자들을 마련하기도 한다. 집을 짓는 것은 나무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니 시멘트 같은 것들을 해결하는 데 사용하기도 한다.


황해도 지역에서는 일반 화목은 승리 58호 자동차(3톤급)로 하나면 2만5천 원 정도다. 목재용 나무는 한 트럭이면 5만원에서 7만원 사이에 팔았다. 황해도는 산지가 적어 함경도나 양강도, 자강도와 달리 나무 값이 비싼 편이다. 


남자들도 견디기 어려웠던 화목장에서의 생활을 견뎌낸 우리들은 가끔 서로에게 ‘혁명화 잘하고 왔다’는 말을 주고 받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