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386의원 ‘김정일 시혜’만 기다리나?

▲ 열린우리당 임종석 의원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16일 오전 최고위원들과의 회동에서 열린우리당이 북한인권결의안참여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상임위 상정조차 거부한 데 대해 “국제적으로 기가 막힌 일”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의 표정과 말은 여당의 행동에 대한 원망도 담겨있지만, 결의안이 상임위에 상정조차 되지 못하면서 한나라당이 취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이 원천봉쇄 된 것에 대해 기가 막힌다는 자조감도 섞여있었다.

당 내에서는 야당 의원 126명(한나라당 전원)의 서명을 받아 제출한 결의안이 상임위에 상정조차 되지 못한 것에 대해 의회 민주주의 정신을 짓밟았다는 원성이 높다. 여야가 죽이 잘 맞는다는 비아냥까지 들을 정도였던 통일외교통상위가 파행으로 돌아간 데서도 이런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강재섭 원내대표는 본회의 개회에 앞서 17일 유엔총회 표결 일정이 잡혔다는 것을 전해 듣고, “그러니…참.. 큰일이다”고 했다. 그는 “여당이 그런 식으로 나오니 방법이 없다”면서 “5분 발언 등을 통해 본회의에서 이 문제를 적극 제기하겠다.”고 말했다.

반면, 열린우리당은 여전히 유엔총회 인권결의안에 대한 당론을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당 내에서 북한인권 상황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감지됐지만, 상임위에서 결의안 상정조차 저지하는 초강수를 뒀다. ‘인권문제는 남북관계의 독소(毒素)’라는 입장이 여전함을 보여준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이미 뉴욕 현지에 정부 입장이 전달됐다”면서 “예전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미 장관들의 멘트를 통해 정부의 입장이 간접적으로 전달됐다고 본다”며 “표결에 앞서 백그라운드 설명 등이 진행될 것이다”고 말했다.

집권세력은 북한문제에 대한 신중한 접근을 강조한다. 남북관계, 북한 핵문제를 고려하고 실질적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와 여당은 과연 언제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침묵을 깰 것인가? 이 부분에 대해 열린우리당 임종석 의원은 “북한인권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서 북-미 평화협정과 동시 이행의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평화체제가 보장되면 북한인권개선에 적극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북-미 평화협정 체결은 북핵 해결 프로세스의 최종 시점에서 논의되는 문제다. 전문가들은 평화협정 체결이 아직 불확실하고, 핵문제 해결에 연동되기 때문에 최소 수 년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집권세력은 향후 수년 동안 북한 인권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말이 된다.

결국 정부와 여당은 북한이 스스로 개혁개방으로 나와 북한인권문제 개선에 나설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것이다. 북한의 인권 개선 방법에 대해 여러가지 이견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의 북한 인권거론 자체가 남북관계에 장애가 된다는 인식 하에서는 북한주민의 심각한 인권침해 현상을 계속 방조하는 결과밖에 나올 수 없다.
정부와 여당은 입만 열면 남북 화해협력의 시대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스스로 이러한 화해협력이 북한주민의 고통을 외면하고 김정일 정권과의 협력에서 나온 것임을 최근 사태에서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인권’을 자신들의 전유물인 것처럼 말하는 집권세력이 북한인권 문제는 김정일의 시혜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실질적 개선론’을 주장하기까지 이르렀다. 이러한 주장의 선두에는 과거 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선봉에 섰던 386세대 의원들이 서있다.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모른다는 말이 있다. 과연 이들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 대한민국의 민주화와 인권개선을 위해 집권자의 시혜를 기다렸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집권세력의 집단 망각 증후군이 여의도에 떠돌고 있다.

신주현 기자 shin@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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