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또 `컨트롤 타워 부재’ 논란

북핵 사태의 대응방향을 둘러싸고 여권의 ‘고질병’인 정책혼선이 또다시 도지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일사불란한 위기대처가 요구되는 사안을 놓고 당.정간 또는 당 내부에서 서로 말이 다르고 정부 부처간 보폭도 제대로 맞지 않고 있다.

지난 9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주재 긴급 안보장관회의를 시작으로 정부 차원에서 각종 외교.안보 대책회의가 잇따르고 여당에서는 연일 비상대책회의와 북핵특위가 열리는 등 다양한 회의체가 풀가동되고 있지만 정작 결론은 중구난방식으로 포말화되고 있다.

여권내 이해당사자간 이견을 조정할 ‘컨트롤 타워’가 거의 작동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 8월 여권내 소통을 활성화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만들어진 ‘고위 당.정.청 4자회동’은 사태발생 4일이 지나도록 열리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여권의 엇박자 양상은 북핵 정책의 방향을 둘러싸고 일반 국민들과 시장에 ‘모호한 메시지’를 줄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교.안보정책의 불확실성을 키우면서 자칫 국정운영 전반에 대한 신뢰도를 흔들 수 있다는 것이다.

여권의 자중지란은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참여 확대를 둘러싼 당.정 간 이견에서 극점에 달하고 있다.

외교통상부는 PSI 참여를 확대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듯한 분위기이지만 여당 지도부가 공개적으로 옵서버로 참여하는 현재의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며 제동을 걸고 나선 것. 당정간 협의채널은 가동하지 않은 채 당과 정부가 제각각 외부에 대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형국이다.

한 초선의원 조차 “엑셀러레이터(가속페달)와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고 있는 것 같아 불안하다”고 혀를 찼다.

더욱 큰 문제는 정부 관계부처와 여당 내부에서 조차 일치된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점이다. 특히 외교부와 통일부 등 관계부처들 사이에 PSI 참여 확대여부에 대한 이견이 표출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나라당 황우여(黃祐呂) 사무총장은 이날 당 지도부 회의에서 “원래 유화적이고 온건한 입장을 취하는 외교라인에서도 이를 채택하자는데, 통일부에서 막는다는게 걱정된다”고 비판했다.

여당 내부도 어지럽기는 마찬가지다. 당론이 확정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PSI 참여여부를 둘러싸고 당 의장부터 초선의원들까지 ‘소신’임을 전제로 여과없이 개인의견을 표출하기에 바쁘다.

전날 PSI 참여확대를 강력히 반대했던 김근태(金槿泰) 의장의 한 측근은 “당의 입장이 없다고 견해를 밝힐 수 없는 건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대북 포용정책기조를 놓고도 혼란상이 연출되고 있다. 정부측은 ‘사정변경’을 이유로 포용정책의 일부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분위기를 잡고 있지만 여당은 드러내놓고 “신중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는 남북 경협사업의 지속여부를 둘러싼 혼선으로 이어지고 있는 양상이다.

정부 내에서는 노 대통령이 대북 포용정책의 재검토 가능성을 시사한 이후 경협사업의 전면 재검토 쪽으로 정책의 방점을 찍고 있었지만 여당의 반대 분위기가 강해지자 다시 관망 쪽으로 스탠스를 바꾸고 있다.

물론 일각에서는 당정간의 이 같은 이견이 곧 있을 미국과의 안보협상 과정에서 오히려 우리 정부의 대외 협상력을 높이는 ‘지렛대’ 효과를 하지 않겠느냐는 주장도 나온다.

여당의 한 관계자는 “의견차를 완전히 조율하지 못할 바에야 여당이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게 정부의 선택권을 넓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반 국민과 시장의 시선이 정부의 일거수 일투족에 쏠려있는 현 상황에서는 내부에서 치열하게 조율하되, 밖으로는 일관된 목소리를 내는게 더욱 중요하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이런 분위기를 의식한 탓인지 여권 내에서는 뒤늦게나마 이견조율을 하는 모양새를 갖추려고 서두르는 모습이다. PSI 확대 참여여부 등을 다룰 고위 당정협의회와 ‘4자회동’도 조만간 개최될 것으로 알려졌다.

한 당직자는 “당정간에 긴밀한 정책조율을 정해서 확실한 입장을 갖고 대응할 것”이라며 “지금까지는 워낙 경황이 없었는데, 조만간 4자회동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연합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