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간첩 판결 “일반인 접근 가능해도 국가기밀”

수원지법 제11형사부(재판장 신용석 부장판사)는 15일 여간첩 원정화(34) 피고인에게 징역 5년형을 선고하면서 간첩행위 등 6가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특히 원정화가 수집한 국가기밀을 놓고 그동안 ‘함량미달’ 논란이 제기됐으나 “국가안보에 심각한 위해를 가져올 수준이 아니다”고 하면서도 이를 유죄로 판단한 재판부의 판결이 눈길을 끌었다.

공소장에 따르면 원 피고인이 탐지.수집해 보고한 국가기밀은 황장엽 씨의 거주지와 탈북자 명단, 국가정보기관 및 군부대 위치, 대북정보요원과 군장교 인적사항 및 활동상황, 비전향 장기수 현황 등이다.

이에 대해 국선 변호인 이상훈 공익법무관은 지난 1일 공판에서 “피고인이 수집한 정보는 인터넷 포털에서 검색이 가능한 것들로 국가기밀이 아니다”며 인터넷에서 검색한 자료를 반론 증거로 제시하면서 심지어 피고인의 범죄를 “절도 보다 낮은 수준”이라고 변론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피고인은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의 지령을 받아 황장엽 씨의 소재파악을 시도하고 미군기지 위치 등 국가기밀 또는 군사상 기밀을 탐지.수집해 북한 공작원에게 전달했다”며 “피고인이 취득한 국가 기밀이 유사 사례에 비춰 규모와 질 면에서 결코 가볍지 않다”고 변호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다만 “언론매체와 정보통신의 발달로 일반인도 접근이 가능한 정보가 많고 국가안보에 직접적으로 심각한 위해를 주는 정보가 아니다”며 양형에 참작했다.

재판부의 판단은 국가보안법상 국가기밀에 대한 대법원 판례를 잣대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1998년 4월 국가보안법 사건 상고심에서 “일반인이 쉽게 구할 수 없는 대학가 유인물이나 일부 한정된 대형 서점에서만 구입이 가능해도 국가기밀의 판단기준인 ‘공지의 사실’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국가기밀의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

1997년 11월 판례에서도 “기밀이 사소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누설될 경우 반국가단체에 이익이 되고 대한민국에 불이익을 초래할 위험성이 명백하다면 국가기밀에 해당된다”고 밝혔다.

수원지법 재판부는 이밖에 원 피고인이 탈북자로 가장해 국내에 들어와 7년간 6만달러의 활동자금을 받은 혐의(국가보안법상 편의제공, 금품수수), 14회 중국으로 출국해 중국에 소재한 북한 보위부의 지령을 받은 혐의(잠입탈출, 회합통신), 51회 북한찬양 CD를 상영해 군장병의 대북관에 혼란을 준 혐의(찬양고무) 등을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원정화의 간첩활동 방식에 대해서도 “이제까지 발견되지 않은 방법인 탈북자 신분을 교묘히 이용해 기밀탐지활동을 장기적으로 해온 행위가 국가 존립을 위태롭게 하고 자유민주질서를 해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변호인은 “예상보다 형량이 높았다”며 “피고인과 협의해 항소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국가보안법과 형법에 따라 간첩죄는 법정형이 징역 7년 이상이고 형을 절반으로 감경해도 징역3년6월 이상이 나온다.

이번 재판에는 취재진을 포함, 70여명이 지켜봤으나 피고인이 첫 모습을 드러냈던 지난달 10일 1차 공판 때와 비교할 때 차분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이날 법원 앞에는 후지, 아사히, NTV 등 일본 방송사가 임대한 위성중계차량이 배치됐고 요미우리신문 등 일본 특파원들이 찾아 일본에서의 북한 문제에 대한 관심을 반영했다.

한 일본 특파원은 “여자 간첩 사건이고 북한 문제라서 일본에서 관심이 많다”고 전했다.

이날 원 피고인은 공판 10분 전 호송용 검은색 코란도 차량을 타고 모자와 마스크를 쓴채 법원에 도착했다.

법정에 들어선 그는 수사를 담당했던 수원지검 윤대해 검사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넸으며 재판장이 판결문을 읽는 동안 담담한 표정으로 서 있다가 말미에 징역 5년의 주문을 읽을 때에는 고개를 떨궜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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