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부탁해”…북한의 가모장제(家母長制) 풍속

1990년대 중반 이후 북한은 바야흐로 ‘여성 상위시대’가 열렸다. 국가 배급제 붕괴와 시장 활성화에 따라 여성의 지위와 역할은 큰 폭으로 확대됐다. 사실상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면서 봉건적 잔재가 여전한 가정에서의 목소리도 점차 커지고 있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남성들의 지위와 역할이 컸다. 국가 배급제가 유효해 집안 살림만 하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정일 정권의 실정(失政)에 따른 경제난으로 국가의 배급이 끊기고 동시에 여성들의 경제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이 같은 상황은 역전됐다.



대부분의 기업소, 공장은 가동이 중단돼 노임이나 배급을 주지 못하는데도 북한당국이 주민 통제를 위해 남성들의 직장 출근을 강요하면서 가족 내 남녀의 역할이 뒤바뀐 것이다. 당장 가족의 생계를 위해 여성들은 시장에서 자구책(自救策)을 찾았다.



탈북자 이만복(54) 씨는 데일리NK와 통화에서 “가족들을 위해 장삿길을 갔다 왔는데 그것(무단결근)때문에 6개월 강제노동 단련대에 갔었다”며 “결국 아내가 간신히 벌어다 주는 것으로 살았다. 자연히 아내 앞에서는 할 말이 없어졌다”고 소회했다.



여성들의 활발한 경제활동은 2000년대 들어서 급속도로 남성들의 가족 내 지위 하락을 불러왔다. 가부장적 봉건잔재도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최근에는 남편들을 가리켜 ‘집지키는 멍멍이’ ‘낮 전등’ ‘만 원짜리 열쇠’ 등의 비어 등도 등장했다.



2008년까지 중국 등에서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꾸려왔던 평양출신 탈북자 송미경(46) 씨는 “교원으로 집안에서 기세가 등등했던 남편이 아무 일도 못하고 내가 보내는 돈으로 살아가는 형편이다 보니 자신을 ‘집지키는 멍멍이’에 비기면서 허전해 했다”며 “남편이 갑자기 그렇게 나오니 나도 할 말을 잃었었다”고 말했다.



함경북도 출신 유명희(51) 씨는 “평시 남편은 ‘자고로 여자는 시집을 오면 입 다물고 3년, 눈 감고 3년, 귀 막고 3년 시절을 지나보내야 한다’는 봉건적 인식이 많아 말도 제대로 못하게 했다”면서 “하지만 내가 장마당에 나가 돈을 벌면서 가정을 유지하니 자존심도 버린 것 같았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여성들의 시장 활동 증가로 경제적 자립능력이 제고되면서 남성들이 여성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도 변화가 관측되고 있다.



2009년 탈북한 염춘옥(43) 씨는 “이전에는 남편들이 ‘여자와 도리깨는 돌리면 못쓰게 된다’며 여성들의 활동을 저지해 왔는데 지금은 ‘여자가 벌어서 사는 세월인데 당연히 여자가 벌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며 “며칠 전 북한의 언니와 통화했는데 ‘무거운 짐을 들고 장사를 해도 집안에 들어가면 전보다 많이 달라진 남편이 잘 대해줘 즐겁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처럼 90년대 중반 대규모 아사(餓死)는 북한 가족 내 역할에 변화를 가져왔다. 여성들의 시장 활동 증가로 경제적 자립능력이 제고되면서 가족 내 지위가 향상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도 가부장 중심의 가정생활로 여성권이 침해받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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