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이거, 진짜 평양에 온 기분이네!

▲ 전승기념관 강사 조이진, ‘국경의 남쪽’ 한 장면

탈북자를 다룬 영화 ‘국경의 남쪽’을 보았다. 기자도 탈북자다. 장동건 주연의 ‘태풍’에 이어 요즘 남한에는 탈북자를 다룬 영화가 연이어 선보인다. 이제 우리 사회에 탈북자도 ‘하나의 계층’으로 등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경의 남쪽’은 중국과 동남아를 거쳐 수만리를 돌아 자유를 찾아온 어느 탈북자의 스릴 넘치는 탈출과 사랑을 그렸다.

평양에 다시 온 것 같은 착각

영화의 내용은 대체로 이러했다. 남한의 할아버지로부터 편지를 받았다는 이유로 수용소로 끌려가게 된 아버지는 가족을 이끌고 탈출에 나선다.

약혼녀(조이진)를 설득시키지 못해 먼저 탈북하여 남한에 온 주인공 차승원은 조이진을 데려오기 위해 ‘통장 깡’으로 전달한 돈마저 몽땅 사기 당한다. 그는 아르바이트로 억세게 돈을 모았지만, 북의 조이진이 이미 결혼했다는 소식에 절망하여 남한 여성과 결혼한다. 그러나 훗날 탈북에 성공, 남한에 입국한 조이진을 만난 차승원은 죄스러운 마음에 북의 약혼녀와 사랑하면서도 이별한다는 내용이다.

기자는 영화를 보며 지난날 “아버지 장군님(김정일)께 충성을 다하고, 앞에 있는 적들만 물리치는 게 인생인 줄 알았다”고 말하는 주인공의 독백이 가슴에 다가왔다. 기자가 북한에서 군 복무할 때도 꼭 그랬다. 탈출과정과 남한정착에 대한 이야기도 실감 있었다.

탈출에 앞서 북한에서 살던 집을 나설 무렵, 어항 속 붕어에게 먹이를 한줌 더 뿌려주는 어머니의 모습은 정든 집과 손때 뭍은 가정을 버리고 맨몸으로 떠나온 탈북자의 눈시울을 적셨다.

차가운 두만강을 건너고, 오밤중 중국공안의 추격을 피해 쫓겨 다니며, 외교공관으로 뛰어드는 탈북가족의 모습은 파란 만장한 인생을 걸어온 탈북자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잘 그렸다.

또 약혼녀를 데려오기 위해 가진 돈을 몽땅 사기 당하고 아르바이트로 힘겹게 돈 버는 주인공의 모습은 탈북자들의 정착생활 그 자체다.

통일전망대에 올라 북녘 하늘을 보며 통탄하는 차승원의 감성 연기는 영화를 보는 탈북자의 가슴을 울렸고,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조이진의 평양사투리는 마치 평양에 다시 온 것 같았다.

제작비 70억 중 30% 이상을 평양거리 재현과 의상구입에 썼고, 특히 4분짜리 ‘당의 참된 딸’ 가극(뮤지컬)을 재현하기 위해 5억원의 거금을 들였다니, 이 영화를 찍기 위해 애썼을 제작진의 수고를 실감케 한다.

한권의 책보다 낫다

영화를 보는 기자도 여러 번 콧등이 시큰해졌다. 평양을 떠난 지 9일만에 두만강에 도착해 국경경비대의 번뜩이는 전지불 앞에서 몸 수색을 당하던 그날도 비가 내렸었다.

두만강을 건너 원시림 같은 중국의 산을 누비며 북으로, 북으로 향하던 일, 중국공안의 습격을 피해 소 외양간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던 나날들이 눈앞에서 재현되는 듯 했다.

자유를 찾았다는 기쁨에 남한행 비행기에 올라 눈물을 쏟던 기억, 아르바이트로 ‘물탱크’ 청소에 뛰어다니던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영화 ‘국경의 남쪽’은 북한 젊은이들의 사랑과 생활, 생사를 넘나드는 스릴 있는 탈출과정을 실감 있게 보여주고 있다. 북한 관련 책을 있는 것도 의미 있겠지만, 이 한편의 영화가 책보다 낫다는 느낌이다. 남한 국민들에게 이 영화 관람을 권하고 싶다.

한영진 기자 (평양 출신, 2002년 입국)hyj@dailynk.com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