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중국 사진작가의 대담한 밀착방북기 ③

▲ 북한방문기가 게재된 中 사이트

다음날, 우리 일행은 묘향산에 있는 ‘국제친선전람관’을 참관했다. 국가원수 등 외국 사람들이 김일성, 김정일에게 선물한 것을 전시해놓은 곳이다. 이때 나는 ‘D100’ 카메라를 사용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전람관 내부를 찍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도 찍지 못했다. 들어가면 먼저 카메라 등 몸에 지닌 쇠붙이를 모두 회수해갔다.

전람관 측에서 주는 덧신인 ‘신발 커버’를 신고 들어갔다. ‘김일성 전람관’과 ‘김정일 전람관’은 모두 산기슭에 건설되었는데, 마치 지하에 건설된 궁전 같았다. 해설원이 말하기를 김일성의 선물은 200여 개의 방에 진열되었다고 한다.

▲ 국제친선전람관에 들어갈때 착용하는 덧신, 신발 위에 덧신(커버)을 신는다

▲ 전람관 입구의 문

한 방이 약 50~60 평방미터(중국기준)쯤 되었다. 한 점의 선물을 보는데 약 1분 걸린다고 하니 몇 년이 걸려야 다 볼 수 있는 셈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중 몇 개 방을 골라 보았다. ‘김일성 전람관’은 비교적 가짓 수가 많았고, 매 선물마다 증정한 사람의 명함이 있었다.

김일성 초상화에 절 세 번

제일 웃기는 것은 ‘김정일 전람관’인데, 어느 방에 진열된 선물을 볼 때였다. 해설원은 “여기에 진열된 것은 김정일장군님께서 생일 하루 동안 받은 선물”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국가원수가 생일날 선물을 받는데 무슨 문제는 없다. 그러나 문제는 누가 준 선물인가 하는 것이다.

▲ ‘김정일 전람관’. 폭격에 안전하게 지하로 되어 있다

또 선물을 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대표하는가 하는 거다. 국가를 대표하는가, 지방정부라도 대표하는가, 아니면 하다못해 외교부의 차장이라도 되어야 국가간 친선전람관에 어울릴 것이다.

해설원이 “이것은 중국 요녕성 대표단이 보낸 것이다”고 해설하기에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다른 선물들은 영어로 써서 몰랐는데, 중국 글자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 선물은 요녕성 어느 회사 회장이 선물한 것인데 수옥(岫玉)으로 된 아주 소박한 공예품이었다.

‘김일성 전람관’을 방문했다. 나는 그것을 제대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전문 진열실이었는데, 안에는 김일성의 납상(蠟像: 밀랍으로 만든 상)이 있고, 크기도 사람과 비슷하고 살아있는 것처럼 생동했다. 북측 가이드 김씨와 해설원, 우리 가이드가 심중하고 엄숙해졌다. 그리고 진열실 밖에 있는 우리를 두 줄로 세우고 한 줄이 먼저, 두 번째 줄은 그 뒤를 바짝 따르게 했다. 옷깃을 여미고 모자를 벗고 말을 하지 말라고 했다.

전문 일꾼이 경건하게 진열실의 문을 열었다. 우리는 모두 조용히 들어가 초상화 앞에 두 줄로 서서 해설원이 인사하라는 말에 따라 한번 굽이고, 두 번, 세 번 허리를 굽혀 인사한 후 조용히 물러났다. 하마트면 어지러워 넘어질 뻔했다.

▲ 전람관 해설원

‘김일성 전람관’을 나와 대문 앞에서 한 장 찍으려고 했다. 문 앞에 있던 병사가 나더러 찍지 못하게 했다. ‘여기가 뭔데 찍지 못하게 하는 거야.’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는 해설원을 끌어당겨 우리 일행과 단체사진을 찍자고 했다. 그도 동의했다. 우리는 그를 가까이 세우고 대문을 배경으로 한 장 찍었다.

나중에 우리는 김정일의 선물관을 돌아보았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에게 덧신을 신으라고 했다. 두 개의 전람관을 다 본 다음 나는 아주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두 전람관이 모두 지하에 궁전처럼 되어 있었고, 지하에 있는 선물관은 원자탄도 뜷지 못한다고 한다. 건축자재는 아주 방대했다. 우리가 김 가이드에게 ‘이 두 전람관을 짓는데 얼마나 투자되었나?’하고 물었더니 그는 머리를 가로 저었다.

알면서 모른다고 하는지, 아니면 진짜 모르는지 알 수 없었다. 북한은 ‘댕그랑’ 소리가 날만큼 가난한 나라지만, 이처럼 거금을 투자해 호화스러운 선물관을 건설했다. 그런가 하면 많은 돈을 들여 미사일을 만들거나 정치적 목적에만 사용한다. 나는 세상 사람들에게 북한을 고립시키자고 하는 소리가 아니다.

그러나 지하에 있는 이 많은 선물들을 다 바깥에 쏟아내놓으면 진정 북한 사람들이 ‘댕그랑’ 소리가 나게 가난할까? 이 물건들을 다 쏟아놓고 바깥 세계에 (북한을) 증명해본다면 (북한은) 불쌍할 것도 없고 비극도 없을 것이다. 물론 이건 나의 생각일 뿐이다. 사진은 ‘김정일 전람관’의 정문, 모든 진열실은 건축물의 지하에 있다.

북한측에서 동행한 三劍客(3 검객)

▲ 최 가이드, 그는 틀림없는 안전일꾼이다

최씨 가이드는 가짜 가이드다. 사실은 북한 안전부문의 일꾼이다. 그들은 우리가 말하는 특무다. 이 ‘소특무(小特务 : 小는 중국어로 낮잡아 볼 때 쓴다 – 편집자주 )’는 아주 시끄러운 사람이다. 우리를 지켜보고 끈질기게 우리를 쫓아 다닌다. 그는 중국어를 알기 때문에 우리의 말을 엿듣는다. 우리가 소리를 낮춰 말하면 그는 더욱 우리 곁에 다가와 붙는다. 우리가 대화할 때면 머리를 돌려 집중해서 듣는다. 후에 우리는 아예 목소리를 높여 말을 했는데 그제서야 바짝 따라붙지 않았다.

밤에 우리는 호텔에서 할 일이 없어 중국에서 가져간 술과 음식거리들을 내놓았다. 김 가이드와 ‘특무’를 불러 참가시켰는데, 그들은 아주 기뻐했다. 사람들이 다 앉았는데 ‘특무’가 보이지 않았다. 우리측 가이드가 김 가이드에게 “정보원(특무를 지칭)은 어디에 갔는가? 왜 안 오는가?”하고 물었다. 김 가이드가 얼굴이 시뻘개지며 “무슨 정보원, 허튼 소리”라며 난처해 하자 우리는 웃고 말았다.

얼마 지나도 최 가이드가 오지 않자, 우리 가이드는 “기다리지 말자, 그 난쟁이가 도청기냐? 우리 먼저 마시자”고 말해 사람들을 웃겼다. 사람들이 한동안 웃자 김 가이드는 화가 나서 말도 하지 않았다. 본래 그는 중국말을 아주 힘들게 하기도 했다. 그래도 우리 가이드가 북한에 자주 다녀 김 가이드와는 아주 친숙했지만, 그 ‘특무 가이드’는 처음 보았다고 한다.

▲ 북한전역에 세워진 영생탑

평양에서 유명한 건축물을 보기로 하자, 비교적 북한 특색이 있다. 사진은 ‘영생탑’이라고 하는데, 김일성 장군을 위해 건립된 것이다. 영생비의 뜻은 ‘위대하신 김일성 수령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이다. 북한의 행정구역은 도, 군, 리로 되어 있는데, 우리나라(중국)의 성, 현, 향과 같다. 이러한 영생비는 모든 도, 군, 리에 다 있는데 다만 규격상 평양의 것보다는 좀 작다.

▲ 개선문

사진은 개선문인데, 파리의 개선문보다 훨씬 크다. 우리는 여기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 컬러 TV 중계탑

TV는 한 개 채널밖에 없는데, 큰 탑을 건설해서 뭘 하자는 것인지 알 수 없다.

▲ 천리마 동상

천리마동상. 북한의 지금 상황을 알 수 있다. 아래에는 흰옷을 입은 사람들인데 학생들이 밤에 횃불행진을 준비하는 것 같았다. 이미 태양은 서쪽으로 기울어졌다.

▲ 북-중동맹을 과시하는 우의비(友誼碑), 북한에서는 우의탑이라고 한다

우의비(友誼碑)옆 잔디밭에 한 무리의 북한주민들이 야유회를 한다. 거리는 아주 먼데, 내가 GX8을 써서 힘껏 당겨 찍은 것이다. 너무 거리가 멀어 낡은 신문지의 사진처럼 보기가 좋지 않다.

▲ 우의탑 바로 옆에서 식사하는 주민들

우리 단체에 3명의 조선족 여행객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 중 두 사람은 옌지(延吉) 사람이고, 다른 사람은 우리 동료였다. 그 둘은 조선말을 아주 잘 하는데 직접 북한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조금도 이상이 없었다. 그러나 우리의 동료는 노출시키지 않았다. 평시에 중국어로 말해 북한말을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게 했다.

북한 안전부에서는 조선말을 하는 사람들을 특별히 감시했다. 그들이 북한 주민들과 직접 상대하는 것을 감시하기 때문에 우리 동료는 조선말을 모르는 척했다. 그러나 내가 모르거나 호기심이 생기는 일이 있으면 조용히 나에게 번역해주곤 했다.

“승인없이 사진찍는 외국인에게는 본때를 보여야”

북한 가이드의 감시는 언제나 옌지에서 온 두 사람에게 돌아갔다. 나는 우의비의 계단에서 야외에서 밥을 먹는 북한주민들을 향해 찍으려고 했는데, 거리가 아주 멀었다. 잘못 찍을 것 같아 렌즈를 맞추는데 특무(최 가이드)가 내 앞에 다가왔다. 찍지 않고 돌아서는데, 북한주민들은 내가 그들을 찍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의비를 다 보고 내려올 때 나는 주민들을 몇 장 더 찍었다. 그들도 나를 보았다.

▲ 자기들 사진을 찍었다고 분개하는 주민

그때 주민들 중에 뛰어나온 한 젊은이가 나보다 10미터 앞에 걷고 있는 옌지 조선족을 가로막으며 당기고, 밀고 하면서 한참 동안 다투었다. 나는 그들의 말투와 표정을 보고, 상황이 안 좋다는 것을 직감했다. 긴장 되었다. 나의 사진 찍는 행동이 그들을 화나게 했기 때문이다. 긴장한 나는 그 상황을 찍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 싸우게 된 원인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북한주민

이때 김 가이드가 우리 일행에 시끄러운 일이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재빨리 뛰어와서 밀고 당기는 사람들 앞에서 소리쳤으나, 오히려 더 시끄러워졌다. 이때 같이 밥을 먹던 북한 주민들이 자기 동료를 큰소리로 불렀다. 아마 돌아오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젊은이가 돌아가지 않자 흰 셔츠를 입은 사람(사진에 찍힌 사람)이 우리 쪽으로 달려왔다.

빌어먹을 그 ‘특무’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김 가이드는 한참 동안이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이때 특무가 와서 몇 번 으름장을 놓자, 그 젊은이의 안색이 풀렸다.

특무의 표정과 말투는 아주 엄숙했다. 흰 셔츠를 입은 사람이 상황을 설명했고 상황은 금방 누그러졌다. 나는 옌지 사람에게 어떻게 된 일인가 물었다.

사연인즉, 그 젊은이가 달려와 ‘지금 몇 시인가’고 물었다고 한다. 조선족이 몇 시라고 대답하자, 그 젊은이는 어떻게 조선말을 아느냐며 다시 물었다고 한다. 중국에 사는 조선족이라고 하자, 그 젊은이는 못마땅해 했다고 한다. 조선족들은 ‘북한 사람들이 왜 중국으로 넘어오는가, 북한이 좋지 않은가’라며 비꼬는 등 실랑이가 벌어졌다는 것이다. 그 젊은이는 술에 취했다고 했다.

▲ 개선 영화관.

이것은 영화관이다. 개선문 옆에 있는데, 그 앞으로 가려고 하자 ‘특무’가 가지 못하게 돌아오라고 불렀다. 나는 멀리서 한 장 찍었는데, 그 곳은 복잡했고 마치 명절 분위기 같았다.

▲ 군고구마 매대

▲ 나무그늘 아래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주민들

▲ 명절일색으로 단장한 주민들, 사진을 찍자 이상하게 응시한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못생긴 사람은 평양에 거주시키지 않는다’고 한다. 이유는 국가 이미지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의젓하고 잘 생기면 평양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된다는 것이다. 나는 평양에 들어 설 때 김 가이드에게 사실이냐고 물었더니, 그는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내가 평양에서 확실히 못생긴 사람은 보지 못했다. 평양에는 미녀들이 많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교적 아름답다.

▲ 노상에서 영업하는 사진관

북한에도 막 디지털 카메라가 시작되었다. 묘향산의 호텔 안에서 어느 광고 간판을 보니 윗면에는 디지털 사진이 붙어 있었다. 가격은 엄청나게 비싸 뒤로 넘어질 정도였다. 필름 속의 한 광고사진은 여인이 어린이를 안고 성감적인 내의를 입고 생긋이 웃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 우리 일행과 동행한 북측 사진기사

이 사진기사 젊은이는 여간 바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행동이 돈을 벌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여행이 끝나갈 무렵, 김 가이드는 우리가 여행한 모든 것을 다 촬영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편집도 다 되었으니, 원하면 말해달라고 했다.

사진 한 세트에 중국돈(인민폐) 150원이라고 한다. 사진을 요구한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사실 그 젊은이가 수고스럽게 따라다니기는 했지만, 그걸 사봐야 별로 쓸모가 없었다. 그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돈 주고 살 수 없었다.

광장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아주 정연하게 있었다. 나는 진정한 주민들의 모습을 찍고 싶어 했다. 자연적인 상태에 있는 주민들의 생활을 알고 싶어 가이드의 소개를 듣지 않고 사방으로 돌아다녔다.

두 명의 미녀, 사진 배경용이라?

사람들은 사진 찍는 것을 아주 경계했다. 평양 사람들은 복장의 시세(時勢)에 개념이 없어 보인다. 남자들은 모두 양복 아니면 잠바, 군복을 입었다. 여자들은 일반적으로 3종의 옷을 입는다. 하나는 서양식의 정장인데 아주 단정해 보이고 색깔도 비교적 단조로웠다. 두 번째는 민족의상이다. 색깔은 아주 진한 색이고 형식이 똑같았다. 세 번째는 경찰, 복무원 등 각종 제복들이다.

이런 패션 감각은 아마 옛날 조상 때부터 물려받은 것이고, ’25세기’가 되어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통일이 되면 한국 젊은이들의 복장속도에 맞게 빨리 달라질 것이다.

4~5년 전 북한을 방문했던 친구들에게서 들은 이야기인데, 체크무늬가 있는 셔츠를 입었다고 경찰에게 붙들려 가서 두 시간 동안이나 벌을 받았다고 한다.

북한경찰이 그들을 모두 망나니로 알고 잡았다는 것이다. 남자들이 입은 체크무늬 셔츠가 ‘망나니들이 입는 것’이라는 이런 황당한 일은 지금 북한에서는 발생하지 않고 있다. 북한 주민들의 복장이 확실히 단조로워 마치 60~70년대에 외국 사람들이 중국 사람들을 보던 것과 같다. 북한은 그나마 민속복장이 있어 다행이다.

▲ 예쁜 한복을 차려입은 두 미인이 할일없이 유보도를 걷고 있다

돌연 한 쌍의 미녀들을 보았다. 멀리서 보니 아주 예뻤다. 그리하여 렌즈를 그들에게 한참 동안 맞추고 마음속으로 내 쪽으로 얼굴을 돌리기를 바랬지만, 마주보지 않았다.

▲ 가지런히 앉아있는 여인들

마주보기를 기다리는데, 그녀들은 가지도 않았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우리 주위에 있었다. 나중에 우리와 멀지 않은 돌 위에 앉았다. 재빨리 몰래 두 장을 찍고 보니 카메라의 조절이 잘 안되었었다.

▲ 사진 찍자는 제의를 흔연히 받아들인다

조절을 끝내고 머리를 들어보니, 우리대표단의 몇 명의 여행객들이 그들을 둘러싸고 그들에게 사진을 찍자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주 대범하고 자연스럽고 거의 친구와 같이 기뻐 응하는 것이다. 나도 앞에 가서 한 장 찍었다.

후에 안 일이지만, 그들은 외국인들이 오면 같이 사진찍는 것이 전문적인 일이라고 한다. 외국인들이 북한에 오면 틀림없이 한복을 입은 북한여성들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예쁜 여성들을 몇 명 파견하여 사진만 찍게 한다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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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 정리 : 한영진 기자 (평양출신, 2002년 입국) hyj@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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