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북-중 국경특파원’의 애틋한 죽음을 아십니까?

지금까지 북한을 세 번 방문했고, 50차례 이상 중국 동북지역에서 북한 취재를 벌였다는 일본의 프리랜서 기자는 “북-중 국경지역에 대한 취재는 잔뼈 굵은 베테랑 기자들에게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합니다.

팩트(fact)를 기록하는 것이 기자의 업(業)이라고 할 때, 북-중 국경지역은 사실관계에 대한 접근 자체가 총체적으로 차단되어 있는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북한 당국이 외부언론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중국으로부터 먼지 하나 들어와도 안되고, 중국으로 돌맹이 하나 빠져나가도 안된다는 식으로 국경을 봉쇄하고 있습니다. 사람 이동, 서신 교환, 유․무선 통신 이용 등 모든 것이 차단돼 있습니다.

이런 조치를 어기고 휴대전화로 중국과 통화를 시도하거나, 검열 받지 않은 편지를 보내거나, 국경을 건너게 될 경우 자칫하면 ‘간첩죄’로 내몰려 온가족이 몰살되기도 합니다.

기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대단히 중대한 도전입니다. 그러나 법과 군대와 돈으로 무장하고 있는 정권의 봉쇄망을 뚫고 팩트를 찾아내야 하는 기자의 무기는 고작 펜과 종이, 카메라, 휴대전화, 그리고 유사시 무지무지 빨리 달려야 하는 튼튼한 두 다리가 전부입니다.

북한 주민들도 기자를 두려워합니다. 한평생 ‘입조심’을 세뇌당해 온 북한주민들에게 ‘남조선 기자’만큼 두려운 존재도 없습니다. 남조선 기자를 만나서 대화를 나눈다는 것 자체가 ‘간첩짓’이기 때문입니다.

언론이 갖고 있는 ‘진실의 힘’을 경험해보지 못한 탈북자들은 제 아무리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일을 겪었다 하더라도 자신의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연좌제’의 공포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여권을 발급받아 합법적으로 중국으로 나온 북한 여행자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때가 되면 고향에 돌아가야 하는 그들 역시 남조선 기자를 만나 장마당 쌀 가격, 자신 생계수단 등 소소한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조차도 ‘큰 결심’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중국 당국도 그렇습니다. 아무리 개혁개방, 초고속 성장, 베이징올림픽 등과 같은 화려한 수사로 장식하더라도 그 이면에는 ‘일당 독재’라는 중국 정치제도의 그늘이 있습니다. 언론은 당(黨)의 선전기관이며, 기자는 당의 선전일꾼이라는 뿌리 깊은 관념이 여전히 중국 관료들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비판에 대한 여유가 없는 그들에게 외국 언론사 기자는 늘 통제권 안에 두어야 하는 귀찮은 존재입니다. 취재용 펜 끝이 북한을 향하고 있는 기자에게는 더욱 촉각을 곤두세웁니다.

두만강에서 압록강까지 이어지는 북- 국경지역에서는 해마다 외국 기자들이 중국 변방대에 체포되고 있습니다. 북한의 진실은 중국당국도 보여주기 싫은가 봅니다. 북한의 진실이 밝혀질수록 자신들이 해명해야 할 정치도의적 책임도 커진다는 것을 자각하기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감시망 속에서 기자가 목표한 취재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첩보영화 주인공을 방불케 하는 자기통제력이 필요합니다. 취재 라인에 따라 서너 개의 핸드폰을 옆구리에 차고 다녀야 하며, 취재 동선(動線)이 파악되지 않도록 온갖 기지(機智)를 발휘해야 합니다. 또 중요한 취재원, 정보원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끝까지 긴장감을 늦추지 말아야 합니다. 기자가 잘못하면 그 사람이 ‘죽기’ 때문에 그 긴장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북-중국경 무대를 누벼야 하는 기자에게는 참기 힘든 슬픔과 분노도 찾아옵니다. 많고많은 사람을 만나야 하는 것이 기자의 직업이지만, 먹을 것 없어 두만강을 건넜다며 한국에 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탈북자에 고작 중국돈 100위안 짜리 하나 쥐어주며 말없이 돌아서고 나면 밝은 대낮에는 얼굴 들기가 무섭습니다.

중국 남성의 성(性) 노리개로 팔려 다니는 탈북 여성과 인터뷰가 끝나고 나면 어떤 말로 작별을 나눠야 할지 기가 막힙니다. ‘쓰고 싶은 기사는 다 썼으니 그냥 돌아서면 되는가?’ 라는 자책감이 가슴에 쌓여오면 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회의감마저 밀려옵니다.

어제 아침, 중국 선양 특파원으로 파견됐던 연합뉴스 조계창 기자가 중국 현지에서 순직했습니다. 연변 조선족자치주에 취재를 나갔다가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합니다. 조 기자가 마지막으로 한국에 송고한 기사는 “수출 길 막힌 북한산 대게…中서 헐값 세일(연합뉴스 12월 2일자)”입니다. 중국 변방의 한 재래시장에서 북한산 대게 가격 하나로 이런 팩트를 잡아낼 수 있다는 것은 그가 진정 발로 뛰는 기자였음을 새삼 느끼게 합니다.

조 기자는 대한민국 언론사 중에서 최초로 ‘동북3성 특파원’을 자청했던 기자였습니다. 정말 성실하고 유능한 기자였습니다. 아마도 조 기자에게는 핵, 식량난, 인권유린, 독재와 같이 어둡고 우울한 뉴스가 아니라 북한 주민들도 활짝 웃고, 세계 사람들도 활짝 웃는 그런 낭보(朗報)를 최초로 타전하고 싶은 꿈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쉽게도 그 꿈의 주인공이 되지는 못했습니다만, 북한이라고 하는 거대한 철옹성 안에 감춰진 ‘진실’을 찾기 위해 분투했던 그의 기자정신은 수많은 동료, 후배 기자들에게 큰 도전정신을 일깨워주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조계창 기자!
데일리NK와도 오랜 인연을 맺어온 조 기자의 이름은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 북한 땅에 진정한 인권, 자유, 민주의 그 날이 오면 그의 이름은 2천3백만 북한 주민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될 것입니다.

고인의 안식과 유가족의 평화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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