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족사를 통해 본 북한, 그리고 김정일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북한의 최고(유일) 권력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아내는 성혜림, 김영숙, 고영희 등 세 명이다. 이 중 성혜림은 북한의 유명한 영화배우였으며, 작가 이기영의 맏며느리로 시집갔다가, 나중에 김정일의 눈에 띄어 김일성 몰래 동거해 온 김정일의 첫 부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얼마 전 일본 나리타공항에서 도미니카 여권을 소지한 채 밀입국하려다 체포되어 추방된 김정남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오늘 소개할 책 [등나무집]을 쓴 성혜랑은 성혜림의 언니이다. 현재 65세인 성혜랑은 지난 96년 딸 이남옥과 함께 망명하여 지금은 유럽의 어느 나라라고만 언급되는 곳에서 그곳 정부의 보호를 받으며 살고 있다. [등나무집]은 성혜랑이 망명 생활 중 틈틈이 쓴 수기로, 자기 집안의 내력과 자신의 일생, 그리고 김정남의 가정교사 격으로 김정일 관저(官邸)에 머물면서 보고 겪은 일들, 망명 과정들을 기록하고 있다.

성혜랑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다. 이일남 _ 이것은 그녀가 자식에게 지어준 진짜 이름이지만, 남한에서 이한영이 되었다. 이한영은 이미 1982년에 대한민국으로 넘어와 살다가, 뒤늦게 자신의 신분을 공개하고, 김정일과 가족, 측근들의 생활을 적나라하게 담은 책 [대동강 로열패밀리 서울잠행 14년](동아일보사)을 써 화제를 모았다. 성혜랑은 이 아들을 만나기 위해 망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한영이 97년 2월 15일 집을 나서다 신원불명의 괴한들의 총에 살해되어, 모자(母子)는 끝내 살아서는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

[등나무집]은 총 4편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이 중 1편은 성혜랑의 어머니인 김원주의 수기이다. 김원주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악착같이 공부를 해 일제시대 최고의 엘리트 과정이라 할 수 있는 동경 유학까지 마친 입지전(立志傳)적인 인물이다. 해방 후에는 좌익진영에 가담, 1948년 남북연석회의에 조선부녀총동맹의 남쪽대표단 일행으로 참가하였으며 1950년대 노동신문의 유일한 여성 편집원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딸 혜림이 김정남을 낳자 김정일 관저에 들어가 안살림을 맡아보며 지내다 그곳에서 운명했다.

김원주의 남편인 성유경도 참 파란 많은 인생을 살다간 사람이다. 그는 경상남도에서 부자, 양반집안으로 이름난 창녕 성씨집안의 4대 독자로 태어나 엄격한 유교적 분위기 속에 부족함 없이 자라다, 도쿄에서 우연히 일본의 사회주의자 다카스 세이토의 연설을 듣고 반해 사회주의자가 되었다. 해방 후 갖고 있던 땅을 소작인들에게 모두 나누어주었고, 전쟁 중 월북(越北)하였다. 그러나 남조선 출신, 게다가 지주집안 출신이라는 성분(成分)상 약점에다 직설적인 성격 탓에 늘 궂은 일, 한직(閒職)만 전전하다 82년에 사망하였다 한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딸이 김정일과 결혼하였는지, 자신에게 외손주가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가족의 오늘을 정리해 보자. 성혜랑과 이남옥은 남북(南北) 모두로부터 상처를 입고 도피 아닌 도피 생활을 하고 있다. 이한영은 누군가에 의해 죽었다. 성혜림은 러시아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망명했다는 보도가 있긴 했지만 여전히 북한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원주는 김정일 관저에 구속되다시피 갇혀 외손주를 키우는데 인생말년을 고스란히 바쳤고, 성유경은 쓸쓸히 눈을 감았다.

밀실에서 자란 김정남은 이제 장성하여 조선콤퓨터위원장이라는 직함을 갖고 세계 각 국을 몰래 다니며 무슨 사업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덧붙여 성혜랑에게는 한국전쟁 중 인민군으로 참전하였다가 소식이 끊긴, 가족들은 모두 죽은 줄로만 알던 오빠(성일기)가 하나 있는데 그는 지금 서울에 살고 있다. 참으로 기구한 가족사(家族史)이다.

The DailyNK 기획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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