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바람처럼 오는 통일’을 기대하십니까?

…1989년 11월 9일, 20년 전 오늘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었다. 이어서 동유럽 민주화 도미노가 시작되었다. 1991년 구소련이 해체되었다. 고르바초프 공산당 서기장은 소련공산당 해체를 선언했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70여년의 공산주의도 막을 내린 것이다. 이같은 역사적 대변혁은 불과 2년 사이에 전개되었다.


동독은 공산주의 소련 위성국가 중에서도 다른 나라에 비해 모범생이었다. 그럼에도 공산주의는 붕괴될 수밖에 없는 내적 요인이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이론과 학설이 있다. 공산주의 종주국은 소련이다. 소련 공산주의가 실패한 것은 여러 배경이 있다.


첫째, 사회주의 경제건설에 실패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생산이 떨어지고, 물자는 모자라고, 빈곤은 늘고, 국가재정은 적자에 허덕였다. 초기 사회주의가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일을 해야 할 ‘이유’를 모르고, 마르크스주의 경제이론가들은 노동의 양과 질을 효과적으로 계량(計量)해내는 데 실패했다.


한마디로 공산주의 경제건설 이론에 맹점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설령 이론이 100% 맞는다고 가정해도 그 이론을 현실에 적용시키면 잘못되는 경우가 허다한데, 어떤 이론이든 100% 맞을 수도 없고, 또 마르크스주의 유물사관 자체가 한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입각한 경제건설 이론이라는 것이 관념적으로 흐를 수 밖에 없는 요인이 있었던 것이다.


둘째, 정치 관리에서 실패했다. 당의 관료주의와 기득권자들은 비밀경찰의 감시와 통제로 사람들을 잘 ‘교양’하면 공산주의 사회로 순조롭게 진보할 수 있을 것으로 착각했다. 그러나 당 관료주의는 사람들을 갈수록 위축시켰고, 개인의 창의성을 키우기는커녕 갈수록 사회의 아웃사이더로 만들었다. 사회의 주인은 ‘인민대중’이 아니라, 놀고 먹는 당 간부, 비밀경찰 등이었다.


그런 사회가 망하지 않으면 이상한 것이다.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의 오류를 따질 것도 없이, 중국 역사 5천년 동안 사람들이 살아온 모습을 대강 보면, 지배계층이 잘못되었는데도 사회가 잘 되는 경우는 한번도 없었다. 무슨 이론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이 어떻게 정치 경제 사회문화적으로 사회를 잘 관리하면서 살아갈 것이냐 하는, ‘사회관리 방식’의 각도에서 바라 보면 소련 공산주의 실패의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셋째, 대외관계에서 실패했다. 스탈린 시기부터 소련공산주의는 군사주의 노선을 숭상했다. 경제분야에 집중해야 할 자원을 군사분야에 계속 투여했다. 미국을 비롯한 이른바 ‘제국주의’와의 체제 경쟁에서 자기 나라 사람들을 더 잘 살게 하는 방식을 통해 경쟁에서 이기려 하지 않고, 군사분야에서 우위를 계속 점하려고 했다.


군비경쟁은 경제분야에서 우위를 점해야 유리하다. 하지만 계획경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경제발전의 기본 추동력에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방식보다 뒤지는데, 경제가 뒷받침 되지 않는 조건에서 군사분야를 키우려고 하니, 전체적으로 국가의 힘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바로 그 스탈린의 최후의 똘마니가 ‘위대하신 21세기의 태양 김정일’과 그의 ‘선군사상’이다. 선군사상은 공산주의의 여러 사이비 파생 이론 중에서도 가장 말종(末種)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설사 소련공산주의가 위 세가지 요인들을 잘 극복하고 사회관리를 그런대로 해왔다고 하더라도, 공산주의는 성공하기 어렵다. 왜? 인간 자체에 대한 규명을 잘못했기 때문이다. 유물사관은 인간에 대한 우선적 고려가 배제되어 있다. 따라서 공산주의는 망할 수밖에 없었고, 또 앞으로 공산주의가 역사 무대에 재등장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소련공산주의는 인류에 많은 패악을 남겼다. 무엇보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공산주의 계급투쟁 때문에 억울하게 죽었다. 그 계급투쟁은 ‘수령결사옹위’ 방식으로 변하여 지금 이 순간에도 북한에 통제구역(정치범수용소) 형태로 남아있다. 그 수용소가 바로 공산주의의 화석(化石)이다.


베를린 장벽 붕괴 20주년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것은, 내부적으로는 이미 망했고 붕괴의 시점과 형태만 남겨둔 북한 정권을 앞으로 대한민국이 어떻게 잘 관리할 것이며,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독일통일의 과정에서 우리가 참고할 것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서독은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의 통일 원칙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유지, 미국의 지원이 결정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동서독의 통일은 성공했다. 하지만 천문학적인 통일비용 문제와 동서독 주민들 사회적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이른바 ‘오씨'(Ossie), ‘베시'(Wessie) 등의 주민간 갈등이 있었다. 아마도 한반도 통일의 과정에서, 적어도 남북간 문제에 관한 한 위 두 가지가 중요하게 대두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한반도의 통일을 목표로 하여, 독일 통일과정에서 빚어진 여러 장단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또 한반도 통일은 독일 통일과 비교해서 공통성과 함께 차이성이 있다는 점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독일 통일은 미국과 구소련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 한반도 통일은 중국의 힘이 크게 작용할 것이다. 구소련은 국가의 힘이 떨어지는 과정에서 독일이 통일되었고, 한반도 주변의 중국은 미국과 함께 세계 2강(G2)이 되어 있다. 국가의 힘이 계속 상승하는 시기에 있는 것이다. 또 한반도는 일본과 러시아가 일정한 영향이 있는 지역이다. 세계 4강에 둘러싸인 유일한 지역이 한반도다. 그래서 우리는 정보력, 외교력, 세계화 능력 등에서 앞으로 할일이 많고도 많은 것이다. 


독일 통일은 어느날 갑자기 들이닥쳤다. 서독 정부는 동독이 갑자기 망할 것으로 보지 못했다. 반면 우리는 북한이 망할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여기에서 독일통일의 과정과 앞으로 진행될 한반도 통일의 과정에서 큰 차이를 보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어느날 들이닥치는 통일’을 맞지 않고, 미리 준비되고 이성(理性)주의와 합리주의에 기초한, ‘예측 가능한 통일’을 준비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 “통일은 어느 순간, 바람처럼 올 것”이라는, 감상적이고 ‘팔짱 낀 태도’에서 벗어나야 할 때가 되었다.


우리가 능동적으로 만들어가는 통일, 그 출발은 북한 정권을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와의 국제 협력 하에 평화적으로 교체해주고 개방정부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북한 주민들을 ‘수령의 노예’에서 먼저 정권의 주인으로 만들어주는 것, 그것이 평화적이며 합리적인 한반도 통일로 가는 데서 첫단추를 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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