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저 히스, 송두율 그리고 DJ와 김정일

한 권의 책이 눈에 띈다. 중앙대 이상돈 교수(법학)가 펴낸 <세계의 트렌드를 읽는 100권의 책>(기파랑)이다.

역사책 읽기를 좋아하는 이 교수가 최근 6년 동안 읽은 양서(良書)들을 골라 일간지 등에 기고한 서평을 묶었다. 특히 20세기 중반 이후 미국 정치의 흐름을 조망하기 좋은 책들을 엄선한 것이 저자의 눈썰미를 짐작케 한다.

책 뒷부분에 실린 ‘조지프 매카시’ 편과 ‘앨저 히스’ 편을 읽다보면 미국에서 무려 반세기 동안 진행됐던 ‘진실 게임’이 눈에 들어온다.

미국의 상원의원이었던 조지프 매카시(1908~1957)는 우리에게 ‘매카시즘’(McCartyism)으로 익숙한 이름이다. 매카시즘은 멀쩡한 사람을 공산주의자로 몰아붙이는 음모적 수법을 통칭하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 때문에 매카시에 대한 이미지는 ‘과격 선동꾼’ 쯤으로 오랫동안 우리의 뇌리에 자리잡아 왔다.

‘쓸모있는 바보들’의 원조, 래티모어

‘매카시 선풍’은 1950년 2월 매카시가 상원에서 장장 6시간동안 연설하면서 “81명의 공산주의자와 위험인물 명단을 갖고 있다”고 폭로하면서 시작됐다. 매카시가 소련간첩으로 지목한 인물 중에는 앨저 히스, 래티모어 등 국무부의 쟁쟁한 고위관리와 유명한 학자들이 포함돼 미국사회를 경악시켰다.

매카시의 폭탄발언이 있자 당시 다수당이었던 민주당은 매카시의 폭로가 ‘거짓말’임을 밝히기 위해 위원회를 구성했다. 하지만 위원회가 구성되자 매카시는 존스홉킨스 대학 교수로 미국의 아시아 정책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던 래티모어가 소련 스파이망의 대장이라고 폭로하는 등 공세를 취했다.

래티모어는 1944년 여름 소련정부가 시베리아 정치범 수용소에 대한 미국 조사단의 방문을 허용할 당시 조사단장을 맡은 인물이었다. 소련정부는 사전에 수용소를 새로 단장하는 등 완전히 한편의 연극처럼 꾸며 래티모어에게 보여주었다.

귀국한 래티모어는 수감자들의 생활이 아주 훌륭하다며 칭찬하는 글까지 썼다. 이 때문에 훗날 래티모어는 레닌이 말한 ‘쓸모있는 바보들’(useful idiots)중 ‘대표 바보’로 꼽혔다. 그는 또 한국은 소련의 통치하에 들어가는 것이 좋다고 말한 인물이기도 하다. 비록 당시의 미국은 2차 대전이 종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동맹국인 소련의 도움이 필요한 측면도 있었겠지만, 래티모어가 ‘진실’을 말하지 않은 것은 이후 미국의 대(對)소련 정책에 적지 않은 후과(後果)를 가져온다.

한편, 매카시는 국무부 차관보를 지낸 앨저 히스도 오랫동안 간첩이었음에도 국무부가 그를 비호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앨저 히스에 관한 ‘진실 게임’은 매카시가 사망하고도 무려 38년이 지난 1995년, 소련의 기밀 ‘베노나 문서’가 공개되면서 그가 소련간첩이었음이 입증됨으로써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는데, 그 일련의 과정이 현재 우리사회와 남북관계에 비추어 시사하는 바 적지 않다.

히스의 ‘진실 게임’과 좌파 논객들

1930년대 변호사 단체 국제법률가협회에서 활동하면서 사회주의 운동에 뛰어든 히스는 미국 공산당 당원이었던 리 프레스먼, 해롤드 웨어 그리고 아내 프레실리아에 이끌려 소련 간첩이 되어, 역시 간첩이었던 휘태커 챔버스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소련이 나치 독일과 불가침 협정을 체결하자 챔버스는 소련과의 관계를 끊어버리고 반공주의자로 변신하면서 1938년 히스를 간첩으로 고발했다.

히스를 둘러싼 ‘진실 게임’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1945년 워싱턴의 KGB 조직을 운영하던 엘리자베스 벤틀리가 FBI에 자수하면서 히스에 대한 자료를 넘겨주어 히스는 간첩혐의로 조사받게 되었다. 챔버스의 고발이 있은 후 7년이 흐른 시점이었다. 그러나 히스는 소련으로 도망가지 않고 모교인 존스홉킨스대와 하버드대의 인맥을 활용하면서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는 쪽으로 대응했다.

국무장관을 지낸 딘 애치슨 등의 도움으로 히스에 대한 조사는 느리게 진행됐다. 48년 12월 대배심이 고발자 챔버스를 심문하면서 자신이 도리어 죄인 취급을 받게된 데 상심한 챔버스는 자살을 기도했다. 이 무렵 FBI 에드가 후버 국장은 히스가 간첩이었음을 확신하게 되었고, 이 첩보를 매카시에게 넘겨주면서 이른바 ‘매카시 선풍’이 시작된 것이다.

뒤를 이어 FBI는 히스가 국무부 자료를 소련으로 넘겨줄 때 사용한 타이프라이터를 찾아내 검찰에 넘겨주면서 히스는 위증죄로 유죄판결을 받아 5년간 수감됐다. 그러나 출옥한 히스는 자신이 음모에 희생된 사람처럼 행동하면서 ‘명예회복’에 나섰다. 때를 맞춰 좌파 지식인들은 증거물인 타이프라이터에 의구심을 나타내면서 “FBI는 히스의 타이프라이터와 똑같은 것을 위조할 수 있으며, CIA는 히스를 반공 희생양으로 삼았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좌파 논객들은 평론지 ‘더 네이션’(The Nation)을 중심으로 히스의 명예회복을 위해 나섰다.

반세기만에 막내린 ‘진실 게임’

1960년대에 들어서자 미국과 유럽에서 신좌파(New Left) 열풍이 불었다. 반전(反戰), 반체제, 반권위를 내세워 베트남 전쟁 반대를 매개로 좌파세력이 크게 성장했다. 히스는 본격적으로 강연을 다니며 자신은 ‘반공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이었다고 주장했고, 베트남 전쟁 실패를 경험한 청중들은 히스를 ‘성스러운 희생자’로 보았다. 미국민권협회는 안보사건에서 위증한 사람의 연금을 박탈한 ‘히스 법’을 법원에 제소, 위헌판결을 받아냈다.

57년 매카시, 61년 고발자 챔버스가 잇따라 사망하고 하원 의원 시절 히스를 몰아부쳤던 닉슨 대통령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몰락하자, 70년대 들어 히스의 ‘명예’는 거의 회복되는 듯했다. 75년 변호사 자격까지 회복한 히스는 한걸음 더 나아가 아들의 이름으로 자신과 가족 이야기를 담은 책 ‘드디어 웃다!’(Laughing Last!)를 77년에 펴냈다. 이 책에서 히스는 아내 프레실리아의 공산주의 활동을 언급하면서 간첩동지였던 아내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고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그러나 ‘진실 게임’은 계속 됐다. 78년 30대의 젊은 역사학자 앨런 와인스타인은 정보공개법에 따라 FBI 파일을 비롯하여 5만 페이지 분량의 정부문서를 열람하고 관련 인사들을 인터뷰하여 쓴 책 ‘위증’(Perjury)를 출판하면서 “히스는 간첩이며 위증한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이 책이 나오자 좌파 평론가들은 와인스타인을 집중 공격했다.

81년 레이건 정부가 들어선 이후 히스는 자신에 대한 위증죄 판결을 뒤집기 위해 재심을 청구하여 대법원까지 올라갔으나 끝내 기각됐다. 그러나 히스는 88년 회고록 ‘삶의 기억’을 출판하면서 닉슨, 후버, 챔버스를 ‘불신성한 삼위일체’(Unholy Trinity)라고 비난하면서 진실 게임을 계속 했다.

레이건 정부 이후 미국의 대소련 정책은 완전히 바뀌었다. 그 결과 90년대 들어 구소련 체제는 붕괴되었다. 소련붕괴와 함께 구소련의 기밀문서들이 대거 공개되었다. 95년 미국정부는 구소련 국방정보국(GRU)이 1942년~46년까지 미국과 무선으로 교신한 문서를 해독한 ‘베노나 프로젝트’ 문서를 공개했다. 이 문서를 통해 ‘알레스’(Ales)란 암호명이 히스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반세기만의 ‘진실 게임’이 마침내 막을 내린 것이다.

송두율과 DJ

히스는 96년 11월, 92세로 사망했다. 히스의 죽음을 두고 ‘워싱턴 포스트’는 “히스의 추종자들은 자신들의 ‘진보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순교자’를 추종함으로써 그들 스스로를 지적 타락으로 끌고 내려갔으며, 이로 인해 미국 좌파의 도덕적 파산을 앞당겼다”는 평론을 실었다.

근 50년에 걸친 이 ‘진실 게임’의 흐름을 보고 있노라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한편의 거대한 연극이 눈앞에 전개되는 듯하다. 그러면서 한 사람이 떠오른다. 재독(在獨) 학자 송두율씨다. 2003년 일시 입국했다가 다시 독일로 돌아가는 것으로 그와 관련한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사건’은 일시 마무리됐다. 국정원이 검찰에 제출한 각종 증거도 ‘증거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채택되지 못했다.

그러나 송씨에 대한 진실 게임이 마무리된 것이 아니다. 언젠가는 송씨 사건도 진실이 밝혀질 것이다. 중요한 점은 송씨를 변호한 사람들의 말이나 논리가 아니라 ‘사실관계’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이상돈 교수는 ‘앨저 히스’ 편 말미에 이렇게 썼다.

‘돌이켜 보면 히스를 옹호한 좌파의 논리는 백화점의 회전문 같은 것이었다. 한 좌파가 다른 좌파의 글을 인용하고 그러면 또 다른 좌파가 그 글을 인용하는 식이다. 백화점 회전문 속에 갇혀 있는 사람들은 영원히 뱅뱅 돌고 있을 뿐이다. 그러한 좌파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엄연한 사실(hard facts)이다. 오직 사실만이 회전문을 부술 수 있는 것이다.’

남북관계도 이와 비슷하다. 탈북자, 납북자, 핵무기, 위조지폐, 마약, 정치범 수용소, 개성공단 등등은 실체가 있는 것이고, 남북간의 합의문, 공동성명, 선언 등등은 그 내용이 현실로 구현되기 전까지는 실체가 없는 것이다. DJ 정부 이후 남북관계에서 실체보다는 되지도 않는 말이 훨씬 많았다. 24일 제 18차 남북장관급 회담 합의문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 ‘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오는 6월 DJ의 방북이 성사되면 또 한번 ‘괴상한’ 말들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정부의 수준보다 국민들의 수준이 훨씬 높아진 것이 분명한 만큼 DJ-김정일 간의 말장난도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이 지난 8년간 남북관계의 업보이기 때문이다.

결국 말과 실체를 구분해내는 국민들에 의해 6월 DJ 방북을 계기로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남북관계 대선 이슈화 의도도 그 몸통이 드러날 것이고, 이후부터는 내리막길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DJ의 방북을 굳이 반대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어차피 되는 일 없이 DJ의 노추(老醜)만 더 부각될 테니까…

손광주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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