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끊는 망부가…北남편 찾는 루마니아 마르초유 할머니

▲ 미르초유 할머니의 가족사진(좌)과 레나테 홍 할머니의 가족사진

40여년 전 헤어졌던 북한의 남편을 기다리는 독일의 레나테 홍(69) 할머니의 사연이 화제를 모으며, 지난 3월 데일리NK를 통해 소개됐던 루마니아의 미르초유(72) 할머니도 다시금 관심을 받고 있다.

독일의 홍 할머니는 옛 동독에 유학 왔던 북한 대학생과 결혼했지만, 베를린 장벽이 건설되던 61년 남편이 북한으로 강제송환 되어 43년간 헤어져 살아야 했다. 홍 할머니는 혼자서 두 아들을 키우며 남편과 다시 만날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루마니아의 죠르제따 미르초유(Georgeta Mircioju) 할머니의 경우 한국전쟁 시기 동유럽 국가로 보내진 고아들을 인솔하고 온 북한의 교사와 사랑에 빠졌다.

당시 사범대학을 갓 졸업하고 북한의 전쟁고아 위탁교육 시설인 시레트 조선인민학교 미술교사로 부임한 그녀는 남편 조정호씨와 남몰래 사랑을 꽃피웠다. 두 사람은 5년간의 열애 끝에 양국의 허락으로 결혼식까지 올리게 됐다.

전쟁이 끝나고 평양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던 부부는 두 살배기 딸 미란이 중병에 걸리며 안타까운 이별을 겪게된다. 치료차 아이와 함께 루마니아로 건너간 미르초유 할머니는 아이가 건강해지면 북한에 돌아가려고 했지만 루마니아 주재 북한 대사관에서 입국 비자를 발급해주지 않았다.

그 후 남편의 남동생을 통해 편지라도 주고받을 수 있었지만, 남편이 탄광으로 끌려갔다는 편지를 끝으로 이마저도 끊기고 말았다.

미르초유 할머니는 남편을 만나게 해달라는 간곡한 편지와 사진을 북한 당국 뿐 아니라 국제 적십자사나 엠네스티인터내셔널 등에 수도 없이 보냈다.

▲ 40여년간 남편을 기다려온 미르초유 할머니. 할머니가 평생 빼지 않았던 결혼반지

할머니는 또 남편의 소식을 듣기위해 거의 매달 북한 대사관을 찾아갔다. 남편이 살아있다면 만나게 해달라, 남편이 죽었다면 유골이라도 확인하게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북한 대사관 측에 끊임없이 요구했다.

그러나 대사관으로는 매번 사망, 소재파악 불과, 생존, 사망 등의 불분명한 답변만 들었다.

안 쪽에 ‘1957년 정호’라고 새겨진 결혼반지를 지금껏 한 번도 손가락에서 뺀 적이 없다는 할머니는 “내 눈으로 확인하기 전에는 남편의 죽음을 믿을 수 없다”면서 아직도 재회의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할머니는 데일리NK에 보낸 육성편지를 통해 남편을 찾는다는 애절한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언제 다시 남편을 만나게 될 줄 몰라 한글 공부를 계속 해왔다는 할머니는 떠듬거리는 한국어로 남편에 대한 진한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다. ▶ 육성메시지 듣기

1950~1960년대 한국전쟁 직후 동유럽으로 대규모 유학생과 근로자들을 파견했던 북한은 동구에서 서구로 탈출하는 사람이 늘자, 이들을 강제송환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에는 이른바 ‘수정주의’ 청산의 기치를 내걸고 외국인과 결혼한 주민들을 강제로 이혼시켰다.

북한 당국의 이같은 정책으로 인해 홍 할머니나 미르초유 할머니처럼 사랑하는 가족과 하루아침에 생이별을 겪었을 피해자들이 상당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홍 할머니 이야기를 접한 정치권과 대한적십자사 등은 할머니가 남편과 재회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한완상 대한적십자사 총재는 독일 적십자 총재에 보낸 특별서신을 통해 남북 적십자 회담이 재개되면 레나테 홍씨를 도울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보겠다고 밝혔다.

한적측은 “이 문제는 실제로 독일과 북한간의 문제라 우리가 직접 개입할 것은 아니지만 언론에서 다뤄졌기 때문에 상징적 의미로 서신을 보낸 것”이라며 루마니아 할머니 건도 “조사 해 본 후에 추후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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