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목사 생존 기원]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과거, 아니 지금도, 운동권 집회에서 애국가를 대신해 부르는 노래입니다. 제목은 ‘임을 위한 행진곡’. 열린우리당 소속 국회의원 당선자들이 대통령과 함께, 의회 다수당이 된 것을 축하하는 청와대 만찬장에서 기쁨에 겨워 주먹을 움켜쥐고 불렀던 노래라지요.

학생운동을 하던 당시에 저는 이 노래의 가사 가운데 ‘이름도 남김없이’라는 표현이 참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민주화운동의 과정에서 이름 날렸던 운동권으로 이제는 금배지를 단 분들도 계시지만 정작 민주화의 영광은 ‘이름도 남김없이’ 조용히 열정을 불살랐던 분들에게 돌려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프리 박 목사의 안타까운 실종소식에 접하면서 다시 한번 저는 ‘이름도 남김없이’ 살고 있는 분들을 생각합니다.

박목사 실종, 한국정부 책임져야

제프리 박 목사는 지난 1월 초 탈북자들과 함께 메콩강을 건너다 실종되었습니다. <두리하나선교회>는 제프리 박 목사와 함께 강을 건넜던 탈북자들의 증언을 공개하면서 그분의 마지막 모습을 전했습니다.

일행 중 한 명이 강을 건너다 떠내려가자, 구출하기 위해 뛰어드셨다가 그 후로는 얼굴을 뵐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실낱 같은 희망 하나 버리고 싶진 않지만, 평소 수영이 미숙하셨으니 하늘나라에 계실 것이라며 주위 분들은 침통한 표정을 짓습니다.

한국행을 원하는 탈북자들을 인솔하고 제프리 박 목사는 중국에서 미얀마로 건너갔습니다. 미얀마에 있는 한국대사관을 찾아갔으나 받아주지 않자 그들은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태국에서는 탈북자들을 수용해주기 때문에 태국으로 가기 위해, 제프리 박 목사는 미얀마에서 라오스로, 그리고 라오스에서 태국으로 가기 위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미얀마에서 라오스로 가기 위해 메콩강을 건너던 중 제프리 박 목사는 그런 변을 당하셨습니다.

라오스로 건너갔던 탈북자들은 인솔자를 잃자 미얀마로 갔고, 제프리 박 목사의 실종소식이 알려지고 나서야 미얀마 주재 한국대사관은 탈북자들을 받아들였습니다.

처음에 미얀마 주재 한국대사관에서 탈북자 일행을 받아주기만 했어도, 제프리 박 목사는 그런 무모한 모험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이제와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면 뭐하냐고 탓하실 분들도 계시겠지만, 제프리 박 목사가 돌아가셨다면 ‘살인방조자’는 바로 한국정부입니다.

지구 반바퀴를 떠도는 탈북자들

중국땅을 유랑하는 탈북자들을 한국정부가 앞장서 찾아내 안전하게 보호해 달라고 바라지도 않습니다. 수천 킬로미터를 목숨 걸고 이동해서 제3국의 한국대사관의 문을 두드리는데도 쫓아내는 사람들…….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는지 저는 그 낯짝을 한번 구경하고 싶습니다.

물론, 한국대사관의 직원들이 그러고 싶어서 그러겠습니까. 한국 모 기관의 푹신한 소파에 앉아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지시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렇겠지요.

아무튼 그렇게 해서 베트남에서 받지 않고, 미얀마에서도 받지 않으니, 이제 탈북자들은 베트남에서 캄보디아, 라오스, 태국 등 몇 개의 국경을 넘나들며 지구를 반 바퀴 이상 돌아 한국으로 오고 있습니다.

한국정부는 탈북자들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브로커를 단속한다는 빛좋은 명분을 내걸었지만, 그들의 이런 ‘탈북자 입국제한정책’으로 인해 오히려 브로커에 의지하지 않으면 절대로 한국에 갈 수 없는 구조가 고착되었고, 이름 없이 활동하는 NGO 활동가들은 ‘새로운 길’을 뚫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제프리 박처럼 사선(死線)을 넘고 있습니다.

죽음에 이르게 한 자들, 죄값 치를 것

제프리 박 목사의 실종은 언론에 알려졌지만, 자유를 찾겠다고 스스로 열대밀림을 헤치다 이름 없이 죽어간 탈북자들은 또 얼마나 많겠습니까.

‘임을 위한 행진곡’은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는 비장한 선동의 말로 끝납니다. 제프리 박 목사님이 돌아가셨다면, 저는 지금 그의 영혼이 구천을 떠돌며 외치고 있을 구호소리가 무엇인지 분명히 들을 수 있습니다.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한국정부가 아무리 막아선대도 살아남은 자가 죽은 자의 뒤를 따를 것입니다. 그의 빈자리를 우리가 분명히 채울 것입니다. 조용히 눈물 삼키고 산 자의 의무를 되새기며 두 주먹을 불끈 쥡니다. 제프리 박 목사를 죽음에 이르게 한 무리들은 언젠가 그 죄값을 분명히 치르게 될 것입니다.

곽대중 기자 big@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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