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999년 북한을 탈출해 10년만에 한국에 입국한 탈북화가 강진명 씨가 탈북 후 백두산에 숨어지내던 시절 마주친 호랑이를 그린 ‘산신령’이라는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데일리NK |
평양에서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인민무력부 현역 창작가와 대학 교원(교수)으로 활동했던 탈북화가 강진명(57) 씨가 생애 첫 개인전을 열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1일부터 12일까지 서울 인사동에 위치한 ‘서울미술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번 전시는 그동안 강 작가의 작품 활동을 눈여겨 본 미술관 측이 대관료 등을 후원한 기획 초대전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함경북도 무산 출신인 강 작가는 1999년 북한을 탈출해 지난 2008년에서야 한국에 입국했다. 기나긴 외국 망명생활을 접고 ‘자유’를 찾아 한국에 들어온 그를 만나기 위해 ‘데일리NK’가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미술관을 찾았다.
그의 이번 전시회 주제는 ‘꿈에 그리던 자유를 찾아’이다. 그 이유에 대해 강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 이하의 삶, 즉 인권이 박탈된 세상에서 나왔습니다. 전 자유가 무척 그리웠고 그 자유를 찾아오는 것이 순탄치 않았습니다. 2시간이면 올 수 있는 거리를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어요. 그 과정에서 죽는 사람도 많이 봤습니다. 돌이켜 보면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강 작가의 이런 생각은 그의 작품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특히 두눈을 부릅뜬 호랑이가 그려져 있는 ‘산신령’(유화)이라는 작품은 그가 탈북 후 백두산 어느 기슭에서 호랑이와 마주쳤던 등골이 오싹했던 기억을 더듬어 캔버스에 담아냈다. 또한 ‘자유의 파도’(유화)라는 작품은 그가 정말 ‘자유 의지’를 얼마나 갈망했는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가슴 절절이 느껴지게 했다.
전시회 작품 도록(圖錄)에는 ‘자유의 파도’라는 작품 사진 옆에 이러한 시(時)가 적혀 있다.
“쏴~처얼썩!/ 암반을 부수며 산악 같은 파도가/ 분수령을 이룬다/ 창공에 치솟아 은구슬 금구슬/ 대양에 하얗게 뿌리고 도도히 밀려온다/ 죽음을 각오한 나폴레옹의 병사들 마냥/ (중간 생략)/ 폐쇄의 공간에서 가쁜 숨만 쉬던 내 가슴에/ 수십 년 닫혀있던 철문을 부수고/ 악몽의 근원을 뽑아 버리고 달려간다/ 노도로 밀려드는 그 파도가/ 자유의 대양에 마음을 싣고/ 마음껏 가보라고 부른다/ 자유의 파도가”
그는 예술가에게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에 대해 지난 78년 납북됐다가 86년 탈북한 신상옥 감독을 예로 들며 설명했다. 신 감독은 8년 2개월 동안 북한에 머물면서 7편의 영화를 직접 연출하고 13편의 제작을 지도했기 때문에 북한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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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작가가 한국에 들어와 한국 미술을 보면서 처음 느낀 것도 바로 창작의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감동이었다.
한국 예술가들이 많은 장르를 개척했고 자신의 철학적 주관을 가지고 마음껏 주제를 선택하고 작품을 완성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매우 만족해했다. 그것이 바로 그가 목숨 걸고 이 자유의 땅을 찾은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의 일부 중견 작가들이 “북한의 그림은 볼 것이 없다”며 폄훼하는 것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은 듯했다. “북한에서 우리에게 처음으로 미술을 가르쳐준 사람들은 바로 남한 출신 작가들이에요. 결국 남과 북 미술계의 뿌리는 하나입니다. 너무 색안경을 끼고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해방 이후 자유를 지향했던 북한 출신의 미술가들은 38선을 넘어 남한으로 탈출했고, 반대로 남한에서 북한 사회주의 체제를 지지했던 미술가들은 월북을 택했다. 당시 유화가 김주경, 조각가 조규봉, 김정수 등이 월북해 평양미술대학의 전신인 평양미술전문학교를 세웠다.
강 작가의 창작 활동은 미술대학을 졸업한 뒤 인민무력부 창작단에 소속되어 주로 김일성, 김정일 부자(父子) 초상과 체제 선전용 그림을 그렸다. 북한에서 김 부자 초상화를 그리는 것은 화가들에게 있어 크나큰 영광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영광 뒤에는 웃지 못 할 해프닝들이 종종 발생한다는 게 그의 전언이다.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는 사진을 보고 그립니다. 하지만 작가들이 그림 그리는 것에 열중하다 보면 사진에 물감이 묻거나 바닥에 내려놓은 사진을 모르고 밟는 수가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실수를 아무도 못 보면 괜찮은데 옆에서 누구라도 본다면 바로 비판이 제기되고 관리소로 끌려가는 경우가 많아요.”
이처럼 억지로 김 부자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되는 자유의 땅에 서있지만 그의 작품 활동을 가로막고 있는 게 있다. 바로 간암이다. 그는 현재 간암진단을 선고 받았고 얼마 전엔 암세포가 폐로 전이된 것으로 판명됐다.
항암제 치료를 받으면서도 전시를 위해 밤낮으로 작품 활동에 매달려서인지 그의 얼굴은 매우 수척해 보였다. 그는 “통일이 될 때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작품 활동에 전념하고 싶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그는 “죽는 것은 두렵지 않아요. 죽는 순간까지 그림을 그리는 데 저의 남은 열정을 모두 쏟아 붓고 싶다”고 했다. “저의 그림을 통해 북한의 현실이 더 많이 알려지고, 전 세계 국민들이 북한의 현실을 알고 그들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커질 때까지 그림을 그릴 것”이라는 게 강 작가의 굳은 다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