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으로 떠난 탈북자 승철이 유언따라 만든 영화”

국내 입국 탈북자가 2만 명을 넘어선 지 오래다. 조금만 관심을 갖고 주변을 돌아보면 탈북자들은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 성공을 이룬 탈북자들도 왕왕 소개되기도 하지만 소수에 불과할 뿐 여전히 많은 탈북자들이 북쪽에 남은 가족을 걱정하며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편견에 맞서 살아가고 있다.


14일 개봉을 앞둔 ‘무산일기'(영화사 진진)에 등장하는 전승철은 실제 우리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탈북자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영화 속 주인공인 탈북자 전승철은 대형 트럭과 버스, 화물차가 무섭게 지나치는 차로 모퉁이에서 벽보와 전단지를 부착하는 게 직업이다. 전단과 벽보를 붙이는 일이 그나마 입에 풀칠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무산일기’의 박정범 감독은 이 영화에서 전승철을 직접 연기했다. 실제 이 영화의 모델이 된 탈북자는 위암으로 사망했다.


희망이라는 부푼 기대감을 안고 한국으로 내려온 전승철의 눈을 통해 한국사회의 차가운 일면을 영화에 담아냈다. 박 감독은 영화를 통해 전승철을 직접 체험했다.


박정범 감독은 “서울은 화려한 곳이지만 조금만 안으로 들어가 보면 어려운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다. 영화는 탈북자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사회속의 소외계층들의 이야기”라고 영화를 소개한다. 박 감독은 이 영화가 탈북자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사람들이 한국사회에서 적응하기 힘든 탈북자들과 소외된 사람들을 배려하고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고 박 감독은 말했다.  









▲박정범 감독의 ‘무산일기’는 실제 박 감독과 친형제처럼 지냈던 탈북자 전승철씨를 모티브로 제작됐다. 박 감독은 영화에서 친 동생 같았던 전승철을 직접 연기했다./김봉섭 기자

박 감독의 첫 작품인 ‘무산일기’는 이미 영화계로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2010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상, 2010 마라케쉬국제영화제 대상, 2011 로테르담국제영화제 대상, 국제비평가협회상, 2011 도빌아시안영화제 심사위원상이 주어졌다.


부산국제영화제 심사위원이었던 배우 김윤진 씨는 “너무나도 다른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한 남자의 모든 것을 포기하는 잔혹하고 고달픈 이야기를 잘 담아냈다”고 평했다. 평론가들은 박 감독에 대해 ‘모처럼 괴물 같은 신인감독이 등장했다’ ‘한국 영화계의 주요 감독이 될 것이다’ 등의 찬사를 아까지 않았다.


이에대해 박 감독은 “이 영화는 과대평가 받는 부분이 있다”며 쑥스러워했다.


지난 5일 안국동 한 커피숍에서 만난 박 감독은 영화 속 전승철의 모습 그대로였다.


[다음은 박정범 감독과의 인터뷰 내용]


-‘무산일기’를 만들게 된 계기가 있다면?


전승철은 내 대학 후배였다. 같이 운동하고 술 먹으면서 3~4년 동안 내내 붙어 다녔다. 친동생이나 다름없었다. 그와 어울리면서 극빈층의 삶을 살고 있는 탈북자분들을 많이 접하게 됐다. 승철이와 그 친구들은 행복해지기 위해 한국으로 내려왔는데 한국에서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취업도 쉽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항상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승철이는 위암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그 후 이창동 감독의 ‘시’ 조감독을 하고 있을 때 승철이가 내게 보낸 싸이월드 쪽지를 봤다.


“형의 장편영화를 못보고 가서 미안해요. 형은 좋은 영화를 만들 것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만들려고 했던 그런 영화를 찍어주길 바랄게요” 승철이의 유언이 영화를 만들게 된 큰 계기가 된 것이다.


전승철씨와 함께 지내면서 다른 탈북자들을 많이 접해봤겠다.


승철이와 어울리다보니 탈북자들이 참여하는 ‘통일 축구단’ ‘한마음 축구단’ 창단식에도 같이 참가했다. 당시 KBS 라디오에서 축구단 취재를 왔는데 내가 탈북자인줄 알고 인터뷰를 요청했었다. 그 정도로 친밀하게 지냈다.


그분들을 만나면서 탈북자들의 생활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함께 술을 마시면서 브로커한테 사기당한 이야기, 가족들에게 송금한 이야기 등을 듣고 취업이 힘들다고 투정 섞인 하소연도 들었다. 그들은 한국 생활이 너무 힘들다 보니 난민자격으로 영국이나 미국으로 가고 싶다는 말도 했었다. 이런 대화가 영화 매 장면마다 녹아있는 것이다.


-만난 탈북자들이 극빈층의 삶을 살고 있다고 했는데.


내가 만난 사람들은 언론에 나오는 명망높은 탈북자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협동농장에서 일하다 내려오신 분들이라 특별한 기술도 없었다. 인터리어, 치위생사 등 하고 싶어 하는 것은 많았는데, 자격증을 따야 그런 직업을 가질 수 있으니 어려운 것은 당연했다. 생활 형편도 좋지 않았고. 그래서 지금은 모두 외국으로 이민갔다. 한 분은 주방에서 일을 시작해 주방장으로 승진했다고 좋아하신다.


-‘무산일기’가 한국사회에 잘 적응하고 있는 탈북자들에게 반감을 사지는 않을까.


연세대에는 탈북자 동아리가 있는데, 내가 이런 영화를 찍겠다고 하니 반감을 표현하시는 분들이 있었다. “탈북자에 대한 인식이 안 좋은데 왜 이런 영화를 찍어 찬물 끼얹나” “우리도 열심히 살려고 하는데 왜 그러냐” 등의 말씀을 하셨다.


하지만 나는 이 탈북자들이 모든 탈북자들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어려운 탈북자들과 소외된 사람들이 영화 속과 같은 일들을 겪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공론화 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승철이 또한 그런 삶을 살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의리’도 있었다.









▲박정범 감독의 ‘무산일기’는 실제 박 감독과 친형제처럼 지냈던 탈북자 전승철씨를 모티브로 제작됐다. 박 감독은 영화에서 친 동생 같았던 전승철을 직접 연기했다./김봉섭 기자

-실제 전승철 씨는 어떤 인물이었나?


쾌활하고 장난기 많고, 운동도 잘하는 그런 친구였다. 방학 기간에는 봉사활동도 했다. 학교 내 탈북자 동아리에서 회장을 했던 경력도 있다.


-영화 속 전승철은 상당히 어둡게 표현 됐는데.


탈북자들은 대부분 자존심이 센 편이다. 사경을 헤치고 한국으로 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스스로 능동적인 삶을 살고 싶어 한국으로 내려왔는데 정작 한국 사회에 정착해서는 아무도 거들 떠 보지 않는 일을 한다. 그러다보니 제대로 된 대접도 못 받는다. 그래서 상처받고 그런 일에 대해 성토한다. 그런 복합적인 탈북자들의 심정을 전승철을 통해 표현한 것이다.


-직접 주연까지 도맡은 이유가 있다면?


승철이는 밝고 쾌활하지만 슬픈 눈을 감추고 있었다. 나는 그 눈을 직접 본 사람이다. 그 눈을 가진 승철이를 직접 표현하고 싶었다. 나는 배우의 연기 연출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다른 배우로 하여금 내가 원하는 승철이의 모습을 표현하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승철이가 암투병 중일 때 나는 대학원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때 옆에 있어주지 못한 미안함에 직접 연기를 하는지도 모르겠다.


-‘무산일기’ 국내외 관심이 뜨겁다.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경력도 화려하다.


이 영화는 과대평가 받는 부분이 있다. 외국 영화제 관계자·기자들은 마지막 분단국인 한반도에서 그것도 탈북자를 소재로 하는 영화라는 이유로 이슈와 시키기 좋았을 것이다. 그 때문에 주목을 받은 것이지, 영화가 이렇게까지 유명해진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유럽 국가들은 ‘다민족주의의 실패’ ‘이주노동자의 문제’ 등과 결부시켜서 내 영화를 본 것 같다. 한 국제영화제에서 ‘무산일기’ 상영이 끝나자 백발의 한 노인이 내게 찾아와 “이건 내 이야기다. 너무 잘 봤다”고 말해줄 정도로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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