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벽 사이 총격 피해 적진 돌진후 수류탄을…”

1951년 9월의 하순이었다. 함병선(咸炳善) 준장의 제2사단은 주저항선 전방의 고지군을 탈환하기 위해 진현리와 방동 일대를 진격해나갔다. 진현리(榛峴里)-방동(芳洞)부근전투였다.


당시 제2사단은 미 제9군단의 중앙좌익을 맡아 6월 중순, 사목-승암리-785고지-457고지 선까지 약진한 후 군의 방침에 따라 3개월 동안 진군을 멈춘 채 방어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적은 이 기간을 이용해 전력강화에 총력을 기해 국부적인 공격행동을 자행했다. 전투의 시작이었다.


1951년 9월 21일 05시 40분, 장규백(張圭栢) 소령의 포병 제18대대를 비롯한 미 제9군단의 제92, 제213, 제937, 제555야포대대가 협동하여 일시에 포문을 열어 공격 준비사격을 개시했다. 이 사격으로 적근산 일원이 굉음과 함께 심하게 진동했다. 663고지-진현리-방동 일대의 적진은 불길과 초연에 싸여 새벽의 가을 하늘은 전운으로 가득했다.


공격 준비사격은 그 동안 적진이 계속 보강돼 미리 견고한 진지를 깨뜨린 후 속전속결하려는 기습전법의 일환이었다. 제32연대는 제1대대와 제3대대를 좌우 제대로 전개하여 734고지에서 모든 태세를 갖추고 있다가 포격이 끝날 무렵 연막탄 3발을 신호로 해, 일제히 공격을 감행하기로 했다.


약 20분간 가해진 공격 준비사격일 끝난 06시에 10분, 우현(禹鉉) 소령의 제1대대는 사단의 공격을 위해 지원 나온 미 바이런(Byorun) 기동부대와 보조를 같이한다. 우 제1선인 제2중대는 승암리 서북쪽 1.5㎞지점에 있는 제2목표를, 그리고 좌 제1선의 제3중대는 입석촌 남쪽 고지인 제1목표로 각각 공격을 가하기로 하고 제1중대는 785고지 북록에서 예비로 대기하면서 수시로 일선을 지원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중대장인 이주기(李周基) 중위의 지휘 하에 방동계곡으로 들어선 제3중대는 곧 제1목표의 서남쪽 능선을 향해 돌진한다. 목표의 200m 남쪽에서부터는 적 화기의 집중사격 때문에 포복으로 접근해갔다. 제1소대 1분대를 지휘하며 앞으로 진공하고 있던 분대장 유일형(柳日馨) 일등중사는 더 이상 진격을 계속할 수 없었다. 암벽과 암벽 사이에 교묘히 구축한 진지에서 자동화기를 계속 난사하며 아군의 진로를 막았던 적의 총격이 시간이 경과할수록 더욱 치열해졌기 때문이었다.


제3중대가 오래도록 정체상태에 빠져 있던 07시 50분 경, F-51 전폭기 1개 편대가 나타나 정면의 목표물에 집중적으로 기총소사를 가하기 시작했다. 이 기회를 이용한 제1분대는 재빠르게 적 진지의 하단으로 몸을 피한 후 돌격준비를 서둘렀다.


09시 30분, 분대원들의 사기를 북돋운 유 중사는 적진으로 돌진하여 수류탄으로 적의 기관총을 진지를 격파하고 백병전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유 중사는 순식간에 1명의 적을 사살하고 3명을 사로잡아 중대로 하여금 정면 돌격의 전기를 마련한다. 그러자 중대는 함성을 높이면서 정상을 목표로 일제히 돌격한다. 이어진 백병전은 40여 분이나 지속됐다.


특히 방동 동쪽의 무명고지 서사면에서 적의 저항은 강력했다. 사상자가 점점 늘어났다. 그 중 중대본부에서 폭발한 적의 수류탄으로 인해 본부요원 2명이 전사했고, 중대장 이수기 중위도 파편상을 입고 쓰러졌다. 병사들이 부축하려 했지만 안면부상을 입은 중대장은 바위에 기댄 채 ‘돌격 앞으로!’만을 외쳐댔다. 유 중사와 대원들은 정상으로 돌진해 적과 백병전을 벌였지만, 갑작스레 적의 병력이 증원돼 일시 적진에서 물러난다.


이때 제2분대장인 최학근(崔鶴根) 일등중사가 유 중사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는 함께 적의 고지를 공격할 것을 제의했다. 함께 공격에 나선 유 중사와 최 중사는 양손에 수류탄을 쥐고 적병들이 발악하고 있는 정상으로 돌진해 올라갔다. 수류탄을 빼어든 최 중사가 적진에 돌입해 기관총 총좌를 향해 투척, 적의 기관총을 격파했다. 뒤를 이어 돌입한 병사들이 백병전을 벌여 적을 제압한다.


이 호기(好機)를 포착한 중대는 전면 돌격을 감행해 격멸전을 벌인 끝에 적 100여 명을 사살하고 30여 명을 사로잡았으며, 60㎜ 박격포를 비롯한 각종 장비와 탄약을 노획하는 동시에 제1목표를 완전 점령하게 된다.
 
전투의 승리로 인해 금성지구에서 버티고 있던 중공 제67군은 이 지역에 투입된 지 10여일 만에 위축을 면치 못하게 된다.


최학근, 유일형 두 일등중사는 이 같은 전공으로 1951년 11월 5일 화랑무공훈장을 수여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