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접촉 北리호남, 98년 북풍사건에도 개입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측근인 안희정(安熙正)씨를 작년 10월 중국 베이징에서 만난 북한 리호남 참사는 1997년 북풍사건 때도 개입했던 인물인 것으로 알려졌다.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 참사 자격으로 활동하고 있는 리씨는 북풍사건 때 안기부 대북공작원으로 알려진 ‘흑금성’ 문건에도 등장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리호남 참사는 당시 신한국당 정재문 의원이 북한의 안병수(일명 안경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과 만나고 김병식 북한 부주석의 편지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연락책 등의 역할을 했다는 후문이다.

이 과정에서 흑금성의 파트너로 남쪽의 정치인들과 접촉이 빈번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명이 리 철이고 리호남 외에 리철운이란 가명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그는 북풍사건이 드러나면서 북한당국의 조사를 받고 수용소로 갈 뻔했으나 겨우 살아남은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당시 장성택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라인으로 분류됐던 리씨는 북풍사건에다가 그 시점에서 치열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처인 고영희씨와 장 제1부부장간의 권력다툼 속에서 정치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장인인 리길송 중앙검찰소장의 배경으로 간신히 숙청의 칼날을 피할 수 있었다는 후문이다.

안씨의 만남을 주선한 것으로 알려진 모 주간지 기자 등은 리호남 참사가 현재도 장성택 라인으로 남북관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장 제1부부장은 2005년말 조직지도부가 아닌 근로단체 및 수도건설부로 복귀하면서 남북관계업무에는 별 입김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1953년생으로 알려지고 있는 리호남 참사는 북한 최고대학인 김일성종합대학의 경제학부를 다니면서 뛰어난 학업능력과 리더십으로 우리의 학생회장격인 ‘학부 대대장’을 맡기도 했다.

리 참사는 남북정상회담 이후에는 민경련 참사 자격으로 서울에서 열린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의 수행원 자격으로 남쪽에도 다녀갔다.

베이징 등지에서 리 참사와와 접촉했던 남측 인사들은 “여러 번 만나봤지만 남북정상회담이나 특사 문제를 논의할만한 위치에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안희정씨의 만남에 앞서 베이징에서 리 참사를 만났던 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행정관 A씨는 “리 참사는 자신의 직책이나 신분은 물론이고 이름까지 숨기면서 안씨를 만나야 자신의 실체를 공개하겠다고 말했었다”며 “대화를 통해 리씨가 정상회담을 추진할 수 있다는 확신을 할 수 없었고 부정적인 의견을 안씨에게 전달했다”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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