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식 칼럼] “북핵 협상, 시간제한 없다”…트럼프의 의도는?

북미정상회담
지난해 6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단독회담을 앞두고 악수하고 있다. /사진= Kevin Lim/THE STRAITS TIMES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북한 비핵화 협상과 관련해 “시간제한도, 속도제한도 없다. 그저 프로세스를 밟아갈 뿐”이라고 밝혔다. 북한의 시간끌기 전략에 넘어가지 않겠다며 속전속결식 일괄타결론을 공언했던 적이 있기는 있었나 싶을 정도다. 북미정상회담 직후 한국을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2021년 1월)가 끝나기 전에 북한의 주요 비핵화 조치를 달성하길 바란다”고 밝혔던 것과도 달라진 태도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을 긍정적으로 해석하자면 북핵 협상의 어려움을 뒤늦게 깨닫고 ‘단계적 해결론’을 수용했다고 볼 수도 있다. 전임자들과는 다른 해법을 공언하며 북핵 협상장에 뛰어들었지만 막상 협상을 해보니 이 문제가 만만치 않은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됐고, 북미 정상간 신뢰하에서 천천히 문제를 풀어가자는 현실론을 수용하게 됐다는 해석이다. 이러한 접근법이 순조롭게 진행돼서 성과를 도출할 수만 있다면 물론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트럼프 임기 내에 결과 나올지 회의감

하지만, 북미정상회담 이후 비핵화 조치가 지지부진하게 진행되고 있는 마당에 트럼프 대통령이 ‘시간제한 없음’을 공식화하면서 북한 비핵화의 동력이 더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는 더 높아질 수밖에 없게 됐다. 속전속결식 비핵화를 밀어붙여도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 안에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는데, 아예 시간제한이 없다고 해버렸으니 트럼프 임기 안에 가시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지 회의감은 더 커지게 됐다. 이렇게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고 미국에서 차기 행정부가 들어서면 또 다른 국면이 펼쳐질테니 북한으로서는 다시 새로운 시작을 하자고 할 가능성도 있다.

여기서 궁금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정말 이와 같은 우려를 모르고 있을까 하는 점이다. 비핵화 협상에 시간제한이 없다는 말이 북한의 시간끌기 전략에 힘을 보태주고 이로 인해 북한 비핵화가 물 건너갈 수도 있다는 우려는 누구나가 할 수 있는데, 트럼프가 정말 그런 점들을 모른 채 이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겠느냐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다른 의도 있나?

트럼프 대통령의 상황 인식이 크게 뒤떨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트럼프의 발언이 다른 의도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북핵 협상에서 시간제한이 없다는 말이 정말 천천히 협상하겠다는 게 아니라 다른 의도가 숨어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먼저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올 11월 미국의 중간선거이다. 트럼프 정부로서는 지난 2년간의 성과를 가지고 중간선거를 치러야 하는데 북핵 협상은 트럼프 정부가 내세울 중요한 소재 중 하나이다. 북미정상회담 이후 비핵화의 속도가 나지 않고 있지만, 그렇다고 협상의 실패를 인정하고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기에는 선거가 너무 얼마 남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협상에 시간제한이 없다고 선언함으로써 중간선거 전에 추가적인 비핵화 성과를 내야 하는 부담에서 빠져나가고 싶었을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일단 선거를 치른 뒤에 그 다음 상황은 그 때 가서 볼 일이다. 폼페이오의 3차 방북 이후 백악관이 방북성과를 최악이라고 평가했다는 CNN의 보도가 사실이라면 트럼프 정부는 지금 속으로는 분을 삼키면서도 겉으로 웃는 척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중간선거 이후 트럼프의 대북정책이 180도 바뀔 가능성이 있고, 한반도에는 다시 위기가 찾아올 수도 있다.

다음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북한 비핵화 문제를 대강 봉합하려 할 가능성이다. 북한 비핵화는 어차피 쉽지 않은 문제인데 북한이 더 이상의 도발은 하지 않겠다고 하니 미국 입장에서는 이쯤 해서 봉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북한의 ICBM급 미사일은 사거리로는 본토에 도달할 능력을 갖췄으나 탄두의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평가되기 때문에 아직 미국 본토를 타격할 능력은 없다. 북한 미사일이 미국 본토를 위협하지 못한다면 비핵화라는 명분으로 협상이 지지부진하게 진행되든 말든 미국으로서는 나쁠 게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북한은 미 본토 타격 능력은 갖추지 못하지만 동북아에서는 사실상의 핵보유국이 될 수 있다.

트럼프의 속내는 11월 중간선거 이후 드러날 것

트럼프 정부의 속내가 무엇인지는 11월 중간선거 이후에 더 명확해질 것이다. 선거라는 급한 불을 끄고 난 뒤 트럼프 대통령이 180도 돌변하는 태도를 보일지, 지지부진한 비핵화 협상을 계속해서 용인하는 모습을 보일지 지켜봐야 한다. 문제는 그 어떤 쪽이든 우리에게는 그리 달갑지 않은 결과라는 것이다.

올 상반기 숨 가쁘게 돌아가던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소강상태에 접어든 지금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의 기대와 흥분에서 벗어나 이제 차분하게 현실을 바라봐야 할 때가 됐다.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가 대타협을 이뤄 한반도에 진정한 새봄이 올지, 올해 말을 계기로 한반도에 다시 새로운 고비가 올지 속단은 일러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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