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은 지난 10일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4차 전원회의에서 “우리나라의 조건과 실정에 맞고 우리의 힘과 기술, 자원에 의거한 자립적 민족경제에 토대해 자력갱생으로 전진시켜 나감으로써 제재로 우리를 굴복시킬 수 있다. 오판 적대 세력들에게 심각한 타격을 줘야 한다”고 언급했다. 또한 핵무기를 “국가의 근본 이익”이라고 말하면서 “핵으로 핵 위협을 종식시켰다”고 했다. 결코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굴복하지 않고 핵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도 “장기간의 핵위협을 핵으로 종식한 것처럼 적대세력의 제재 돌풍은 자립, 자력의 열풍으로 쓸어버려야 한다”고 ‘자력갱생’ 방법론을 제시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북한 시장에서는 시장 상인이 줄고 물동량이 감소하는 등 경기 침체 조짐이 포착되고 있다. 김정은의 이러한 허세발언과는 현 정세와는 배치된다.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 이후 한 달여 만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제재 압박에 ‘자력갱생’을 통해 버티겠다는 방침을 발표하여 대외적으로는 제재 위협에 항복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다분히 북한 주민을 의식한 모습이다.
또한 매체(노동신문 3월 21일자)를 통해서도 ‘공기와 물만 있으면 살 수 있다’는 식으로 경제난을 겪고 있는 주민들에게 오히려 더 허리띠를 졸라 멜 것을 강요하고 있다. 여기에 남측의 지원을 안 받아도 살아갈 수 있다고 빈 수레 소리만 요란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한 김정은은 시정연설에서 ‘하노이 회담과 같은 회담을 반복하지 않겠다’면서 연말까지 미국의 태도 변화를 기다리겠다고 했다. 벼랑 끝에 몰리면서도 큰소리치는 전략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고 할 수 있겠다. 한편 문 대통령은 이에 대해 “북한의 형편이 되는 대로 장소와 형식에 구애되지 않는 회담을 하자”고 했다. 김정은이 3차 미북 회담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전제하고 환영을 한 모습인데, 미국의 태도와는 조금 결이 다르진 않은지 우려되는 부분이다.
왜냐하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15일(현지시간) 현지 기자들과 만나 김정은의 ‘연말 시한’에 대해 맞받아치고 “비핵화 약속이 연말까지 되도록 할 것”이라며 제재를 통한 압박이 불변임을 재확인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미북 정상회담 중재자로 자처했지만 2차에 걸친 미북 정상회담에 아무런 성과 없이 끝이 난 상황이라는 점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또한 문 대통령은 최근 청와대 회의에서 “이제 남북 정상회담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추진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의 입장을 가능한 한 조속히 알려 달라”고 4차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OK’ 사인을 낸 만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만남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차 미북 정상회담과 관련 “서두르기를 원치 않는다(It doesn‘t have to move fast)”고 했다. 미국은 느긋한데 우리만 서두르고 있는 건 아닌지 이 또한 우려되는 대목이다.
애초 북핵은 대한민국 안보의 최대 위협이라는 점에서 한국은 중재자도, 촉진자도 될 수 없었다. 때문에 문 대통령은 북한 입장에만 몰입하지 말고 당사자 입장으로 돌아가 핵 폐기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최근 언론에서 김정은이 극도의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러시아 방문을 준비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러시아는 최근 5년간 북한에 인도적 지원으로 밀가루를 지원하였고 얼마 전에는 러시아 측에 10만t의 식량 지원을 요청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최근 김창선 북한 국무위원회 부장 러시아를 방문한 것도 이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동맹인 중국, 러시아 쪽으로 방향을 돌려 제재를 피해 좀 더 많은 경제적 도움을 기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미국은 스티븐 비건 북한정책 특별대표 비건을 러시아에 파견하는 등 제재 이행을 점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모습인가. 비핵화 당사국인 한미 동맹과 국제 공조를 바탕으로 북핵 폐기를 이뤄내는 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중재자론의 실패를 인정하고 오히려 당사자로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공조와 함께 북한의 실질적인 변화를 위한 정책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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