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여도 목소리만 들어도 50여년 恨 풀린다”

57년만에 만난 자식들이었지만 시력을 잃은 할아버지는 볼 수 없었다. 대신 맞잡은 손으로, 귀로 들려오는 반가운 음성으로 할아버지는 자식들을 확인했고 반가움에 눈물을 흘렸다.

21일 오전 9시30분부터 북한 금강산 해금강호텔에서 열린 개별상봉에서, 남측의 홍인석(84) 할아버지는 북측의 큰딸 선옥(66)씨부터 차례로 자식들을 불러 다시 한번 손을 꼭 잡았다.

첫날의 짧은 만남으로 체온을 다 나누지 못했기 때문이다. 1950년 7월27일, 전쟁 발발 한달 만에 인민군에 징집돼 전선에 파병됐다가 가족들과 헤어진 뒤 처음 잡는 손이다.

홍씨는 전쟁가운데서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진 뒤 남에서 새로운 삶을 꾸렸다. 재혼해 딸만 넷을 낳았다. 하지만 북에 두고 온 가족들을 잊을 순 없었다. 30여년 전 찾아온 백내장 때문에 시력은 거의 잃었지만 손이라도 맞잡고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 상봉 신청을 했다.

북에 남은 부인과 큰딸 선옥, 둘째아들 국환(62), 막내딸 명옥(58)씨는 아버지가 전사했다고 생각한 채 50여년을 살아왔다. 전사통지서도 받았었다.

아들 국환씨는 “저희는 당연히, 아버지가 돌아가신 줄 알았습니다”라며 “살아 생전에 만날 생각은 정말 꿈에도 못했습니다”라며 주글주글한 아버지 손을 뺨에 부볐다.

아들 국환 씨는 아직도 떠오르는 아버지와의 마지막 기억을 확인하고 싶어했다. “아버지 떠나던 7월27일, 어머니 손잡고 배웅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아버지 기억나십니까?”

아버지 홍씨가 “그래, 그때가 7월27일이다. 기억난다”며 서럽게 울자 당시 9살이었던 선옥씨는 아버지를 꽉 안고 다시한번 소리내 울었다.

가까이서 모시지 못하는 아버지이기에 북에 있는 자식들은 아버지 건강이 가장 걱정이었다.

국환씨는 “아버지 눈은 노쇠해서 그런 것이지요? 다른 병환이 있는 건 아니지요?”라며 안타까워했다. 남에서 함께 온 이복 동생 용옥(44.여)씨가 “백내장 때문에 그랬다”고 답하니 걱정하는 낯이 역력했다. 막내딸 명옥씨도 “아버지, 밖에는 혼자 다니시느냐”며 안타까워했다.

북에 있는 3남매는 흰봉투에 가득가득 사진을 챙겨와 많지 않은 아버지와의 추억을 더듬었다.

홍씨의 젊을 때 사진을 볼 때는 아들 국환씨와 꼭닮은 모습에 모두들 함박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홍씨는 “눈이 어두워 제대로 알아볼 수는 없지만 목소리만으로도 50년 묵은 한이 다 풀리는 것 같다”며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환하게 웃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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