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리 결의 이틀만에 ‘對北지원’ 발표, 제재 공조에 어떤 영향?

정부가 14일 국제기구를 통해 북한 취약계층에게 800만 달러가량의 대북 인도지원 계획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인도적 지원은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지속한다’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기조를 반영한 결과로 풀이된다.

특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신규 대북제재 결의 2375호 채택 이틀 만에 이를 공개한 건, 앞으로도 제재와 인도적 사안을 철저히 구분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하려 한 의도로 보인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북한 미사일 관련한 트랙과 인도주의적 트랙은 다르다”면서 “고심했지만 이 문제는 별개로 다루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 우리가 목표로 하는 제재 대상은 북한 정권과 그 정권을 유지하는 그룹이지 북한 주민이 목표가 돼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통일부 당국자도 “정부는 북한 주민의 인도적 상황 개선 조치를 정치·군사적 상황과 관계없이 지속 추진하겠다고 밝혀왔다”면서 “특히 영유아 및 임산부 등 취약계층에 대한 인도지원은 우선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이 당국자는 이어 “이런 것들이 현재 상황이나 남북관계에서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본다”면서도 “분명히 할 것은 인도 지원이 대화를 이끌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라, 열악한 인도적 상황 개선을 위한 것이다. 다른 것보다도 그것을 우선적으로 고려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구체적인 지원 내역이나 추진 시기 등은 남북관계 상황 등 제반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21일 예정된 교류협력추진협의회에서 논의 후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이 추가적으로 대형 도발 등을 감행할 경우, 인도지원 물품을 북한에 들여보내는 시기 등을 조절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 北 6차 핵실험으로 대북 여론 악화…국제사회 공감대 이끌어낼 수 있나

문제는 정부가 대북 인도지원에 대한 국내외 공감대를 확보하기에는 북한의 연이은 도발로 인해 대북 여론이 크게 악화돼 있다는 점이다. 이날 인도지원 검토 계획 발표는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강행한 지 11일 만이자, 안보리의 신규 대북제재 결의 2375호 채택 이틀 만에 이뤄진 만큼 시기적으로 적절한 결정인지를 두고 적잖은 논란이 예상된다.

특히 국제사회가 북한 6차 핵실험 이후 ‘지금은 대화의 시점이 아니다’라는 공감대 아래 제재·압박을 강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정부의 갑작스런 대북지원 발표가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 구도를 이완시키는 것으로 비춰질 여지도 있다.

물론 대북 인도적 지원 자체가 안보리 결의를 위반하는 건 아니다. 지난 11일(현지시간) 채택된 안보리 신규 대북제재 결의 2375호도 26항에서 “주민들에게 부정적인 인도적 영향을 의도하거나 주민들의 이익을 위해 지원 및 구호활동을 수행하고 있는 국제기구 및 비정부기구의 업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거나 이를 제한하는 것을 의도한 것이 아님을 재확인한다”고 밝히고 있다.

또 정부는 현금 지원이 아닌 만큼 인도 지원이 핵개발에 전용될 가능성도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번에 지원키로 한 물품은 전용할 수 없는 의약품이나 아동 영양식 등의 품목들”이라면서 “유니세프와 세계식량계획이 평양에 상주사무소를 운영하며 주기적으로 현장을 살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미 올해 미국이나 러시아, 프랑스 등 여러 국가들이 유니세프(UNICEF)나 세계식량계획(WFP),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 등 국제기구를 통해 대규모 인도지원을 해왔다는 점도 정부 입장에선 인도지원을 정당화할 명분이 될 수 있다.

다만 정부의 인도지원 구상은 국제사회의 레드라인에 임박한 북한 6차 핵실험 직후에 발표됐다는 점에서 과거에 이뤄진 대북 인도지원 사례와 단순 비교하긴 어렵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일단 정부는 이미 미국 등 주변 국가들에게 대북 인도지원 방침을 사전에 설명했다는 입장이다.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우리 정부의 인도적 지원에 대한 기본 입장에 대해선 미국, 일본 등 주변국과 긴밀히 협의해 오고 있고, 이번 건에 대해서도 사전에 설명을 했다”고 강조했다. 통일부 당국자 역시 “이번 일로 국제사회의 압박 기조를 흐트러트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국제사회와의 대북 제재 공조에는 흔들림이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의 반응은 상당한 싸늘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한국 정부의 대북 인도지원 검토 계획은) 북한에 대한 압력을 훼손하는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스가 장관은 “지난 3일 핵실험 등 북한이 도발 행동을 계속하는 지금은 대화 국면이 아니라 국제사회 전체가 북한에 대해 최대한 압력을 가할 때”라면서 “유엔 안보리에서도 북한에 대해 각별히 엄격한 제재결의가 만장일치로 채택됐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에 대한 압력을 훼손하는 행동은 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정부도 북한이 대화 제의에 대한 호응 없이 도발 수위만 높여가는 상황에서 인도적 지원 재개 방침을 내놓기까지 적잖은 고민을 해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 고위당국자도 지난 8일 기자들과 만나 대북 인도적 지원 여부와 관련, 국민 여론과 주변국과의 관계 등을 언급하면서 “정치·군사적 상황과 관계없이 한다는 원칙을 지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고 솔직하게 얘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북 여론 악화를 이유로 발표 두 달밖에 지나지 않은 ‘베를린 구상’ 등 정부의 대북 기조를 급격히 전환할 수는 없다고 판단, 대북 인도적 지원 검토를 시작으로 국면 전환을 꾀하는 데 무게를 실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출범 초부터 남북관계 개선을 공언한 정부로서는 제재·압박 위주의 지난 보수 정부와는 다른 식의 접근으로 국면을 풀어갈 필요성을 느꼈을 수도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대북 인도적 지원과 관련해 공감대가 충분히 형성됐느냐는 지적에 “대북정책 전반에 관해 여러 의견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정부는 베를린 구상에 입각해 대북 기조를 추진하고 있다. 인도적 지원은 민간 차원의 접촉을 허용하고 국제기구를 통한 방안을 검토하며, 정부 차원에서도 국민과의 공감대 하에서 해나가겠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