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직 “2.13 합의 ‘北 해체과정’ 정지시키지 못해”

▲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 ⓒ데일리NK

제5차 6자회담에서의 2.13합의는, 북한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예견되어 오던 바대로,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한 채 그 역할을 다한 영변핵시설 등을 폐기함으로써 외부로부터의 압력을 완화하는 동시에 경제적 지원을 끌어내는 것으로 귀결될 공산이 크다.

그러나, 북한이 핵을 보유한 채 개혁ㆍ개방을 거부하고, 또 종전과는 달리 미국이 북한의 핵시설 폐기상황을 보아가면서 단계적으로 압박완화나 경제적 지원을 행하는 한, 이미 붕괴된 북한의 정치경제체제는 회복될 가능성은 전혀 없고 더욱 더 악화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2.13 합의는 북한의 붕괴를 향한 해체과정을 조금 완화할지는 모르지만 정지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통일은 ‘민족의 영광’ 아닌 주민 행복 위한 것

북한이 언제 붕괴될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지만, 정치경제체제의 회복전망(恢復展望)이 전혀 없기 때문에 멀지 않은 장래에 붕괴되리라는 사실은 틀림없어 보인다. 붕괴는 아마 갑작스럽게 다가 올 것이며, 그 때에는 굉음(轟音)이 천지를 진동할 것이다. 붕괴형태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북한내부에서는 붕괴에 대한 아무런 대비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붕괴로부터 일차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는 아마 난민의 발생일 것이다. 이 난민문제에 대하여 가장 유효하게 대처하는 방법은, 우선은 지금과 같이 북한의 외부와의 교류를 최대한으로 줄이는 것일 것이다. 이러한 조치는 고강도의 억제력을 행사하는 것이므로 휴전선의 철조망을 지금보다 더 높여야 할지도 모른다. 중국국경에도 반드시 새로운 철조망이 필요할 것이다.

둘째번 문제는 통치기구의 재건문제일 것이다. 유일신(唯一神) 김정일의 사망으로 발생한 권력의 공백은 북한의 내부세력으로 메워질 수 없을 것이다. 만약 대체권력이 출현한다고 하더라도 그 권력은 정치경제체제를 재건하는 당면문제에 대처할 수 있는 유효한 수단을 전혀 확보할 수가 없다. 따라서 김정일 이후의 북한통치권력은 외부로부터 확보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북한에 가장 이해관계가 깊고 문제에 대한 대처능력도 있는 국가는 한국일 것이나, 한국이 단독으로 북한의 권력을 넘겨받는데 대해서는 중국이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북한이 국제분쟁지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UN을 중심으로 하는 이해관계 당사국이 공동으로 북한권력을 인수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지금의 6자회담에 참가하고 있는 나라들이 이해당사국일 수 있다.

셋째번 문제는 응급구호문제일 것이다. 여기에는 1년에 30~40억 달러의 자금이 필요할 것이나, 한국 단독으로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넷째번 문제는 국가재건문제이다. 국가재건에 있어서는 성급한 개혁ㆍ개방은 금물일 것이다. 왜냐하면 성급한 개혁개방은 새로운 환경에 대한 북한주민의 적응불능사태를 가져올 뿐만이 아니라 통일비용을 천문학적인 수치로 높이면서도 남북한의 경제침체를 초래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점진적 개혁ㆍ개방은 북한주민과 남한주민의 생활격차를 기본적으로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에 북한주민의 불만을 야기할 우려가 있다.

여기서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사항은 북한주민의 생활수준의 향상문제과 주체성을 살리면서 새로운 환경에 점진적으로 적응하는 문제 중의 선택문제이다. 인간은 빵 없이는 살 수 없지만 빵만으로 살 수 없다는 명제가 타당하다면, 후자의 선택이 현명하지 않을까. 외부의 원조가 있는 한 그들의 삶은 그렇게 궁핍하지는 않을 것이며, 그들 스스로 자기문제를 해결하게 되면 자기사회를 건설했다는 자부심도 있게 되어 지금까지 빼앗겨 왔던 인간적 주체성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문제는 북한주민의 인권과 재산권의 보호문제이다. 갑자기 남한과 통일이 이루어지게 되면, 독일의 통일에서 경험한 바와 같이, 북한주민은 그들의 보금자리를 잃고 남한주민의 종 노릇을 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서 북한은 상당기간 독립된 정치경제단위로 유지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동안 국가가 한 손아귀에 틀어쥐고 있던 토지, 가옥 및 기업소 등에 대한 재산권을 인민들에게 되돌려주어야 한다. 이러한 조치는 북한주민을 현지에 정착시키는 매우 유력한 수단도 될 것이다.

여섯째 문제는 통일문제이다. 북한이 비록 초기에 당분간 국제공동관리하에 놓이기는 하지만, 독립의 전망은 밝다. 현대의 국제관계에 있어서 국가의 주권은 기본적으로 보호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북한의 2천만 동포는 역사적으로 보나 문화수준으로 보나 주권을 남의 나라에 쉽게 넘길 어리석은 사람들이 아니다. 그리고 그들이 남한과 통일할 것인가 어쩔 것인가도 그들의 결정에 맡기면 된다.

본래 통일은 남북주민들의 행복을 위하여 필요한 것이지 민족과 국가의 영광을 위하여 필요한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