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와 진보를 대표하는 이론가인 안병직 (사)시대정신 이사장과 백낙청 ‘창작과 비평’ 편집인이 만나 북한 문제를 비롯한 한국사회 주요 이슈를 놓고 대담을 나눠 관심을 모으고 있다.
계간 ‘시대정신’은 최근 발행된 2010년 봄호에서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국민통합적 인식은 가능한가’라는 주제로 안 이사장과 백 편집인의 특별대담 내용을 내보냈다.
박재창 숙명여대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대담에서 좌우를 대표하는 두 이론가는 ‘국민통합과 사회통합’, ‘대한민국 정통성’, ‘한국사회 근현대사 평가’, ‘대한민국 선진화와 통일’ 등 다양한 이슈를 가지고 진지하면서도 뜨거운 논쟁을 주고 받았다.
보수와 진보를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이론가들인 만큼 남북관계 문제나 이명박 정부에 대한 평가는 거리가 있었지만 의견이 일치되는 부분도 많아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사회를 본 박 교수가 “두 분이 견지해 오신 진보와 보수의 입장이 서로 바뀌어져 있지 않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며 혼란스러워 할 정도였다.
안-백 “북한 흡수통일은 매우 위험” 한목소리
특히 두 이론가는 남북 통합 방식에서 흡수통일이 가져올 수 있는 문제점에 동의했다. 그동안 보수-진보 진영 사이에서 첨예하게 의견이 갈렸던 북한 경제체제의 붕괴, 독자적 개혁·개방 가능성, 흡수통일 문제 등에 대해서는 큰 틀에서 유사한 입장을 개진했다.
안 이사장은 “북한은 농민의 개별경영이나 중소상공업의 부활은 자연히 개방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실상 제대로 된 개혁마저 불가능한 상태다.(중간생략) 설령 북한이 개혁·개방에 나선다고 하더라도 북한을 독립적인 정치경제단위로 묶어두지 않으면 억제할 수 없는 사회적 혼란과 천문학적인 통일비용을 부담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대해 백 편집인은 “개혁·개방을 통해서건 다른 방법을 통해서건 북한경제의 독자적인 회생은 어렵겠다는 (안 이사장의)주장도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그 동안 햇볕정책이나 화해협력정책을 지지해온 사람 중에 많은 분들이 미국의 대북정책이 바뀌고, 봉쇄가 풀리고, 북미관계가 정상화되고, 경제원조가 들어간다면 북한이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개혁·개방의 길로 나갈 것이라고 말하는데, 저는 그게 쉽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를 활자를 통해서도 내놓은 바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동안 북녘 사회의 너무 많은 것이 붕괴되고 피폐된 점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분단 상태에서 개혁·개방을 할수록 남한이 더 위협적인 존재가 된다”고 덧붙였다.
안 이사장이 “북한의 재건에 있어서 한국이 막대한 경제적 부담을 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객관적인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한국이 북한을 바로 흡수통일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진단하자 백 편집인은 자신이 밝힌 “남북연합 주장과 상당히 유사하다”며 적극 동조했다.
두 이론가는 또한 “국가적 출발은 대한민국”이라는 인식 하에 한국의 중심적 역할과 위상을 설정해야 한다며 의견을 같이했다.
하지만 안 이사장이 “선진국과 비교하면 부족한 국가지만 이만한 국가를 건설하는 데 60년이 걸렸다”며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강조한 반면 백 편집인은 “국가에 대한 귀속이 독립된 개인의 자유나 정체성에 비하면 애당초 부차적인 것”이라며 정권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안 “대한민국 정통성” 강조 vs 백 “정당성 있나” 반론
사회통합을 위해서는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게 봐야한다는 인식은 같이 했지만 이승만 대통령과 대한민국의 건국 세력, 산업화 세력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갈렸다.
안 이사장이 “이승만 대통령이 식민지적 폐허상황 속에서 자유민주주의체제를 기초로 하는 헌법을 제정했다는 사실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지만 백 편집인은 “형식상의 민주주의 제도는 미군정하에 이미 교과서적으로 마련되고 있었다”고 일축했다.
이어 안 이사장은 “박정희의 경제개발정책으로 한국은 근대에 들어온 이래 최초로 재정자립을 달성했다. 그 배경으로 수출지향적 공업화 전략을 채택했다는 점”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백 편집인은 “과감하게 수출전략을 쓴 것은 바른 선택이라고 생각하지만 처음부터 쓴 것이 아니다. 수입대체 정책을 폈다가 학습한 것이다. 김대중 후보도 충분히 학습하고 펼쳐 나갔을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한편 이번 계간 ‘시대정신’ 2010년 봄호에는 대한민국 100년간의 혁명적 변화를 ’20세기 한국의 대전환’이란 주제로 구성한 특집을 비롯, 다양한 논문들과 여행기, 소설, 서평 등이 실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