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건 한 1년 뒤에나 아는데… “

▲ 대성총국 먼바다 소속 ‘선미트롤(뜨랄)어선’ 평북호 ⓒ데일리NK

김책은 철강도시이면서 수산기지로도 유명한 항구도시다. 특히 대성총국의 동해안 기지로서는 제일 규모가 큰 곳이기도 하다. 전편으로 바로가기

선박이며 냉동 창고며 통조림 공장이며 이 모든 것들이 전부 오래되고 녹슬어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것들이 더 많았다. 기계들이 20-30년이 다 넘었다는 것이다. 기계부속도 없고 일감도 없어 그냥 그대로 있다는 것이었다.

김책 현지에서 상담한 것은 ▲선박 수리공작소는 일단 김책시로 결정하고 ▲부 독크(Floating Dock) 제작에 소요되는 철판 및 모든 철재는 대성이 책임지며 그 이외는 제안서를 기초로 다시 상담하기로 했다. 또 ▲육상 건물 건설과 관련한 자재소요량과 합영회사 운영에 관련한 자료들은 평양에 돌아가서 최종 결정을 하기로 했다.

새롭게 제기된 것은 3,000톤급 선미 트롤 명태잡이 어업에 대한 토론이었으며, 그전 7월에 합의했던 명란과 명태수입에 대한 것은 일단 합의가 되었다. 가장 기본적인 문제는 해결이 된 셈이다.

9월 30일 평양으로 돌아왔다. 동행했던 ‘팜코상사’의 김성찬 사장이 본 사업 50% 지분에 해당하는 금액을 투자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대성무역과 나에게 의사 표시를 해왔다.

그런데 대성총국 측에서 지난 7월 20일자로 합의한 제2항 중 수리공작소를 건설할 장소만 결정했을 뿐, 그 이외 육상건물 건설과 관련한 자재 소요량과 합영회사 운영과 관련한 자료는 아직 준비가 안됐다면서 우리일행이 일단 귀국하고 나면 1개월 이내로 냉동명태와 냉동명란에 대해 함께 결정하여 통보해 주겠다고 하였다.

“우리는 일년 뒤에나 알 수 있으니 미국에서 철판을 보내시오”

이제 1단계 기초조사는 끝났으니 아무리 늦어도 금년 중으로 모든 합의사항을 마무리 지어야 내년 상반기에 기초 공사를 할 수 있으니, 제일 중요한 철판문제를 국가에 신청부터 해야 할 텐데 걱정이 앞섰다.

내가 제안한 제안서 중 강재(철판)만 일단 책임지기로 하고 다른 내용에 대해서는 좀더 자체 토론을 한 후에 연락해 주겠다는 구두 약속을 받고 우리 일행은 귀국했다.

그러나 1개월 후 합의에 대한 연락을 해주겠다는 약속은 2개월이 다 되어도 연락이 없다. 궁금하여 연락 하니 급히 평양방문을 해 달라는 것이다.

1989년 12월 9일 평양도착. 순안공항의 바람이 무척 차다. 대성총국 사장은 해외출장 중이고 부사장과 면담 결과 “국가에 철판을 신청했는데 1990년도 계획에서 누락되어 앞으로 1년이 더 걸려야 배정을 받을지 못 받을지 그때 가 봐야 알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철판을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결국 대성총국 측이 책임지겠다던 철판도 우리가 책임지라는 뜻이었다. 이렇게 되면 사업계획을 전부 다시 세워야 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처음부터 철판문제는 어려움이 있었고 약속한 사장은 입장이 거북하여 부사장이 대신 상담을 나왔다고 했다.

여기에서 포기할 수가 없어 동업자인 김성찬 사장과 의논했다. 일단 미국 내에서 중고 부 독크(Floating Dock)를 물색하여 큰 부담이 없으면 해볼 만하다는 결론이었다. 선박 중개회사를 통해 미국의 전 해안을 더듬었다.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 50년 된 것으로 10,000톤까지 올려 수리 가능하다는 부 독크를 찾았다.

공동 투자자 심장마비로 갑자기 사망

동업자와 현장으로 가서 사용가능 여부를 점검해 보니, 선체수리만 하면 20년은 충분히 더 사용 가능해 보였고 가격은 선체수리 인도 조건으로 30만 달러를 요구했다.

LA로 돌아와 또 다른 중개회사의 정보를 기다렸으나 한 달이 지나도 소식이 없다. 결국 마이애미의 것을 25만 달러로 인수하는데 합의하고 평양에 통보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예기치 못한 두 가지 큰 문제가 생겼다. 하나는 마이애미에서 홍콩까지 운반하는데 태풍 시기를 피해서 항해해도 최소한 3개월 이상 소요되는데 비용이 선박 항해보험료 포함 50만 달러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최종 사용국이 북한이라, 이것은 미국 정부에서 절대로 허가를 안 해준다는 것이다. 편법으로도 불가능하다고 했다. 미국에서는 홍콩으로 매매하고 홍콩에서는 다시 북한으로 매매하는 형식으로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했지만 결국에는 미국 정부가 이 사실을 알게 되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또 하나의 크나큰 문제가 생겼다. 동업자인 팜코상사 김성찬 사장이 집무실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진 것이다. 미국 L.A 한국일보에 김성찬 사장 죽음에 대해 보도된 기사를 가지고 평양에 갔다.

선박수리 공작소 사업계획을 수정하여 철판(강재)은 대성총국측 책임 하에 본 사업을 다시 시작하기로 합의하여 일을 추진했지만 결국 대성측의 철판문제가 해결 안 되어 1년 동안 세월만 보내고 이 사업을 포기해야만 했다.

분명히 되는 사업이라 큰 기대를 가지고 그동안 준비한 기본 설계도며 사전 작업준비에 대한 보람도 없이 많은 시간과 돈만 버리고 포기해야만 했던 당시의 심경은 너무나도 허망했다.

김찬구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

<필자약력> -경남 진주사범학교 졸업 -국립 부산수산대학교 졸업, -LA 동국로얄 한의과대학졸업, 미국침구한의사, 중국 국제침구의사. 원양어선 선장 -1976년 미국 이민, 재미교포 선장 1호 -(주) 엘칸토 북한담당 고문 -평양 순평완구회사 회장-평양 광명성 농산물식품회사 회장 -(사) 민간남북경협교류협의회 정책분과위원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경남대 북한대학원 졸업-북한학 석사. -세계화랑검도 총연맹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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