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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 후투족과 투치족 간의 싸움이 낳은 비극은 진정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다.
잘 알려진 르완다 내전에서는 석달동안 약 100만명이 희생되는 대학살이 자행됐다. 이는 하루에 만명 꼴로 인명이 살상되었다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결과를 보여준다.
당시 르완다의 인구는 약 800만명에 달했다. 그 중 후투족이 약 85%, 투치족이 약 14%를 차지했다. 석달에 걸쳐 벌어진 이 광란의 학살 기간에 서로 죽고 죽이며 살해된 사람들은 투치족이 75%, 후투족이 25%에 이르렀으며, 전체 인구의 8분의 1이 몰살됐다.
후투족과 투치족은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에 분포했다. 그리고 각 나라에서마다 분쟁을 벌였다. 르완다 내전 외에도 민주콩고 내전과 부룬디 내전도 투치족과 후투족 간의 다툼이 주를 이룬다.
후투족과 투치족은 역사적으로 뚜렷이 구분된다. 후투족이 투치족보다 인구가 많고 역사적으로 토착민이라 할 수 있는데 소수민족인 투치족의 지배를 받은 이유는 종족적 특성의 차이에 기인한다.
투치족은 유목민 출신으로 체격이 큰 반면 후투족은 농경민으로 체구가 작다. 중부아프리카에서 르완다와 부룬디 그리고 콩고 동부 등 토착 후투족은 12세기 경부터 북쪽에서 남하한 유목민 투치족에 의해 점령 당했다. 체구도 컸던 데다 유목민의 전투력을 앞세운 투치족은 농경민족인 후투족을 지배하게 되었다. 이런 역학 관계는 수백년 이어졌지만 2차 대전 후 아프리카가 식민지로부터 독립하던 시기에 즈음하여 다수 민족인 후투족의 저항이 시작된 것이다.
후투족-투치족 내전의 역사
르완다는 내전의 아픔을 딛고 2003년에는 최초로 새로운 헌법 채택을 위한 국민투표를 실시했고, 민주적 방식에 의한 최초의 대통령 선거도 치르는 등 정치적 안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르완다 정치의 특이점은 민주 정치의 후발국임에도 불구하고 여성 정치인 비율이 높기로 유명하다는 것이다. 르완다는 여성 의원의 비율을 30% 이상으로 아예 헌법에 명문화했다. 현재 여성 의원은 전체 의석의 무려 48.8%를 점하고 있다.
최근 민주콩고에서도 최초의 민주적 대선이 치뤄졌다. 선거는 지난 7월 30일에 실시됐지만, 아프리카와 같이 사회기반환경이 아직 덜 구축된 곳에서는 선거를 치루고도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리곤 한다. 민주콩고의 선거 결과도 예외가 아니었다. 대선과 총선이 동시에 치러진 관계로 집계는 더 늦어졌다.
특히 민주콩고는 아프리카에서 세 번째로 큰 나라로서 영토가 한반도의 11배에 달하며, 서유럽의 크기와 거의 맞먹는다. 넓은 영토에 포장도로가 500㎞도 안 될 정도로 사회기반시설이 열악해 개표 집계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국 5만여 곳의 투표소에서 유권자 약 2천5백60만명의 투표 용지가 들어있는 투표함을 수송하기 위해 헬리콥터와 자동차는 물론 카누, 오토바이, 짐마차 등 활용 가능한 모든 교통수단이 동원되고 있다.
민주콩고가 독립한 이후 46년만에 최초로 복수 정당이 참여하는 민주적 대선과 총선이 치러진 것은 역사적으로도 뜻 깊은 일이다. 이번 선거는 민주 콩고가 평화와 안정을 다지는데 중대한 전기가 될 수 있다. 대통령 선거에만 33명의 후보가 출마했으며 500명을 뽑는 총선에는 9천707명의 후보가 난립했다.
8월 22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중간 개표 결과 공식 발표에 따르면 현 대통령인 조셉 카빌라(35)후보가 44.81%를, 현 부통령인 장-피에르 벰바 후보(43)가 20.03%를 득표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9월 5일의 집계는 총선 결과를 포함한 보다 구체적인 상황을 알려주었다. 결과는 카빌라가 이끄는 ‘재건민주주의국민당(PPRD)’이 제1당을 차지할 것으로 점쳐졌다. 전체 500명 중 323명의 당선자가 확정된 가운데 카빌라의 PPRD가 84석을 차지, 전체의 26%를 차지했다. 벰바가 이끄는 ‘콩고해방운동(MLC)’이 40석을 차지, 12%를 차지하였으며 무소속 후보가 50석, 기타 군소 정당 후보들이 나머지 의석을 분할했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어느 정당도 과반 확보가 어려울 전망이지만 민주콩고 헌법은 반드시 과반이 아니더라도 다수당이 총리를 맡도록 함으로써 정정 불안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고 있다. 다만 대통령 선거는 과반수 확득자가 나오지 않을 경우 2차 결선 투표를 치르도록 되어 있다. 결선 투표는 10월 29일로 예정되어 있으며 현 상황에서는 카빌라와 벰바 후보가 격돌할 가능성이 높다.
콩고의 46년 독재정치를 끝내나?
민주콩고는 벨기에로부터 1960년 독립하였다. 종파 간 정권쟁탈전 속에서 혼란이 계속되던 가운데 모부투가 1965년 쿠데타로 집권함으로써 독재 권력을 형성했다. 모부투는 32년 간 일당 독재를 실시했으며, 1990년에야 복수정당제를 허용하는 등 민주화 이행의 조짐을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행보는 1994년 르완다 내전의 여파로 모두 중단되었으며 오히려 심각한 내전으로 치닫게 되었다. 르완다 내전으로 죽음에 몰린 후투족 난민들이 대거 몰려와 게릴라를 형성하였으며 르완다 정부군이 이 소탕을 목적으로 국경을 침범한 데다 민주콩고 내부의 투치족과 후투족 간의 대립도 격화됐다. 민주콩고는 르완다, 탄자니아, 앙골라 등 주변국들이 얽히고 설키는 복잡한 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 들었다.
이후 1997년 카빌라 반군이 수도 킨샤샤를 무혈 점령함으로써 내전이 일단락되고 모부투 정권은 종말을 고했다. 그러나 카빌라(현 대통령인 조셉 카빌라의 아버지 로랑 카빌라)도 대통령에 취임하여 모부투처럼 독재 정치를 실시했다. 1998년 카빌라는 자신의 집권을 도운 르완다 투치족의 축출을 시도했고 투치족 반군과 르완다 정부가 카빌라 정부를 공격함으로써 내전이 재발했다. 1999년 정전협정의 체결로 사태는 다소 진정됐지만, 교전이 완전히 중단되진 않았다.
2001년, 아버지 카빌라가 암살된 후 아들 카빌라는 완전한 정전 협상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그 결과 2003년 정부와 반군의 권력 분점 속에서 과도정부가 출범했다. 카빌라를 대통령으로 4명의 부통령을 두게 되었으며, 이번 대선에서 카빌라에 이어 2위를 차지한 벰바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과도 정부는 2년 후 민주 선거를 치르기로 하였으며 이번 선거가 그러한 약속에 따른 최초의 민주 선거가 된 것이다.
카빌라와 벰바 세력이 결선 투표를 대비하는 과정에서 상호간 정권쟁탈전의 과열로 민병대를 동원, 대결하는 양상이 전개된다면 민주콩고는 또다시 파국을 맞게 될 것이다. 지난 1월에 발표된 국제구호위원회(IR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1998년부터 2004년까지 전개된 민주콩고의 2차 내전 기간에만 약 390만명이 희생된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었다. 유엔은 소득 수준을 분류한 자료에서 민주콩고를 총 177개국 중 167번째로 평가했다. 민주콩고는 독립 당시 ‘콩고’라는 국명을 가졌으며 모부투 정권에 의해 ‘자이르’로 그리고 아버지 카빌라 정권으로 넘어와 ‘민주콩고’라는 국명으로 개칭했다.
민주콩고가 진정 민주주의를 뿌리내릴 기회는 지금이다. 민주콩고의 지도자와 국민은 눈앞의 권력 다툼으로 또다시 기회를 놓쳐서는 안될 것이다.
이종철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