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전역에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확산했다는 징후가 지속적으로 포착되고 있는 가운데, 북한 당국은 여전히 내부적으로 발병 사실을 공식화하지 않고 있다. 투명하고 신속한 정보가 방역의 핵심이지만, 북한 당국은 오히려 정보를 통제하고 있어 되레 바이러스 확산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평양 소식통은 26일 데일리NK에 “열병이 돈다는데, (당국이) 공개적으로는 이야기 안 한다”며 “중앙위생방역소에서 통제하는데 백성들에게는 말하지 않고 내적으로만 통제해서 모르는 사람은 모르고 통제 당하는 사람들만 안다”고 말했다.
이어 소식통은 “역사적으로 열병이나 조류독감 같은 것에 대한 포고는 없었다”면서 “꼭 내적으로만 하고, 내적으로 포치만 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돼지 전염병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시장 상인이나 간부들과 연결된 일부 주민들은 전염병이 돌고 있는 상황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다는 게 이 소식통의 전언이다. 이와 관련해 그는 “현재 장마당에 나와 있는 돼지고기도 다 알 만한 사람들이 파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주민들은 북한 당국의 정보 통제로 관련 사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키우던 돼지가 폐사하는 이유도, 감염된 정황이 나타났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명확히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가축 전염병에 대한 주민들의 경각심이나 문제의식도 결여될 수밖에 없다고 소식통은 지적했다.
실제 소식통은 “예전에 조류독감이 돌아서 모두 땅 깊숙이 묻었는데, 그 다음날 사람들이 그것을 몽땅 파가지고 채가서 먹었다”며 “그런데 그거 먹어서 죽었다는 사람이 없었으니, 이번에 열병 때문에 돼지를 파묻어도 사람들이 재까닥 땅에서 파내서 먹어버릴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평양 소식통도 “저번에 테레비(TV) 방송에 외국 길바닥에 돼지가 죽어서 널브러졌다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거 파묻은 것을 꺼내서 소시지를 만든다고 소문이 났다”며 “그런데 조선(북한)도 같다. 사람들은 그저 병에 걸린 것 같으면 빨리 잡아서 팔아야 된다고만 생각한다”고 전했다.
북한 당국은 지난 5월 말 자강도 우시군에서의 돼지 폐사 사례를 세계동물보건기구(OIE)에 보고하며 ASF 발병 사실을 신고했으나, 현재까지 내부 주민들에게는 이를 공식화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신문 등 북한 매체도 ASF의 심각성과 다른 나라의 피해 상황에 대해서만 보도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같은 북한 당국의 가축 전염병 대응 행태에 북한 수의공무원 출신 조충희 굿파머스 연구원은 “북한은 국가 수의방역 정책에 우월성이 있어 아프리카돼지열병과 같은 가축 전염병이 발생할 수 없고, 발생해서도 안 된다는 논리를 세우고 있다”며 “이런 구조적 특성 때문에 주민들에게 발생 사실을 공개하지 않는 것이고 그래서 방역이 제대로 안 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 연구원은 “가축 방역은 국민이 각성하고 동원되는 조건이 꽤 큰 부분을 차지하는데, 북한은 단순히 비상방역위원회를 조직하는 방식으로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문제”라며 “가축 전염병이 주민들의 식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경제적 손실을 초래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안일하게 대처하는 북한 당국의 반인민성이 드러나는 대목”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편 노동신문은 지난 21일 6면에 ‘남조선(한국)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 또다시 발생’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싣고 남측 지역인 경기도 파주와 연천에서 ASF가 연이어 발생했다고 전했다. 또 같은 날 ‘세계적 재난으로 번져지는 아프리카돼지열병’이라는 기사에서는 자국의 발병 상황은 언급하지 않은 채 ASF가 세계적으로 퍼져 큰 피해를 낳고 있으며, 이에 많은 나라에서 확산을 막기 위한 대책들이 세워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지난 18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통한 우리 정부의 공동 방역 협력 제안에 여전히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26일 기자들과 만나 “(북측의 반응을) 확인하고 있지만, 아직 상부로부터 특별한 반응이 없다고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