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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치뤄진 태국의 조기 총선이 무효로 판결났다. 헌법 재판소는 5월 8일자 판결에서 여당 단독으로 실시한 하원 의원 선거에 대해 무효 결정을 내렸다. 재총선의 실시와 더불어 태국 정국은 더욱 혼미를 거듭하게 됐다.
탈세와 정경유착을 이유로 총리 퇴임 시위가 격화되면서 탁신 치나왓 총리는 스스로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치르는 승부수를 띄웠다.
퇴진 요구가 갈수록 거세져 가는 상황에서 탁신은 시간을 끌기보다 다시 총선을 실시함으로써 정국을 돌파하고자 했다. 이에 야당은 탁신의 퇴진만을 못 박으며 조기 총선 자체를 보이콧했다.
야당이 불참한 반쪽짜리 선거에서 탁신은 57%의 지지속에 승리를 거머쥐었다. 전체 500개 의석 중 349석(기존 377석)을 건지는 선전이었다. 선거에는 야당들이 모두 불참한 가운데 17개의 군소 정당만이 참여했고, 전체 400개 지역구 가운데 278개 선거구에 여당이 단독 출마했다.
야당들은 투표장에는 나가되 기권란에 기표하는 방식으로 여당 후보의 낙선 운동을 전개했다. 그 결과 여당이 단독 출마한 지역구 중 38곳에서 무더기 낙선 사태가 발생했다. 한편 전국구 100석은 모두 탁신 당이 독식하게 됐다. 선거에 참여한 17개 군소 정당 중 어느 정당도 의석 배분 득표율 5%의 기준을 넘지 못해 전국구 진출에 실패한 것이다.
경제실정ㆍ부정부패 이유로 퇴진운동 확대
야당은 총선 결과를 인정하지 않았다. 여당 단독으로 실시된 총선은 합법적이지 않다며 선거 무효 청원을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탁신의 퇴진과 새 총리 임명, 그 이후의 새 총선을 촉구하는 野 3당의 공동 발표문에 따라 탁신은 결국 총리 자리를 내놓고 사임하기에 이르렀다. 과도 정국을 이끌 총리 권한대행이 임명되었다.
그러나 이미 불붙은 탁신에 대한 불신임 여론은 탁신의 완전한 퇴진을 요구하며 쉽사리 잠재워지지 않았다. 총리를 버리면서도 당 총재직 고수를 천명한 탁신은 언제든지 권좌에 다시 복귀할 수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헌법재판소는 야당의 손을 들어 주는 선거 무효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의회 해산 후 탁신은 친(親)탁신 시위대를 조직 하는 등 총선의 승리를 위해 농촌 지역을 중심으로 한 지지층 결속에 나섰다. 그러나 야당은 총선을 보이콧하였으며, 시위 군중은 점점 늘어나 10만명이 운집한 대규모 규탄 시위가 전개됐다.
92년 민주화 시위 이후 최대 규모였다. 국민들은 새로 드러난 탁신의 비리에 경악했다. 탁신의 부정부패 문제는 이전에도 제기된 적이 있던 데다 탁신의 전반적 경제 실정과 독선적 정치 행태 또한 불만으로 누적되어 있었다.
탁신은 태국을 1997년부터 시작된 IMF 관리 체제에서 6년만에 탈출시키며 2005년 총선에서 재집권에 성공하긴 하였다. 그러나 머지 않아 태국 경제는 다시 적신호로 바뀌기 시작했다.
무역수지는 외환 위기 이후 최대 적자로 돌아섰고, 물가도 최근 7년 중 최대 상승률을 기록하였다. 탁신의 경제 정책은 조금씩 실망감을 키웠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지진, 해일, 가뭄이 몰아쳐 관광 산업과 농업마저 위축됐다.
탁신은 자신이 조직한 신생 타이락타이당(TRT.Thai Rak Thai, 태국인이 태국인을 사랑한다)으로 2001년 총선에서 압승을 거둘 때만 해도 IMF 관리 체제를 종식할 새로운 경제 비전과 희망으로 인기가 대단했다. 그의 공약은 금융구조조정과 농촌부채탕감, 중소기업육성과 같은 것들로 주로 빈곤층과 중산층을 겨냥한 것이었다.
물론 성공한 기업가의 정력적 이미지도 IMF 관리 체제 하 이전 정부의 무능함과 무료함을 날려주는 신선한 공기처럼 보였다.
탁신은 총리 재임 시절 강력한 리더십으로 카리스마를 구축했다. 그는 고질적 문제인 마약 근절을 위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으며, 그 과정에서 무려 2천 5백여명이 사망하고 5만여명이 검거되는 피의 소탕을 감행했다. 뿐만아니라 이슬람분리운동에 대해서도 대대적인 탄압정책을 펴 1천여명의 사망자를 냈다.
아직 건재한 탁신 총리…태국 정국 혼란 거듭
이러한 그가 측근들의 수뢰혐의와 정권의 부정부패 문제에 직면할 때는 야당 정치인과 언론에 대해 무분별한 소송을 남발하는 행태로 나타났다. 탁신 정부의 누적된 경제 실정과 독선적 행태에 대해 민심이 돌아서고, 기업가 탁신의 불미스런 사익 추구가 밝혀지면서 국민적 분노가 높아갔다.
탁신은 과연 좌절할 것인가.
헌법재판소의 이번 결정은 우선 탁신에게 불리한 정세로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거센 퇴진 시위 와중에도 민첩한 승부수를 던지면서 어떻게든 승리를 거머쥐었던 이력을 볼 때 싸움은 아직 완전히 끝난 것 같지 않다. 또한 여당은 탁신 자신이 만든 정당으로 아직까지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50대의 젊은 나이 또한 그에게는 기회로 작용한다.
기존 정치에 대한 염증의 대안으로 택한 정력적인 신인 정치인에 대해 태국 국민들이 과연 앞으로도 과거와 같은 아량을 베풀 수 있을까. 아니면 마약만큼이나 고질적 문제인 부패 문제를 이참에 완전히 잘라낼 것인가. 어떤 식으로 귀결되든 지금 태국 정국은 꽤 의미 심장한 시간을 지나고 있는 듯 하다.
이종철 편집위원